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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Oct 08. 2015

#048. 인턴

눈과 귀가 아닌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진 영화.

Title : The Intern
Director : Nancy Meyers
Main Cast : Robert De Niro, Anne Hathaway
Running Time : 121 min
Release Date : 2015.09.24. (국내)




이 글 <넘버링 무비>는 단순히 한 작품을 리뷰(Review)하는 글이 아니라, 각자의 다른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영화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신 직후에 이 글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것이라 생각하며, 내용과 관련하여 다른 해석이나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 주셔도 무방합니다. 단, 무단 배포 및 상업적 이용은 불가합니다.


01.

올해는 좋은 외화들이 참 많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서 '좋은'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작품이 갖고 있는 무게의 경중을 떠나서 '이야기(Story)'에 집중하려는 영화들이 많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물론 국내 작품들 중에도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괜찮은 작품들이 눈에 띄는 한 해였지만, 굳이 외화라고 특정한 까닭은 이 좋은 작품들을 통해 헐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중형 작품들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가 동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의 기반이 단단해야 한다고 한다. 영화 산업 또한 마찬가지다. 자본의 힘을 빌어 매스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형 작품들이나, 제작의 어려움으로 주목받는 다양성 영화들의 중요성만큼이나, 한 문화권에서 중형 작품들이 얼마나 원활하게 제작되고 있는 지의 여부는 그 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02.

그런 점에서 영화 <인턴> 역시 대형 시리즈물만큼의 제작비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매년 헐리우드를 통해 쏟아지는 중형 작품들 중 하나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감독인 "낸시 마이어스"부터가 그런 작품들에 굉장히 특화된 감독이었다. 2000년을 전후로, <페어런트 트랩>(1998), <왓 위민 원트>(2000), <로맨틱 홀리데이>(2006) 등 그녀가 연출을 맡아온 작품들만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관객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녀는 이번 작품 <인턴>에서 역시 그녀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특히 이 영화의 오프닝에서 회사 밖 거리를 따라 서서히 따라 들어가는 카메라 앵글은 그 당시에 자주 쓰였던 방식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그녀가 갖고 있는 어떤 뚝심과 같은 것을 조금 느낄 수 있게 된다.


03.

사실 이 영화의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하기 힘들 것 같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들의 작품들이 그랬듯, 이 작품은 어떤 목적을 갖고 치밀하게 구성된 영화라기 보다는, 각각의 시퀀스가 하나의 에피소드를 담당하는 식의 구조를 가짐으로써 이야기를 켜켜이 쌓아 올려 나가는 식의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아우어 이디엇 브라더>(2012)나 <에브리바디스 파인>(2009)과 같은 작품들처럼 가볍지만 심오함이 담겨 있는, 한 번쯤 인생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매력을 가진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특히 <에브리바디스 파인>의 경우에는 이 작품 <인턴>에 나오는 "로버트 드 니로"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도 있으니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04.

사실 <에브리바디스 파인>(2009)나 <미트 페어런츠> 시리즈(2000, 2004, 2010)와 같은 작품들을 접하지 못한 관객들이라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로버트 드 니로"의 모습에 다소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인턴>에서 그가 연기하는 "벤"과 같은 캐릭터는 그에게 그리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분노의 주목>(1980)이나 <언터쳐블>(1987), <좋은 친구들>(1990) 등의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폭발적인 감정의 표출이야말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로버트 드 니로"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그가 같은 시절을 보내 온,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고(故) "로빈 윌리엄스"와 자주 비교되었던 것만 떠올려 보더라도 그가 이 작품의 "벤"을 연기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0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로버트 드 니로"가 보여주는 "벤"의 연기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지난 40년 간 일했던 직장에서 은퇴한 정년 퇴직자로 아내마저 사별한 뒤 혼자 남게 되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남은 시간을 TV 앞에서 리모컨이나 만지작 거리며 보낼 생각이 전혀 없다. 오래된 브리프 케이스를 자랑처럼 들고 다니고, 스마트폰 대신 알람 시계와 계산기를 사용하지만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항상 당당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상대가 자신보다 어리다고 해서 결코 거들먹거리려고 들지 않는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영화 속 인물인 "벤"을 위해 연기된 것들이지만 그 모습이 때론 천진난만해 보이기 까지 하는 "로버트 드 니로"의 사람 좋은 웃음과 전혀 이질적이지가 않은 것이다.


06.

영화 <인턴>을 접한 관객들 대부분이 이 작품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그런 "벤"이라는 인물을 통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진짜 어른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에는 그런 어른이 내 곁에도 한 명쯤 있어 주기를 바라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음과 동시에 스스로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감화시킬 줄 아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물론 "벤"은 영화 속 인물이기는 하지만 왠지 나도 모르게 그를 롤모델로 삼고 싶다는 마음까지 느끼게 된다.


07.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벤"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은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쪽의 사람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자신의 어려움들을 내게 자주 털어놓았고, 자연스럽게 나는 그런 경험들을 통해 타인을 잘 이해하는 사람에 속한다는 생각을 스스로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의 "벤"만큼 사려 깊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시간들이 점점 쌓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오히려 나의 솔루션들을 제시하는데 더욱 몰입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일종의 우월의식과 자만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나는 성급하기만 했던 것 같다. "벤"이라는 인물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커다란 교훈이었다.


08.

위에서 언급한 "벤"의 모습과 반대로 "줄스"(앤 해서웨이 역)를 보면서는 오히려 어떤 평범함에서부터 오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인들에게는 존경과 시샘을 오롯이 받는 잘 나가는 기업의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도 딸의 말 한마디에 어쩔 줄을 몰라하고, 남편의 짧은 외도에 마음을 졸일 수 밖에 없는 아주 평범한 여자의 모습. 사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줄스"을 보면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미란다"(메릴 스트립 역)를 아주 많이 떠올렸던 건 회사 안에서는 악덕 편집장이었던 그녀 역시 작품의 뒤편에서는 평범한 여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 속의 "줄스"는 그 모습을 "벤"이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냈던 것이고, "미란다"는 그러지 못했던 것일 뿐. 두 작품을 "앤 해서웨이"라는 배우로 연결시키는 것이 큰 의미는 없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그런 "미란다"를 보며 회사 생활을 했던 그녀가 <인턴>에서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조금 아이러니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09.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내용을 조금 더 빌려와 이야기하자면, 결국 "미란다"와 "줄스"가 비슷한 상황에 놓였음에도 결론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차이는 '자신의 잘못을 제 때 인정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두 인물 사이에는 업종의 차이, 배경이 되는 시기의 차이 등 다양한 차이점들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처음에 "벤"을  불편해했던 "줄스"가 그를 다른 부서로 이동시키고 난 뒤에 자신의 실수를 알고도 그 즉시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결국 종반에는 홀로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을 견뎌내야 하지 않았을까?


10.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캐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벤"을 만나고 난 뒤 "줄스"에게는 한 가지 변화가 생긴다. 바로 그녀가 사무실 내에서 타고 다니던 자전거에서 내려오게 된다는 점. 영화 속에서는 처음에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이유가 다른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어쩌면 그녀는 직원들과의 상이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투명한 벽을 세우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벤"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만 떠올려 보더라도 자전거에서 내려온 그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객들을 위한 박스 포장을 직접 시연하고, 상담 전화까지 받아내는 소통의 모습과는 또 다른 영역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그녀가 "벤"을 만나고 자전거를 더 이상 타지 않게 된 것에는 그 이후에야 진정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타인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1.

처음에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작품성에 기댄 영화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작품들이 늘 그랬듯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작품들이 눈과 귀를 사로 잡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작품 <인턴>은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진 쪽에 더욱 가까운 영화라고 해야 할까?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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