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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29. 2015

#4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영화의 타이틀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묘한 메시지.

타이틀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감독 : 홍상수
출연 : 정재영, 김민희
러닝타임 : 121분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날짜 : 2015.09.24. (국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지만 이 작품에는 성적 묘사 장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01.

지난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감독 데뷔를 했던 "홍상수" 감독. 그는 그 동안 20편이 넘는 크고 작은 작품들을 연출해 오면서 관객들에게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 되었다. 그의 작품을 단 한 편이라도 직접 관람한 관객은 실제로 그리 많지 않으면서도, 영화관을 오고 가며 한 번쯤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았을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홍상수" 감독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온 감독 중 하나였으며 그의 작품들 모두가 대중성은 조금 떨어질 지 몰라도 작품성 하나만큼은 크게 인정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02.

"홍상수" 감독이 대중적인 면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많은 관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데는 그의 작품들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색깔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그의 촬영 현장에는 시나리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특색이다. 시나리오 이전의 단계인 트리트먼트 단계에서 멈추어 놓은 뒤, 촬영 당일 아침 현장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을 바탕으로 즉석에서 대본을 만들어 낸다는 "홍상수" 감독. <오! 수정>(2000)을 찍을때까지만 해도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 놓았었다는 그는 <생활의 발견>(2002) 때부터 이러한 방식을 사용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이야 말로 현재 자신이 영화에 담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그의 작품들이 독특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와 함께 작업한 많은 배우들이 처음에 그의 그런 방식에 굉장히 당황했다고는 하지만.


03.

이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이야기하면서 "홍상수" 감독의 독특함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 작품의 첫 오프닝 크레딧에 등장하는 '나오는 사람들'이라는 자막 글자에서부터 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가득한 필체만 보더라도 이 작품은 "홍상수" 감독이 만들었다는 것을 모른 척 할 수 없었을 정도로 그 정체성이 담겨 있는 필체였다. 블라인드 시사회를 통해 이 작품을 만났더라도 나는 아마 이 오프닝 크레딧 단어 하나로 이 영화가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었음을 단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04.

이번 작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전체 러닝타임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외형적인 구조는  비슷할지 몰라도 두 작품의 구조는 그 역할이 상이한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A파트가 B파트의 감정적 응집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는 것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A파트와 B파트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기보다 동일선 상에서 겹쳐 보았을 때 작품의 메시지가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는 구조로 표현되고 있다.


05.

사실 이 영화의 전반부 이야기(A파트)는 두 주인공의 감정적인 부분을 최대한 덜어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솔직히 영화가 시작하고 한 동안 다소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그런 어색함을 "춘수"(정재영 역)와 "희정"(김민희 역) 두 사람이 초면이라는 이유를 들어 설명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다. 물론 이 때까지는 관객들이 영화의 후반부 이야기(B파트)의 존재 여부 혹은 내용에 대해 모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어색함을  끌어안고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왜? 이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고. 그의 작품들은 여태껏 그래 왔으니까. 관객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말이다.


06.

이와 반대로 후반부 이야기(B파트)는 이전의 A파트에 비해 조금 더 현실적인 모습이 그려지고 있으며 두 주인공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느낌으로 연출된다. 물론 A파트의 이야기와 동일한 이야기를 한 번 더 보여주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다른 이야기 2개를 분절시켜 하나의 영화로 만들었지만, 이 작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A파트와 B파트의 시작점과 끝점이 동일한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같아 보이는 두 영상에는 큰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물리적으로는 앵글의 각도에 차이점이 있고, "희정"의 작업실 장면에서 그녀가 물감을 개어낼 때 보이는 물감의 색깔이나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복내당"의 관광객이 다르다는 점 등의 내용적인 사소함에서 포착할 수 있는 차이점도 있다. 물론 가장 큰 차이점은 처음에 언급했던 "감정적 표현"의 여부가 아니었을까?


07.

하지만 이 후반부 이야기 B파트 영상이 상영되자마자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이것이 "홍상수" 감독의 의도적인 장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홍상수" 감독은 영화 속 많은 부분들을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찾아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의 A파트와 B파트의 차이를 통해 이 영화 타이틀의 의미가 짙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글의 5번에서 A파트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어색한 느낌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 뒤에 보게 된다고.. 그런데 상대적으로 조금 더 자연스러운 B파트의 영상이 나오자마자 이건, A파트가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원래 어색했던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 A파트만 보았던 '지금'까지는 '맞다고' 느꼈던 장면들이 B파트까지 보게 된 지금 '그때'로 돌아가 '틀린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08.

글쎄 아직 다른 어떤 감독의 코멘트에서도 그런 설명을 들은 바는 없었기에 "홍상수" 감독이 의도적으로 저런 연출을 시도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것이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나는 이 한 부분만으로도 그 동안 좋아했던 그의 많은 작품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 <하하하>(2009), <북촌방향>(2011) 등을 내려놓고 이 작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탑 리스트에 올려놓게 만들어 버렸다.


09.

자의적인 해석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의 연출에 담긴 메시지를 조금 더 확장시켜보고 싶기도 하다. 만약 이 연출이 "홍상수" 감독의 의도적인 부분이었다면 감독은 사회에 존재하는 '선입견'이라는 부분들에 어떤 일갈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A파트의 연출이 어색하다고 느끼면서도 이 작품이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었기에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계속 스크린을 바라만 보고 있었던 관객들의 모습. 더 나아가 이 시대에 존재하는 계급, 돈, 명예 등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선입견'들을 향해 말이다.


10.

한 가지 더 이 작품을 풍부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A파트와 B파트 두 이야기 사이에 변하지 않은 사실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앞서 6번에서 두 이야기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한다고 했지만, 반대로 분명히 동일한 맥락으로 끌고 가는 설정들 역시 존재한다. 차이점에 이어 동일한 부분까지 찾아내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이 작품의 두 영상을 오롯이 겹쳐 놓고 통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며, 더욱 다양한 이야기 소재들을 발견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11.

언젠가 한 인터뷰를 통해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작품들을 바라봐주는 관객들 역시 자신이 만들고 있는 영화 속 한 일부분이며, 관객이라는 존재 또한 영화적 표현에서 밸런스를 맞추는 데 고려하는 요소가 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이 가장 잘 묻어난 영화가 바로 이 작품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였던 것 같고, 이 타이틀이 의미하는 바 역시 영화의 내용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묘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2.

처음 접할 때는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이런저런 퉁명스러운 말들을 내뱉지만, 그렇게 경험하다 어느 순간 한 번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세상 그 어떤 처방전도 소용이 없다는 "홍상수"표 영화는 이번에도 너무나 큰 여운을 남기고 그렇게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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