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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Sep 02. 2015

#005. 뷰티 인사이드

단순한 로맨스 영화로 치부하기엔 아쉬움이 있는 작품.

타이틀 : 뷰티 인사이드
감독 : 백감독
출연 : 한효주, 박서준 외 21명, 이동휘
러닝타임 : 127분
등급 : 12세 관람가
개봉 날짜 : 2015.08.20.




01.

충무로에서 멜로/로맨스물을 하지 않고서는 한 해를 버틸 수 없다는 이야기가 떠 돌던 한 때도 다 옛날 이야기. 지금의 한국 영화계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감성을 건드려 줄 법한 작품이 없는 것 같다. 올해 역시 얼마 전에 개봉했던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 정도를 손에 꼽을 수 있을까? 물론 <한여름의 판타지아> 역시 정통 계보를 잇는 멜로/로맨스의 범주에 있다고는 보기가 조금 힘든 부분들이 있다. 장르적 트렌드는 시대에 따라 돌고 돈다고 하지만 이처럼 어느 한 장르를 기피했던 시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멜로/로맨스물과 함께 힘을 잃어가고 있는 호러 장르만 해도 매년 2-3편의 한국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물론 한국 영화의 멜로 계보를 이어 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손예진", "장진영", "이은주" 등의 여배우가 즐비했던 한 세대가 허망하게 자취를 감춘 뒤로, 타이틀 롤(Title Role)을 맡길만한 여배우들이 등장하지 못했던 것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지금 그 아래로 "김새론", "김향기", "고아성", "김유정" 등의 아역배우들이 꽤나 성실히 경력을 쌓아가고 있으니 이들의 성숙함이 꽃 피우게 될  때쯤 멜로/로맨스의 시대 역시 다시 한 번 돌아오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02.

그런 와중에 그동안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업으로 삼아 온 "백감독(본명 백종렬, 이하 백감독)"이 동명의 인텔&도시바 제품 광고 <뷰티 인사이드>를 모티브로 한 작품 <뷰티 인사이드>를 연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영화판에 뛰어들었다는 소식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남자 주인공으로 무려 21명의 배우가 출연하다는 이야기에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길어봐야 14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21명의 배우라니. 10명 남짓의 메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군도>나 <도둑들> 같은 작품도 자칫 잘못하면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를 조명하거나 분량의 무게감을 조절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데 21명이라는 숫자는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거기에다 이 많은 배우들이 남자 주인공 한 명을 연기한다고 하니, "한효주"로 알려져 있는 상대역에 대한 우려스러움까지 말이다. 글쎄 솔직한 말로 "한효주"가 연기력으로 조명받아 온 배우는 아니지 않나.


03.

확실히 감독의 성향 때문인지 영화는 전체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영화 분위기들과 다소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질적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영화 자체가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여타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각 시퀀스들이 각각의 영상들이 마치 한 편의 광고 영상을 보는 것처럼 스타일리쉬했다. 특히 인트로 지점의 오프닝 시퀀스는 최근에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명의 우진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도록 보여줌으로써 그의 얼굴이 매일 아침 바뀐다는 설정을 보여 준 것. 이 장면은 앞으로 보여질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잡아줌과 동시에 내러티브가 나아갈 방향과 어느 정도의 복선 역할을 하는 기능적인 역할 역시 제대로 해냈다.


04.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속도감에 있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속도감은 단순히 빠르고 느리다는 개념의 절대적 속도라는 속성에 대한 것은 아니다.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를 처음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소요소에서 뛰어난 완급조절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앞서 이야기 한 오프닝 시퀀스와 같은 장면은 그 많은 인물을 순식간에 흘려내면서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보여으며, 특정 장면("이수"가 "우진"의 비밀을 알게 되는 장면, "우진"이 청혼을 하던 자동차 시퀀스")들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배우들의 목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의 무게감을 준다. 물론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기-승-전-결의 구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 편차가 결코 크지 않기 때문에 일부 관객들이 다소 지겨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토리 구조의 파동(Wave)이 갖고 있는 높이(Height)가 아닌 길이(Length)의 완급조절에 주목할 수 있다면 이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열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영화가 수 많은 등장 인물을 다루면서도 결코 지루하거나 늘어지는 작품이 아닌 이유이자 스토리 라인 자체가 담백하게(실망한 관객들은 밋밋하다고 표현하지만) 느껴지는 이유다.


05.

지난 씨21 1018호를 통해 "이예지" 기자는 이 작품을 <메멘토>가 보여주는 주인공의 '시간성'에 대한 자기 동일성을 상실한 것과 비교하여 "우진"이 '신체'의 자기 동일성을 상실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다중 인격(Identity Disorder)'이라는 소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헐리우드 작품들을 통해 다중 인격에 대한 플롯들은 자주 다루어졌지만 이 영화 <뷰티 인사이드>가 보여주는 '다중 인격'에 대한 내용은  그동안 표현된 방식과 차이를 갖는다. 공통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 모두 결여된 정체성으로부터 발생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 낼 것인 지, 또한 결여된 내적 자아를 찾아내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기존의 작품들이 개인의 내적 변화를 다룸으로서 주체(Subject)가 겪게 되는 혼란과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과 달리, <뷰티 인사이드>는 개인의 외적 변화를 통해 주체가 아닌 객체(Object)가 겪게 되는 혼란과 문제들에 대해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06.

위에서 설명한 시각에서부터 출발한다면 이 작품에서  중요해지는 인물은 분명히 "우진"이 아니라 "이수"가 된다. "우진"이라는 대상에 대해 "이수"가 겪는 문제는 사랑하는 대상인 "우진"을 스스로 인지할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말기에, 그 이후 "우진"의 모습을 "이수"가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그가 깨어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에 그녀는 "우진"이 자신의 존재를, 내가 "우진"이라는 사실을, 직접 알려주기 전까지 결코 알아차릴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 일종의 "인지 부조화" 문제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모습이 바뀐 "우진"이 사람이 많은 약속 장소에서 전화를 통해 "이수"를 골려주기 위해 자신을 찾아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표현되고 있다. 물론 "이수"에게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체"가 겪는 문제의 경우 해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과 달리, "객체"의 문제가 되는 순간 그녀에게 주어지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존재할 수 없었다. "우진"의 곁을 떠나는 것 말이다.


07.

위와 같은 장면, 모습이 바뀐 "우진"이 사람이 많은 약속 장소에서 전화를 통해 "이수"를 골려주기 위해 자신을 찾아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우진"의 시각에서 해석해 보자. 자고 일어나서 모습이 바뀌는 일은 "우진"에게도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처음과 달리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 일을 매일 아침 반복하다 보니 그에게도 일종의 익숙함, 루틴(Routine) 같은 것들이 생겼을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과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점점 희석되기 시작했을 것.(그렇다고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에게 있어 지난 세월 동안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 하나가 있었다. 배우자를 찾는 일. 다른 모든 일들은 혼자서 해 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일만큼은 혼자서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단 두 사람. 엄마와 "상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이수"가 나타났다. 그 오랜 시간 다른 사람과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 주던 지점(Point) 하나가 그녀로 인해 채워진 것이다. "이수"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우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끼지는 않았을까 말이다.

이 장면에서 "우진"의 행동은 결코 악의적인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자신은 "이수"를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도 이제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에, 보통의 연인들은 일반적으로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갖고 있던 특수한 상황을 간과했고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 뿐이다.


08.

이번에는 "우진"의 어머니를 한 번 보려고 한다. 처음 "우진"의 모습이 바뀌었던 날, 울면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던 아들을 보며 그녀는 어떤 감정도 내색하지 않은 채 벗겨진 슬리퍼를 다시 신겨주고 포근히 안아주었다. 이 장면서 나는 엄마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모성애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항상 내 곁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존재로서의 어머니. 영화 초반부에 보여졌던 "우진"의 어머니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러닝타임이 진행되면서 전반부에서는 알지 못했던 사실 하나가 드러난다.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변하는 "우진"의 상황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일종의 유전이라는 것. 물론 이 설정만으로는 아주 전형적이고 고리타분한 플롯으로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이 장면은 직전에 설명했던 "우진"의 어머니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바뀐 자신의 모습에 당황해 울면서 가게로 들어오는 아들을 따뜻하게 안아준 것은 단순히 그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어머니로써의 모습이 아니라, 자식의 아픔을 당신이 대신해 줄 수 없음을 미안해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겪어와야 했던 많은 어려움들을 "우진" 역시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곁에서 평생을 지켜봐 왔던 어머니로서는 인정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죽어서라도 자식만은 살리고 싶다는 부의 마음이 그 장면에 담겨 있었던 게 아닐까. 한 장면을 통해 두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더 나아가 그 두 마음 모두가 우리 부모님들의 진짜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우진"의 어머니를 다시 한 번 더 되뇌게 한다.


09.

이 영화의 타이틀이 <뷰티 인사이드>라는 점과 더불어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진짜 메시지는 "우진"과 "상백"이 운영하고 있던 Alx와 후반부에 체코에서 다른 이름으로 운영했던 가구 디자인 업체, 그리고 "이수"가 일했던 가구 판매점 Mamastudio에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수"는 가구의 모습만을 보고 업체를 선정했을 뿐인데, 두 번 모두 "우진"이 상품을 디자인하고 있었던 업체였다는 설정은 아마도 외모가 바뀌더라도 실제로 존재하는 내면은 숨길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영화는 이 부분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가치관은 무엇일까에 대해 묻고 있는 것만 같다.


10.

앞서 4번의 내용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작품에 대해 서사적 구조의 단조로움에 대해 아쉬움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진"이라는 인물이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변한다는 것만큼 단조로움을 상쇄할 수 있는 더 큰 사건이 있을까? 너무 허구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소재가 말이다. 이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그런 영화다. 앞서 이야기 한 모든 내용들을 다루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고, 그 많은 배우들을 등장시키면서도 인물들 면면의 매력들을 놓치지 않는 작품. 이 글을 시작하면서 멜로/로맨스 장르의 부족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이 작품 역시 기존의 멜로/로맨스 계보를 잇는 정통한 영화는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작품들에 쉽게 매료되는 내게는 오랜만에 만족감을 표할 수 있었던 깔끔한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11.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쯤 "우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혹시 그 전에 자리를 뜬 관객이라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떠 오른 생각인데, 어쩌면 어머니의 골동품 가게가 등장할 때마다 그 프레임 속에 항상 아버지도  함께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 영화에는 2-3번 정도 골동품 가게 장면이 등장하는데 아쉽게도 모든 장면이 기억나지는 않고 제일 마지막 장면, "이수"가 뜨개질을 하던 장면에서는 손님이 한 명 들어온 장면이 기억난다. 만약 "우진"의 아버지 역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변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추측이 아닐까 싶다. 왜 "이수" 역시 "우진"과 헤어진 이후 홀로 남겨진 길거리에서 항상 그가 곁에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지 않나.


12.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의 백미   러나오는, 때론 랄하기까지  "CITIZENS!" True Romence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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