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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21. 2015

#035. 미스터 노바디

복잡해 보이는 구조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교훈.

Title : Mr.Nobody
Director : Jaco Van Dormael
Main Cast : Jared Leto, Diane Kruger
Running Time : 141 min
Release Date : 2013.10.24. (국내)


1.

솔직히 이 영화 <미스터 노바디>는 대중성 있는 작품들만 접해 온 관객들의 입장에선 정말 괴팍하기 짝이 없다. 영화가 하나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기승전결을 통해 대중들에게 어떠한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그 어떠한 가치도 가질 수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조금 과격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익숙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문제점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러닝타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엔딩까지 못 버티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라면 그 원인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빨리감기 증후군"과 "결말탐색 증후군". 물론 이 두 단어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고 이해를 위해 급조한 단어들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빨리감기 증후군"은 조금이라도 지루한 장면을 견디지 못하고 빨리감기 버튼을 누르고 싶어하는 조급증의 일종이라 말할 수 있고, "결말탐색 증후군"은 그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어떤 하나의 결말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강박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증상 중 하나라도 해당되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3.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난해하고, 알 수 없는 편집들이 난무하는. 더 나아가 특정 시점이 존재하지 않고 필름을 난도질 해 놓은 것 같은 이 영화 <미스터 노바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살펴 볼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충분히 이해 가능하도록 각 내러티브들은 작은 연결고리들로 세심하게 엮여 있다. 다른 영화에서는 쉬어가는 장면으로 생각될 것 같은 작은 부분까지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영화 자체의 메시지가 바뀔 수 있을 정도이니 단 한 장면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4.

네이버 영화의 작품 설명에서부터 현존하는 수 많은 리뷰들이 이 영화가 9개의 삶을 살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느니, 선택에 따라 변화되는 인생을 다루었다라는 등의 설명들을 하고 있는데 정말 단언컨데 싹 다 무시해버려도 좋다. 이렇게까지 강조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괜히 이런 생각들에 갇히게 되면 영화가 전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눈은 계속해서 9개의 이야기를 찾는데 집중하게 된다. 저 말을 애초에 누가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 또한 이 작품 속에서 9개의 분절된 이야기를 끊어내는데 실패할 것이라는데 내 커리어를 건다. 그 정도로 의미없다는 이야기다.


5.

참고로 이 영화의 감독 "자코 반 도마엘"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만 7년 반동안 집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도 자신의 영화 중 가장 실험적이면서 관념적인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괴팍한 스토리와는 다르게 상당한 수준의 관념들을 이 작품 속에서 한 번에 모두 다루어내고 있다. 예를 들면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나비효과"나 "순회 사상"과 같은 이야기도 대입이 가능하고 "도플갱어"나 "기회비용",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의 작품으로 인해 알려지기 시작한 "웜홀"이라는 용어의 활용까지도 이 영화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6.

그리고 이 영화 속에는 미장센으로 배치된 장치들이 상당 수 포함되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모님을 선택해야 하는 장면이 처음 등장할 때, 기차 뒤로 보이는 플랫폼의 이름이 "Chance"라고 적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의미가 해석되는 것은 영화의 주된 메세지를 어떤 것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7.

애초에 이 영화가 설정하고 있는 2092년의 세계관과 118살의 "니모"가 하는 이야기 사이에는 대단히 강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특히 118살의 "니모"가 모니터를 통해 과거의 "니모"에게 하는 이야기들은 영화 속에서 세포재생화 라고 불리고 있는 기술 때문에 무한한 삶을 살 수 있는 인간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세포재생화 이전의 삶과 세포재생화 이후의 삶이 과거의 "니모"와 118살의 "니모"로 대비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8.

"니모"는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애나"를 마지막 순간에 떠올렸기 때문에 이 대사를 했다고 설명하지만 천만에. 그가 죽음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이야기 한 진짜 이유는 그것이 그가 그 순간에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었음과 동시에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9.

결국, 행복이라는 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을 지금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가장 "표면적으로"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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