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준 Sep 01. 2015

#004.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누군가의 인생을 지켜본다는 것은..

Title : The theory of Everything
Director : James Marsh
Main Cast : Eddie Redmayne, Felicity Jones
Running time : 123 min
Release Date : 2014.12.10. (국내)




01.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줄이기 위해서 영화를 보기 전에는 기타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이 영화 역시 영화관을 나오기 전까지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야기가 담긴 로맨스인 줄로만 여기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이 영화가 결코 로맨스만을 다루고 있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보다는 이 한 편의 작품을 통해 "스티븐 호킹"이라는 사람의 삶을 오랫동안 지켜본 듯한 감정이 들었고,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오롯이 받아들인 듯한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02.

이 영화의 스토리가 일종의 전기물이라고 보는 시각에서 이야기 하자면, 나는 이 작품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모든 부분에 있어 대단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야기 할 내적인 부분은 물론 가장 원초적으로 포착되는 외적인 부분들까지 말이다. 특히 외적인 부분을 먼저 언급하자면, 그 동안 봐 왔던 전기물들 중 그 대상과 외모적으로 가장 일치했던 캐릭터는 "애쉬튼 커쳐"가 연기한 <잡스>라는 영화의 포스터판 사진에 담긴 모습이었다.(작품 자체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으니 포스터에 담긴 모습이라고 특정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작품 자체로 따지자면 나는 아직 이 영화만큼 현존하는 인물과 똑같은 모습, 동일한 행동을 보여주는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주연인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은 부분들의 디테일까지 신경 쓰고자 했던 감독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만 같다.


03.

다른 많은 것들을 언급하기 전에 한 가지 확실하게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에서 사용되고 있는 우주 역학과 관련된 복잡한 내용들에 결코 매몰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글의 가장 처음인 1번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전기물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스텔라>에 비견될 정도로 우주 역학에 대한 많은 설명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단언컨데 이해할 수도, 하지도 못하는 이 부분들은 "스티븐 호킹"이라는 저명한 인물의 과거와 업적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 영화를 받아들이는데는 전혀 필요가 없는 부분들이니 그런 부분들에 집착한 나머지 작품의 다른 소중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04.

개인적으로는 "스티븐 호킹"이 출판을 하고 나서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는 장면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레인"과의 맞바람 장면만 제외하면 영화는 2014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는 찬사를 보내고 싶었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장면을 아쉬운 부분으로 언급한 이유는, 분명 현실적인 스토리를 담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시퀀스이기는 했으나 유이(有二)하게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립 박수 장면에서는 <변호인>의 엔딩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수준의 어색함을, 맞바람은 약간의 배신감과 함께 들어가 있던 영화 속에서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05.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의 압권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리와인드 신(Rewind Scene)"이다. 이 장면 때문에라도 이 영화는 로맨스의 모습을 한 전기물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영화가 과거를 향해 되돌아가는 동안 그가 지나온 인생 전체를 반추하는 듯한 느낌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글쎄,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분명히 전기물이라는 특성보다는 로맨스의 영역에서 오는 것이라 보여지는데, 다른 작품들에서 이 방법을 차용한다고 해서 이만큼의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에서 온전히 로맨스 장르의 특질이라고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이 작품이 러닝 타임 내내 쌓아 올린 내러티브의 무게가 그만큼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06.

이 영화에서 "호킹"과 그의 아내 "제인"에게는 각각 두 번의 심리적인 위기가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겪어야 했던 각각의 심리적인 위기는 서로의 상대에 대한 것들이었지만 결코 외면적으로는 표출할 수 없었던 개인이 오롯이 안고 갔어야 했던 부분이었으며, 앞으로 11번에서 이야기 할 서로가 느낀 같은 "아픔"의 근원적인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심리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이어질 내용들을 통해 풀어내 보고자 한다.


07.

"호킹"에게 있어 그 첫 번째 위기는 자신의 병을 듣고 찾아온 "제인"의 제안에 "크로켓"를 치러 나간 장면에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는 병을 확인한 이후 "제인"을 피하면서 거리를 두고자 했지만 병으로 망가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었던 것일 뿐 결코 이별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의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찾아 온 "제인"의 제안을 받아 들인 것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보다 헤어지는 일이 더욱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발을 끌어가며 절망적인 모습으로 "크로켓"을 치려고 했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물론, 이 장면 때문에 그녀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가 가진 모든 자존심을 그녀 앞에서 내려 놓아야만 했었을 것이다.


08.

"호킹"의 두 번째 흔들림은 "조나단"이 자신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고 돌아갈 때 일어났던 것 같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마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휠체어를 돌려 뒤돌아서는 그의 모습. 그는 "조나단"이 함께했던 시간동안 그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동안 잊고 살아왔던 것들. 즉, 현재의 자신이 "제인"에게 줄 수 없는 것과 자신의 한계를 온 몸으로 느끼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식탁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에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09.

반면, "제인"은 "호킹"의 부모님 댁을 방문하면서 극심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바도 아니었고, 자신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고 만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그렇다. 배를 굶주리다가 하루에 한 끼만이라도 먹었으면 해서 한 끼를 먹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 세 끼를 원하게 되고. 또 그 세 끼가 충족이 되면 고기 반찬이 먹고 싶어지고. "제인"에게도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조나단" 같은 멀쩡한 남자와 함께, 남편이 아닌 아이들을 보살피며 살고 싶은 욕구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 동안은 모른 척하고 지내왔지만 마음이란 게 어디 그리 쉽게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10.

그리고 "호킹"이 "일레인"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 "호킹"이 "일레인"과 함께 뉴욕으로 가겠다고 하는 장면에서 "제인"은 또 한 번의 아픔을 느끼게 된다. "호킹"이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불륜에 대한 것이었지만 "제인"이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나 분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그 감정이 배신감이나 분노의 영역에 놓인 것들이었다면 그녀가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 것 같다. 두 사람의 과거를 조목조목 읊어가는 "호킹"의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내뱉고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호킹"에 대한 자신의 첫 감정을 떠올리진 않았을까? 그녀의 눈빛이 영화 속에서 가장 슬퍼보였다.


11.

결국 7번에서부터 10번까지 조목조목 이야기 했던 이 사건들이 보여주는 것은 단 한 가지. 두 사람의 문제는 외부에 있었다기 보다 내부적인 문제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늘 함께였음에도 서로가 자신이 더 외롭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 다만 두 사람의 느낀 각각의 문제들에 차이가 있었다면 "호킹"이 자신의 신체적인 문제에 갇혀 외로움을 느낀 것과 달리, "제인"은 자신에게 돌봐야 하는 이는 있을지언정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기댈 수 있는 공간)은 없다는 상황에서 오는 정신적인 문제로 외로움을 느꼈다는 것 뿐이다.


12.

이 영화에서 딱 하나.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물건을 찾아본다면 그것은 바로 "펜"이 될 것이다. 영화 초반 부를 보면 "샤마" 교수를 찾은 "호킹"이 책상 위에 있던 펜을 잡다가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이 장면이 그저 지나가는 장면인 줄 알았는데, 후반부에 이르러 그가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 한 참석자가 펜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다시 등장하고 때 맞춰 "호킹"이 다시 걸어가는 장면이 겹쳐 지나가면서 나는 펜이라는 물체에 주목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영화 속에서 "호킹"은 펜을 떨어뜨린 장면 이후로 조금씩 손을 떨고 목이 삐딱해지기 시작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엽적인 해석을 떠나서 학자였던 "호킹"에게, 또 시간이 흘러 결국에는 말을 할 수 없게 되는 "호킹"에게 펜이라는 도구가 주는 상징적 의미는 다른 어떤 도구들보다 큰 의미가 아니었을까.


13.

앞서 내가 이 영화를 전기물이라고 보면서도 "로맨스의 모습을 한 전기물"이라고 표현 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하나는 "호킹"이 연주회에서 쓰러지는 시간과 "제인"이 캠프장에서 외도를 하는 시기를 같은 타이밍에 일치시켜 놓은 연출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호킹"이 "일레인"을 받아들이는 후반부의 내러티브 때문이다. 물론 "일레인"이라는 인물은 "제인" 이후에 아주 오랜만에 "호킹"을 알아 봐주고 인정해주는("제인"은 처음에는 그랬던 인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람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제인"과 관련된 자신의 과거를 보상받기 위한 심리도 깔려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불륜"이라는 코드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고 말이다.


14.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와 한 영화에서 로맨스와 전기를 모두 느낄 수 있었던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전반부에서 중반부까지의 내용은 로맨스적인 판타지를 충족시키면서도 후반부의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 하자면 <비포 시리즈>에서 <비포 선라이즈>의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비포 미드나잇>의 현실을 한 영화에서 모두 맛 본 느낌이랄까.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하기 힘든 것이 사실인데 이 짧은 시간에 "스티븐 호킹"이라는 인물을 다루면서도 두 가지 장르를 잘 녹여냈으니 마음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15.

"제인"의 종교 역시 영화 속에서 캐릭터 설정을 위한 장치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종교는 "호킹"이 갖고 있던 연구 기조와 부딪히는 요소임과 동시에 "호킹"의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로서 역할하기 때문이다.(현실에서도 이런 작용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모른다.) 그리고 나는 "제인"이 그 긴 시간을 "호킹"과 함께 할 수 있었던 데는 분명 그녀의 종교적 신념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조나단"과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사건과는 별개로 말이다.


16.

이 쯤되면 로맨스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국 "워킹 타이틀 필름즈" 작품들은 그냥 이 제작사의 이름만 듣고도 골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팅 힐>이나 <러브 액츄얼리>, 작년 <어바웃 타임>까지 모두 이 회사의 작품이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얼 하겠나.  이 회사의 작품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매우 잘 읽어내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또 한 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17.

마지막으로, 이 역할을 위해 6개월 전부터 직접 루게릭 환자들을 통해 캐릭터를 연구하려고 했다는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곳도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말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저 괜찮은 배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 영화 한 편으로 그에 대한 모든 생각을 뒤집어 놓고 말았다. 매년 한 명 정도 대단한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가 나타나는데, 2014년에는 단연코 "에디 레드메인"의 "스티븐 호킹" 연기가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글을 바탕으로 재구성 된 글입니다.


Copyright ⓒ 2015.

joyjun7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003.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