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 24] 웨스앤더슨 X 로알드 달 시리즈, 영화 <백조>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연출한 넷플릭스의 로알드 달 작품 4편 가운데는 아이들 사이의 폭력을 다룬 작품도 있다. 영화 <백조>다. 또 다른 작품인 <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말했던 것처럼 이 단편 시리즈는 모두 인간의 어두운 면모에 대해 말하고 있고,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후 대상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작지만 강한 감정적 소재 하나가 추가되었다. 물론 영화의 다른 나머지 부분은 이 시리즈에서 뿐만이 아니라 감독의 전작 모두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특징들을 모두 그대로 따른다.
이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다. 영화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인 인물들 간의 대화에서 벗어나 한 인물의 독백에 기댄다. 오래된 연극이나 판소리극에서 무대 위에 오른 연기자를 대신해 내레이터나 변사가 대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과 유사하다. 이 작품에서는 한 남자(루퍼트 프렌드 분)다. 그가 극을 이끌어가는 동안 장면에 해당되는 인물들은 그의 뒤편으로 나와 간단한 동작을 통해 설명을 돕는다. 가령 휘파람을 분다고 이야기하면 남자의 뒤편에 등장한 또 다른 인물이 해당 동작을 수행하는 식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 영화 <백조>는 덩치가 큰 다른 두 명의 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참고] 웨스 앤더슨 X 로알드 달의 또 다른 작품 <독>
앞서 언급했던 또 다른 작품 <독>에서도 마찬가지로 인물의 내레이션을 통해 극이 추동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극 안에서 하나의 인물로 움직이는 대상이 내레이션도 함께 이어가는 것과 달리 이 작품 <백조>에서는 극 바깥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극 안팎을 오고 나가며 장면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바꾸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다음 대사에 있다.
“이 철로에서 17년 전 내가 당한 일이다. 내 이름은 피터 왓슨이다.”
영화는 두 학생 레이먼드와 어니가 상대적으로 작고 연약한 소년 피터 왓슨을 괴롭히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 생일 선물로 라이플총을 받은 어니가 총과 총알 한 상자를 들고 무엇을 죽이고 놀면 재미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끔찍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평소에도 피터를 줄곧 괴롭혀왔던 어니가 그를 떠올리지 않았을 리 없고, 절친한 사이인 레이먼드까지 동원해 아주 못된 두 가지 폭력을 저지른다. 그때 피터는 단지 망원경 하나로 고목나무 하나를 구경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두 가지 폭력 가운데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기차가 지나다니는 철로 에피소드다. 피터 왓슨의 머리에 총을 겨눈 두 소년은 그의 손목과 발목을 꽁꽁 묶은 채로 철로로 끌고 가 곧 기차가 지나갈 길 위에 그를 던져버린다. 이 철로 위에서 17년 전에 자신이 당했다는 말과 함께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던 한 남자의 정체가 드러난다. 성인이 된 피터다. 이전까지 상황을 설명하기만 하던 그는 이제 극 속으로 들어와 철로 위에 누운 피터가 되어 당시 자신이 느낀 감정을 다시 한번 재현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에서 극의 안팎을 오고 가는, 극의 초반에서는 한 남자였던 피터의 역할을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이 방식을 통해 어린 시절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었던 피해자 소년의 심리를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어서다. 자신이 어린 피터 왓슨이라고 밝힌 그는 당시 어떤 방법으로 그 잔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또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차를 보며 느낀 감정은 어땠는지 등의 실제적인 설명을 이어나간다. 실제로 어떤 사건의 피해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또 되뇐다고 한다. 어른인 피터가 다시 한번 과거의 장면으로 돌아가 그 상황을 경험하는 듯한 방식으로 말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트라우마의 기전에 놓여 있는 심리를 명확히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폭력이 이 영화만의 방식으로 도드라지고, 폭력이 대상이 되는 피해자의 심리를 제대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면, 두 번째 폭력에 해당되는 장면은 숨겨진 용기에 대해 말한다. 호수 한가운데 놓인 백조 둥지와 그 백조와 관련된 이야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피터라는 인물이 연약하지만 현명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두 소년의 폭력이 시작되는 지점에서도 섣불리 그들을 자극하지 않는다거나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이성과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부터다. 자신에 대한 폭력에는 침묵을 지키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 여기에 놓인다. 피터는 둥지 안의 백조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어니에 대항한다. 결과적으로는 그 이후에 이어지는 더 잔혹한 폭력 앞에서 무력해지지만, 순응이나 복종은 결코 아니다.
두 소년의 겁박을 이기지 못해 백조의 두 날개를 어깨에 매달고 버드나무 위로 오르지만 어니의 총격을 맞으면서까지 백조처럼 뛰어내리라는 요구에 저항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폭력의 시작점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요구가 단순히 피터에게만 가해지는 것이었다면 그는 그들의 말을 들어줬을지도 모른다. 벌써 몇 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폭력이고, 지금껏 아무도 도와준 사람도 없었다. 그랬기에 더욱 조금 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백조를 우습게 만드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극 중 로알드 알(랄프 파인즈 분)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들은 궁지에 몰려 더 감내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그대로 꺾이고 무너져 포기한다. 하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아도 어째선지 절대로 꺾이지 않는 이들도 있다. 어린 피터 왓슨도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오랜 폭력 끝에 궁지에 몰리고 만 소년의 이야기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적인 장면 하나가 놓인다. 나무에서 뛰어내리라던 두 소년의 요구에 저항하던 피터가 어니의 총에 허벅지를 맞고 난 직후의 일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자기 집 뒤뜰의 잔디밭에 추락하게 되고, 이제야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외동아들을 발견한 그의 어머니는 울부짖는다. 현상에 대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소년이 이런 모습이 되기까지 아무런 관심도 도움도 가지지 못한 어른들에 대한 일갈이 여기에 담겨있으리라.
이 이야기는 오래전, 원작자인 로알드 달이 실제로 신문에 실렸던 사건을 보고 수첩에 30년 간 적어두었다가 1976년 10월에야 집필한 내용이라고 한다. 모티브가 된 사건 자체는 1940년대에 벌어졌다는 뜻이다. 2024년 지금의 아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충분히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을까? 영화의 내용 그 이상의 서늘한 그림자가 느껴지는 듯하다.
빠진 내용이 하나 있다. 호수 한가운데의 둥지에 있던 백조가 어니의 총을 맞고 난 다음, 피터는 죽은 백조를 가지러 호수를 건너게 된다. 역시 두 소년의 강압에 의해서다. 도착한 둥지 속에는 작은 새끼 백조 두 마리가 함께 있었다. 호숫가의 두 소년이 둥지 안에 알이나 새끼가 있냐고 또 묻는다. 피터는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하고 다시 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