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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Aug 30. 2015

#003.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아이들에게 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커다란 세상인지.

Title : What Maisie Knew
Director : Scott McGehee, David Siegel
Main Cast : Julianne Moore, Alexander Skarsgard, Steve Coogan
Running time : 99 min
Release Date : 2014.03.27. (국내)




01.

나는 어린 나이에 눈치를 보는 법을 벌써 알아버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속이 한 없이 가라앉는 감정을 느낀다. 아무 고민 없이 해맑게 에너지를 방출해야 할 시기에 두려움과 무서움을 먼저 배워버린 아이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상황에서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하게 하는 인내심까지 보이는 아이들을 볼 때다. 일생 중에서 한 없이 자신에게만 몰두할 수 있는 그 어린 시절을 벌써부터 다른 사람의 마음부터 헤아리려는 아이들의 모습. 아이러니한 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어른들이라는 것이다.


02.

이 영화는 아이에 대한 진실된 책임감 하나 없이 서로의 양육권만 주장하며 이혼을 맞이한 부부와 그들의 딸 "메이지", 그리고 그들 각각의 새로운 배우자가 살아가는 모습을 "메이지"의 시각에서 조명한 영화다.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언론 매체를 통해서나 볼 법한 이 영화가 실제로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현실감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아이, "메이지"의 마음을 너무나 섬세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속 부모의 시선이 아닌 그들의 갈등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의 시각을 표현하고자 한다.


03.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 엠 샘>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내러티브 자체는 <아이 엠 샘>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어린 "다코타 패닝"의 연기를 보면서 놀랐던 그 때의 감정만큼이나 쉽게 설명하지 못할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 당시의 "다코타 패닝"만큼이나 이 영화의 주인공인 "메이지" 역 "오나타 에이프릴"은 섬세하고도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아역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 같지 않은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연기가 더욱 대단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그녀가 시종 일관 어두운 연기를 해내고 있으면서도 과잉된 감정에 매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도 같다.


04.

"메이지"의 부모인 "수잔나"와 "빌"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메이지"에게 불안함을 심어주는 존재들이다. 입으로는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뱉어내고 있지만 정작 "메이지"의 귀에 들리는 것은 그 두 사람의 갈등에서 비롯된 고성과 욕설들이다. 이 영화가 주인공을 이 6살 난 소녀로 정한 것은 이 부분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진다. 여섯 살이라는 나이는 그보다  어린아이들보다는 상황에 대한 인식이 정확할 수 있는 시기임과 동시에 그 보다 더욱 성장한 아이들에 비해서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특정한 행동을 하기엔 다소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6살 "메이지"는 자신의 부모가 보여주는 모든 갈등을 이해하면서도 그에 대한 다른 어떤 표현도 하지 못하고 모든 상처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05.

영화 초반에 "메이지"의 친구 "조이"가 집에 놀러 오는 시퀀스가 있다. "조이"는 "수잔나"와 그 친구들이 보이는 생경한 장면들에 적응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 장면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새롭게 등장한 "조이"가 될 법도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인물 역시 바로 "메이지"라고 볼 수 있으며 그녀의 행동에 주목해 보아야만 한다. 같은 또래인 "조이"의 두려움이나 낯섦을 "메이지"는 벌써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장소가 "메이지"가 살았던 집이었기 때문일까? 아니. 그 상황에 그만큼 자주 노출되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잔인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말이다.


06.

영화 전반부에서 "마고"는 "메이지"에게 일종의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게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링컨"과 더불어 가장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윽박지르고 자신의 감정을 주입시키기에 바쁜 원래 부모들과는 달리 항상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영화 속 인물들 중 가장 책임에서 벗어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07.

원래 부모였던 "수잔나"와 "빌"은 "메이지"로 하여금 모든 것을 숨기고 감추도록 했던 인물들이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동화도 엄마가 보내준 꽃다발도. 심지어는 그녀의 속마음까지도 말이다. 이 부분에서 "마고"는 "메이지"에게 꼭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아빠의 눈을 피해 옷장 속에 숨겨둔 꽃다발도 먼저 꺼내놓자고 했고, 그녀의 부모들이 허공에다 뱉은 약속들을 모두 가능하게 해 준 사람이었으니까.


08.

"메이지"가 놓인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하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더욱 무게를 두는 행동들을 한다.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마음에  함께하자고 해 놓고 부모 주도적으로 모든 일을 끝내버린다던가. 놀아준다고 해 놓고 일이 커질까 봐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모든 걸 제한시키거나. 이런 자신들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을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에는 절대적으로 결과보다  함께 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09.

법원의 명령으로 아빠인 "빌"과 함께 살다가 며칠 만에야 엄마 "수잔나"를 만난 "메이지"의 모습은 영락없는 6살 소녀다. 단 한 번도 아빠 앞에서 보인 적이 없었던 어리광에, 숨겨둔 상처까지 드러내 보이며 엄마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 그런데 그 엄마라는 사람은 그 어린 딸을 이용해 아빠라는 사람보다 자신이 더 피해자임을 증명하고자 하고, 스스로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한 용도로 밖에 딸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메이지"는 그런 그녀를 끝까지 "엄마"라고 부른다.


10.

이 영화 속에서 딱 한 장면. "메이지"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나온다. 부모의 싸움 앞에서도, 낯선 사람과의 동행 속에서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메이지"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그들을 대신해 마음을 기댈 수 있었던 "마고"와 "링컨"마저도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1.

영화의 감독은 이 영화에서 딱 한 가지. 매우 영리한 방법으로 "메이지"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메이지"라는 소녀가 하는 행동들을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은 모르게 관객들에게만 슬쩍 보여주는 것이다. 연극으로 따지자면 일종의 "방백"에 해당한다고 해야 할까. 영화 속에 아니 "메이지"라는 소녀에게 점점 빠져들게 된다.


12.

아빠의 무의미한 약속 위에서 떠돌기만 하던 크루즈 호와 그녀의 맑은 웃음 위에서 떠다니던 작은 보트. "메이지"의 마지막 선택이 너무나도 잘 이해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13.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고" 역의 "조안나 밴더햄". 개인적으로는 처음 본 여배우인데 너무나 매력적이다. 조금 청순하게 생긴 "마고 로비"의 느낌도 나고. 그나저나 나는 왜 이렇게 영국 배우에 목매달아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엔딩곡으로 나오는 "Lucy Schwartz"의 Feeling of Being 이라는 곡도 매우 좋으니 한 번 들어보시기를..




**이 글은 2013년부터 작성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동일 연재글을 바탕으로 재구성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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