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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29. 2015

#45. 상의원

매듭을 제대로 짓지 못한 저고리의 초라한 모습.

타이틀 : 상의원
감독 : 이원석
출연 : 한석규, 고수, 박신혜, 유연석
러닝타임 : 127분
등급 : 15세 관람가
개봉 날짜 : 2014.12.24. (국내)




01.

처음에 이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인물이 "이원석"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이제 막 두 번째 장편을 찍는 신인 감독에 불과했고, 동시에 그의 첫 번째 작품이 이 작품과는 스타일이 너무나도 다른 <남자 사용설명서>(2013)였기 때문이다. 영화계에도 일종의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라는 게 존재하는데, 단 2년 만에 이렇게 다른 분위기의 영화를, 그것도 스케일마저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포츠 용어로써의 소포모어 징크스와는 조금 다르지만, 영화계에서 괜찮은 출발을 보였던 감독들이 두 번째 작품에서 갑자기 덩치를 키울 때 어려움을 겪는 모습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02.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 만족감보다는 아쉬움만이 가득한 영화였다. (결과적으로 박스 오피스 성적 역시 좋지 못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컸다고 표현한 이유는 정말 쓸만한 이야기들을 도처에 깔아놓고서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특정 시퀀스나 특정 소재들을 표현하는 방법들은 너무나 매력적인데, 그 파편들을 제대로 이어내질 못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초중반에서 극의 흐름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느낌이 강했다고 느꼈다. 특히 과도한 코믹신들은 이 영화의 정체성까지 의문스럽게 느껴졌으며, 그 정도에 있어서 이 작품의 장르를 '퓨전 사극'이라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이기 쉽지가 않았다.


03.

결국 영화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조차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실패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태로워 보인다. 반대로 그만큼 작품 속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였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이 이야기에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은 부분에서 발생하는 의외의 만족감도  역시 포함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유연석"이라는 배우의 존재감. 첫 등장, 용포를 입는 장면에서 느꼈던 조금의 위화감을 러닝타임이 흐르는 동안 모두 바꾸어버릴 정도로 강한 인상을 보여주었다. 누가 그를 두고 <늑대소년>(2012), <건축학개론>(2012)의 조연으로 묻히고 말 인물이라고 평가했던가? 그와 함께 연기를 맞춘 "고수"와 "박신혜" 역시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배우 "유연석"은 이 작품 이후 MBC 드라마 <맨도롱 또똣>의 남자 주인공 역에  캐스팅되었으며, 영화 <뷰티 인사이드>(2015)를 통해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04.

개인적으로 정말 흥미롭게 지켜 본 인물은 "한석규"인데, 그는 참으로 헷갈리는 행보를 보이는 배우라고 해야 할 것만 같다. 이 때까지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연기들을 생각하면, 그는 온전히 스크린보다는 브라운관에 더욱 적합한 연기력을 보여왔다고 생각한다. 흔히 '스크린용 배우'와 '브라운관용 배우'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신(Scene) 별로 촬영을 하는 영화의 경우, 스토리 순서대로 촬영하는 드라마에 비해 감정 이입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한석규"란 배우는 브라운관용 배우에 더욱 적합하다고 봤던 것인데, 글쎄 이번 작품에서는 그 동안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준 모습들과는 달리 또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의 연기력은 스크린/브라운관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극'이라는 장르에서만 안정적이라는 또 다른 해석을 하게 된다.(실제로 그가 호평을 받는 드라마 장르들 역시 모두 사극이다.) 글쎄, 과연 어떤 부분으로 해석이  가능할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가 없다.


05.

이 영화가 정말 불편했던 이유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극의 어떤 흐름에 맞춰 가야 할지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특히 전반부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을 정도로 과하게 코믹스러운 장면들이 많았는데 글쎄 그 부분들이 꼭  필요했었을까?라는 생각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초반부의 코믹스러운 장면들을 통해 근엄한 분위기의 궁궐 안과 그렇지 않은 궁궐 밖의 차이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게 의도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과한 부분이 있었고 그리 적절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무게감은 "공진(고수 역)"과 "왕비(박신혜 역)"의 대화를 전달하던 상궁의 모습을 통한 환기만 시도했었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


06.

영화의 장면들 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장면들에서도 많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영화들에서 보여주는 고리타분한 장면들을 너무도 많이 가져다 붙여 놓았다는 점이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궁궐 처마 위 '잡상'들을 슬쩍 비춰주고 지나가는 것이다. 이 장면을  왜?라는 의문이 채 해소가 되기도 전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만다. 글쎄, 그렇게라도 이 영화가 사극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 또한, 인트로와 엔딩에서 차용하고 있는 액자식 구성 역시 이 영화에 왜 필요한지 도저히 알기 어렵다.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갖다 붙여놓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07.

그리고 역시 관객들을 향해 강요하는 억지스러운 감동들. 형이 남겨놓은 고깃덩이 같은 느낌이라 침소에도 들지 않았던 왕비가 그 한복 하나 갈아 입었다고 마음이 동하는 "임금"이나, 대전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노골적으로 숙이는 그 장면은 글쎄 감정적으로 깊게 전달된다는 느낌이 들지가 않는다. 또한, 엔딩 직전 10여 분 동안 몰아치는 영화 속 미장센들에 대한 설명들은 영화를 급하게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는 느낌마저 받게 만든다. 엔딩에서 역시 박물관 장면을 줌 아웃(Zoom-out) 하는 것이 아니라 줌 인(Zoom-in)을 해 들어가면서 예복 속의 "고사리"를 보여줌으로써 과거와 현실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로 쓰는 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08.

이토록 많은 스토리 상의 아쉬움을 토로한 것은 앞서 설명했듯이, 작품 전체를 통틀어 상당히 매력적인 연결 고리들이 다양하게 표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을 마지막까지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표현되는 스토리가 "공진"(고수 역)과 "왕비"(박신혜 역)의 관계에서 오는 이야기뿐이다. 그 외 다른 이야기였던 유연석의 과거와 연결된 스토리라던가, "돌석"(한석규 역)과 "공진" 사이의 끈끈한 이야기들이 더욱 입체감 있게 살아나지 못한 부분이 매우 아쉽다.


09.

많은 스토리들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음에도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은 두 가지 정도가 있을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돌석" 개인의 내면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는 이를 통해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 겉으로는 예법과 도리를 중요시 여기지만 자신의 성공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돌석"이다. 이는 <모스트 바이어런트>(2015)의 주인공인 "아벨"(오스카 아이삭 역)과도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그와 반대로 겉으로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공진"은 자신의 목이 날아갈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지 모를 일이다.


10.

"돌석"과 "공진" 두 사람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대립처럼 보여지면서 극명한 성향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적대적 대립 관계에만 서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정말 최악이라 생각하는 장면인) 달에 놀러 가 옷을 만드는 장면과 후반부에 이르러 "돌석"의 회상 신에서 보이듯 두 사람은 상놈이라는 것과 옷을 만드는 장인이라는 부분에서 서로를 같은 처지로 이해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모습 또한 표현되고 있다. 결국 모든 이들의 인생이 그리 단편적이지는 않으며, 그 안에서의 인간 관계는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는 느낌을 크게 받게 되는 것이다.


11.

사실 이 영화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이유는 이렇게  마무리되기에는 이 영화가 분명히 괜찮은 장면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돌석"이 "공진"의 옷을 모아다 불태워 버리는 장면이라던가, "공진"을 붙잡아 놓고 "왕비"를 몰아세우는 신들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이렇게 어설프게 매듭지어버린 감독의 역할이 매우 아쉽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제대로  평가받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번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가 그에게 다시 한 번 주어질 지 지켜볼 노릇이다.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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