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Sep 21. 2015

#034. 내일을 위한 시간

Title : Two days One night
Director : Jean Pierre/Luc Dardenne
Main Cast : Marion Cotillard
Running Time : 95 min
Release Date : 2015.01.01. (국내)




01.

언젠가부터 갑과 을이라는 두 단어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사회. 그 사회의 이야기가 비단 우리들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사회라기보다는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이 작품은 겉으로 보기엔 아주 심심하게 느껴질 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단순하게 반복되는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데, 그 동일한 모습 속에서 자신의 것을 양보해야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매우 날카롭게 들여다보고 있는 영화가 바로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02.

우리는 종종 배우들이 자신의 직업적 매력에 대해 현실의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경험해보고 인생의 다양한 감정들을 느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접하게 된다. 물론 그런 배우들조차 작품 속 캐릭터를 완전히 자기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는 그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관객들 역시 영화를 통해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표현해 내고, 하지 못하는 것이 개인의 역량이라고 평가받는 것처럼, 관객들 또한 같은 작품 속에서 얼마나 더 다양한 감정에 공감하고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내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몫일 것이다.


03.

처음 1번의 이야기에서 굳이 이 영화의 외형이 "단순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이 작품이 조명하고자 하는 한 인물의 삶이 결코 우리들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현실 속 어느 노동자의 삶이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한 직장에서 혹은 한 가정에서, 또 어느 집단 속에서 우리가 이루고 있는 일련의 삶들을 모두 "단순하다"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현실과 매우 닮아 있고 실화를 베이스로 하지 않았음에도 더욱 실제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다.


04.

영화의 시작과 함께 약 5분 간 영화는 핵심을 배제한 채 주변을 겉도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마치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언급하기 꺼려하는 모습처럼 느껴지는데 그 가려진 내용을 다분히 추측할 수 밖에 없는 관객들은 궁금증과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는 마치 소설 작가인 "할레드 호세이니"의 <그리고 산이 울렸다>를 읽는 듯한 느낌인데 아직 스크린으로 옮겨지지 않은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이런 구조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05.

이 작품에서 모든 감정적 연결고리를 끌고 나가는 시작점이 되는 것은 바로 주인공 산드라의 '우울증'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앞으로 맞이되는 절망적인 상황(해고)과 믿을 수 없는 동료들의 행동들은 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소들이 된다. 사실 그녀가 해고되어야 할 직원으로 선정된 것 역시 그녀의 '우울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녀의 이 아픈 마음이 현실 속 상황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는 점에 아이러니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


06.

작품 속의 상황에서 사람과 돈을 두고  저울질하는 모습들, 내 것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욱 매몰차게 굴고 갈등을 겪게 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그 장면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할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관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일. 하지만 그 모습에 대한 판단을 논하기 전에 이 영화의 끝자락에서 "Team"이라고 불리는 그 집단의 유대감과 서로를 대하는 모습들을 확인하게 된다면 왜 "산드라"가 한 번에 선택되지 못했는 지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07.

이 단조로운 영화가 흡인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존재한다고 본다. 첫째로 모든 인물들이 돈과 산드라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 각기 다른 이유들과 행동들을 보여준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 '단순한' 구조를 가진 영화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원동력이 된다. 심지어 동일한 거절을 하는 인물들 조차도 각자 자신의 상황과 성격에 따라 모두 다른 모습을 보인다.


08.

두 번째로 "산드라"라는 인물의 내면적인 흔들림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우울증'이라는 병을 겪고 있던 그녀에게 현실적으로 주어진 상황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노력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일에 뛰어들게 되지만, 그녀는 자신을 변호하는 일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모든 피해를 자신이 감내하는 일과 누군가가 나누어 갖게 하는 일, 또한 자신을 음해하는 인물들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무기력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섬세한 감정들을 표현하는데 "마리옹 꼬띠아르"만한 배우가 또 있었을까?


09.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별다른 특별한 언급 없이도 가족이라는 집단의 끈끈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일은 분명 "산드라" 혼자 감내해야 하는 몫이었지만 그런 그녀의 뒤에는 항상 남편이라는 존재가 서 있었으며, 그녀가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일상에 대한 끈을 놓지 않도록 도와준 것은 그녀의 아이들이었다. 특별한 내러티브 없이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들을 조명하고자 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닐 것만 같다. 가족이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10.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부분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냉정하게 기술적인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자면 회사에 필요 없는 인물을 퇴장시키고 그 사람이 받던 연봉의 일부를 다른 노동자들이 나누어 갖는 일은 결코 부정한 행동이 아니다. "산드라"라는 인물이 선택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오히려 19세기 중반의 공리주의 철학에 너무나도 부합하는 행동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영화 속 "산드라"라는 인물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반대로 그녀 대신 보너스를 선택하는 인물들에게 반감을 느끼는 것인가.


11.

10번의 내용에 이어 만약 보너스와 함께 저울질되는 인물이 "산드라"가 아니라 보너스를 선택한 다른 인물이었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그들이 말한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그 터프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 년째 밀고 있는 슬로건인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식의 단편적인 사고로는 이 사회를 "러시안 룰렛"식의 비논리적이고 즉흥적인 시대에서 건져낼 수 없다는 것이다.


12.

그리고 엔딩. 사장은 "산드라"를 불러 앉혀놓고 매우 큰 선심을 쓰는 듯 그녀에게 복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녀가 함께 일하고 있는 계약직 인원들이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그들 대신 그녀를 고용하겠다는 것.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계약직 인원 중 한 명은 그녀의 복직을 위해 자신의 손해까지 감수하며 그녀에게 손을 들어 주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남편과의 전화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우며 회사를 떠난다.


13.

12번 내용의 엔딩 신을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다르덴 형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늘 한 인물을 통해 사회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왔고, 또 어두운 사회의 모습이 사라지기 바라는 이들의 희망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해 왔다. 전작인 <자전거 탄 소년>을 통해서는 사회가 가져야 할 덕목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로제타>나 <더 차일드>를 통해서는 열악한 상황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이 작품에서 역시 "산드라"는 어쩌면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보여주기 위한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미래를 향해 자신 있게 나아가는 그녀가 웃음 지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Copyright ⓒ 2015.

joyjun7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033.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