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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Dec 06. 2023

[SIFF 2023] 부유

2023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 로컬 시네마 2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각종 고지서가 어지럽게 쌓여 있고 가스도 끊긴 것 같다. 심지어 같이 살던 집을 비우고 더 좁고 불안한 곳으로 내몰리게 된 유(流)와 준(遵)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조금 뒤틀려 가는 것 같다. 현재도 내일도, 일상의 모두가.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랜 극단 생활을 해왔던 준(정지훈 분)은 이제 취업을 준비하고 있고, 유(조인영 분)는 영세한 미용실의 스태프로 일하며 그런 남자친구의 뒷바라지를 한다. 다른 커플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카페 데이트도 지금 이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아직 내일을 놓지 않고 있다. 얼마나 가느다란 실로 지금을 이어 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화 <부유>는 특별한 장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한편에 감추어 둔 작은 불안을 태동시키는 작품이다. 극 중 두 인물이 내뱉는 작은 단어들과 좁은 몸짓이 작은 바람에도 힘없이 나부끼는 불안한 내일을 더욱 증폭시킨다. 문제는 그들의 삶을 파고들기 시작한 불편한 사실이 이제 더 이상 추측이나 예상의 범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상상하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을 것만 같은 막막함. 바로 그 앞에서 영화는 이들의 마음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정서까지 흔들어 놓는다.


두 사람이 아무 곳에나 버리고 싶지 않다는 소파를 제대로 버릴 장소를 찾아 기묘한 동행을 시작할 때 그들의 주변을 부유하던 문제들은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헤어질까?’라는 두 사람 사이의 첫 대화는 그동안 모른척하며 미뤄두었던 현실을 지금 여기로 불러온다. 이 관계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 지연시켜 온 일이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던 시간도 이제 그 호흡을 멈출 때가 되었다. 대화의 부재가 비켜난 자리에 이별의 전조가 머리를 들이민다.


부유하는 사랑은 자리를 보고 안착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안착한 사랑은 다시금 부유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사랑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없는 자리 위에는 내일의 문제와 의문이 떠다닐 뿐이다. 두 사람의 소파가 버려지는 날, 이들도 그렇게 이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로컬 시네마 2


태자경 / 한국 / 2022 / 극영화 / 17 Mins

조인영,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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