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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Oct 02. 2015

#47. 에베레스트

자연에 대한 정복욕과 그 이면의 두려움을 그려낸 영화.

Title : Everest
Director : Baltasar Kormakur
Main Cast : Jason Clarke, Josh Brolin
Running Time : 121 min
Release Date : 2015.09.24. (국내)




이 글 <넘버링 무비>는 단순히 한 작품을 리뷰(Review)하는 글이 아니라, 각자의 다른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영화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신 직후에 이 글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것이라 생각하며, 내용과 관련하여 다른 해석이나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 주셔도 무방합니다. 단, 무단 배포 및 상업적 이용은 불가합니다.


01.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재난 액션블록버스터'라는 단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최근에 와서는 '재난 스릴러'라고 불리기까지도 하는 이 이상한 장르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 그 동안 제작되어 온 작품들을 돌이켜 보면, '재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인류의 손에 의해 만들어 진 대상물로 인해 벌어지는 사고에 대한 이야기와 자연을 정복 혹은 극복해 내기 위한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 자연스럽게 영화의 스케일은 커질 수 밖에 없었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장면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산업의 성장과 함께 기술이 발전하면서 겪게 된 변화들 역시 포함한다.) 개인적으로는 '재난을 다룬 영화'들이 갖는 이러한 특색들을 홍보 과정에서 부각시키려는 노력들이 과도해 진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


02.

기본적으로 '재난을 다룬 영화'는 드라마(Drama) 장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작품의 형태나 특징에 따라, 액션이나 SF 등의 또 다른 장르들로 설명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올해 개봉한 <샌 안드레아스>(2015)의 경우에는 화려한 장면을 위한 CG 작업들을 통해 오락성에 무게를 둔, 액션 장르에 가까운 재난 영화다. 하지만 이번 영화 <에베레스트>의 경우에는 '재난'이라는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오락성이 아닌 현실성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에 오락성을 강조하는 다른 재난 영화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이 영화 <에베레스트>의 제작진은 IMAX 장비까지 에베레스트로 이동시켜 촬영을 강행했고, 배우들 역시 직접 에베레스트 산과 알프스 산맥을 오르내리며 고산병과 기후적인 어려움들을 이겨내며 연기했다고 한다.


03.

사실 장르의 성격을 나누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그리 핵심적인 부분이 아님에도 이렇게 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영화의 홍보 과정에서 잘못 전달되는 작품의 장르가 관객의 '기대감'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많은 홍보 자료에서 스펙터클한 재난 블록버스터로 설명되고 있지만, 실제로 관객이 기대하는 재난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있다. 이 영화가 스펙터클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사실적인 에베레스트의 웅장한 모습과 함께 사실적인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기대하는 '재난 블록버스터'는 이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 수용자(관객)의 잘못된 기대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그 이전에 많은 광고들에 의해 길들여진 결과물로 봐야하기에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 <에베레스트>는 영화 <샌 안드레아스>를 포함한 기존의 영화들과는 분명히 다른 작품이며, '홍보된 장르'에 대한 기대감에서부터 비롯되는 실망감이 대단히 클 수 밖에 없는 작품 중 하나이다.


04.

영화는 기본적으로 전개가 빠른 편에 속한다. 러닝타임이 2시간 남짓으로 그리 짧은 편은 아니지만, 기존의 재난 영화들이 사고가 일어나는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기 직전, 소위 '밑밥'을 뿌리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과는 다르다. 오히려 에베레스트 등정을 하기 전에 필요한 주요 과정들을 빠르게 훑어내면서, 영화 속 D-day 이전의 분량과 D-day의 분량 무게를 동등하게 가져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산악인들이 등반 계획 및 적응 훈련에 9/10을 준비하는데 이용하고, 실제 등정에 걸리는 시간은 1/10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자.) 이러한 영화의 흐름은 감독의 의도대로 작품의 현실성을 부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05.

개인적으로는 "피터 버그" 감독의 <론 서바이버>(2014)와 구조적으로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두 작품이 각각 '전쟁'과 '재난'이라는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소재에서 발생되는 특유의 특징들은 그대로 담아내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면적인 부분들까지 세밀하게 비추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론 서바이버>에서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전쟁 중에 발생하는 민간인 살인에 대한 당위성과 인간성 회복에 대한 부분이었다면, 이 작품 <에베레스트>에서는 미지의 장소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정복욕과 함께 그 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06.

이 작품에서 '벡'(조슈 브롤린)이라는 인물을 통해 대자연 앞에 미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두려움을 보여준 건 여러가지로 의미가 컸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현실성이라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비추어낼 수 있는 지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이 작품은 1996년에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재난'이라는 소재의 화려함 속에 진실된 부분을 담는 것은 정체성을 두고 보았을 때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태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만든다.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벡'은 이 재난 속에서 살아 남는다. (코와 양 손을 잃게 되기는 했지만) 그런데 '벡'이 살아남은 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타인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벡'을 도우려 했던 이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만약 '벡'이 자신의 두려움을 제대로 이해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는 '더그'(존 호키스 역)의 욕심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롭'(제이슨 클락 역)의 모습과도 이어진다. 처음 크레바스 사이를 지나며 생명의 위기를 느낀 '벡'이 두려움을 표출했던 장면만큼 마지막에서도 솔직할 수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07.

1번에서 굳이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두 가지로 분류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재난은 인재(人災)에서 비롯된다. 이 작품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의 계획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 심각한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에게는 이번 기회에 꼭 정상을 밟아야만 하는 이유가 여럿 있었지만, 그런 '더그'의 욕심 때문에 그의 곁에 머물러 있던 '롭'까지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어쩌면 이 모든 것을 '더그'라는 인물에게만 덮어 씌울 수는 없다. '롭'은 분명히 시간이 지체될 때 벌어질 수 있는 위험들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인물이었고, 그 모든 위험들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위치에 있었다. 물론 '더그'의 개인적인 사정들을 알고 있었기에 이성이 아닌 감정적인 결정을 내리고 말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 그래도 결과와 상관없이 '롭'이 내린 '감정적 결단'에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은, 그 시점이 바로 목표 달성을 눈 앞에 두고 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들이라면 내가 평생을 원하던 것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보이는 순간에서 과연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을까?


08.

이번에는 등정이 시작되기 전, 베이스 캠프에서 벌어진 일을 하나 떠올려 보자. 그 해는 예년과 다르게 에베레스트는 등정을 목표로 한 산악가들로 붐비던 해였다. 이에 기존에는 생각지 못했던 돌발 변수들이 더 생겨나게 되었고, 경험이 많았던 '롭'은 각 그룹의 대표들을 모아놓고 함께 협력을 하자는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각자의 계획을 갖고 있던 이들은 그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겨우 "스캇"(제이크 질렌할)만이 동의하며 나선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각 코스마다 준비되어 있어야 할 산소통은 남아나질 않게 되고, 주요 코스의 로프는 사라진 채 방치되어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리는 데 버리게 만들고 만다. 이 장면은 '에베레스트'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기는 하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협력이 아닌 경쟁, 공존이 아닌 생존에만 몰두해 있는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지 이 작품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팀'이라고 외치던 그들이었기에 더욱 말이다.


09.

지난 작품 <투건스>(2013)를 통해 의외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던 감독 "발타자르 코루마쿠르"였기 때문에 이 작품 <에베레스트>가 기다려진 것도 있었고, 지난 베니스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다기에 더욱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사실 결정적인 이유는 "키이라 나이틀리"였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녀가 표정이 풍부하거나 감성이 대단히 뛰어난 여배우라고 이야기는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이 보여줄 수 없는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 느낀다. 이번 작품에서는 생각보다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롭"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으며 슬픔을 절제해내는 그 모습만으로도 그녀의 분량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글쎄 나는 그녀를 왜 좋아하는 걸까?


10.

이처럼 영화 <에베레스트>는 관객들이 처음에 기대했을만한 화려하고 오락성이 뛰어난 재난 영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인물들의 내면을 투영해 볼 수 있는 드라마가 강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바로 이런 부분들이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드라마(Drama)가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작품에도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에베레스트 라는 공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 곳의 지명을 언급하는 부분들에 있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미래에 있을 사고를 암시하고자 했던 장면들이 상당히 피상적이고 획일적이기에 신선한 장면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관객들에게는 커다란 아쉬움이 될 것이다.


11.

이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면 작품의 내외면을 모두 관통하여 총 세 부분의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가장 멀리 서 있는 것은 역시나 에베레스트. 그리고 그 산을 오르고자 했던 영화 속 주인공들. 또한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우리들까지. 그들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자 했던 마음과 그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오롯이 각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그들이 자신의 산을 바라보며 느꼈을 두근거리는 마음 정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이어 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꿈꾸는 에베레스트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12.

헬기를 타고 내려오던 '벡'의 시야에 들어오던 풍경. 그것은 그가 베이스캠프를 향해 올라왔던 그 길이었다.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그 모습 앞에서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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