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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Nov 22. 2015

#053. 내부자들

자신만의 무기들로 약점을 지워나가는 작품.

 이 글 <넘버링 무비>는 단순히 한 작품을 리뷰(Review)하는 글이 아니라, 각자의 다른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영화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신 직후에 이 글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것이라 생각하며, 내용과 관련하여 다른 해석이나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 주셔도 무방합니다. 단, 무단 배포 및 상업적 이용은 불가합니다.




1. 미생과 이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의 웹툰 또 다른 <내부자들>은 정치의 실상을 예리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내성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껴 연재를 중단했던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끝나지 못한 그 이야기를 "우민호" 감독의 시선으로 스크린에 옮겨다 놓은 것이 바로 동명의 영화 <내부자들>인 것이다. 감독에 따르면 그는 원작 웹툰에 존재했던 정보전달적 부분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현실 속 리얼리티가 주는 에너지와 목표들만을 가져오고자 했다고 한다.


2. 글쎄 그의 말대로 이 작품이 실제 정치판의 모습을 얼마나 옮겨다 놓았는지에 대해서는 그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입장에서 그 동안 보고 들어온 몇몇 사건들만을 놓고 어림짐작할 수 밖에 없지만, 완전히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은 않는다는 점에서 한 편의 잘 짜여진 이야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수 많은 작품들이 현실을 풍자하고 기득권들에 대해 도전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시도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작품 <내부자들>이 가장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3. 물론 이 작품의 스토리가 드라마틱하다는 이야기는 결점이 없다는 쪽이 아니라 작품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결점들을 그만큼 잘 가려낼만한 요소들이 다양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은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모두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캐릭터들을 충무로에서 연기라면 한 가닥씩은 모두 한다는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으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4. 특히 "이병헌"이라는 배우에 대해 따로 언급하고 싶다. 그가 이 영화에 캐스팅 된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시기가 맞아 떨어졌다면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적 상황들 속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로 승부수를 던진 것 같다. 그의 전작인 <달콤한 인생>(2005)의 "선우" 역과 비슷하면서도 능청스러움까지 보여주는 "안상구"(이병헌 역)라는 캐릭터는 복수를 꿈꾸면서도 극단적으로 어둡지 않을 수 있었기에 더욱 매력있게 전달된 게 아닐까. 어쨌든 그는 분명히 실력을 갖고 있는 배우임과 동시에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5.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수 많은 장치들 중에 가장 영리한 부분은 '백도 없고 줄도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우장훈"(조승우 역)이라는 인물의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작품들 속에서 출신 성분에 대해 언급하는 작품들은 많았지만, 그것을 이용해 한 인물을 사건의 중심에 던져놓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설정은 "우장훈"이라는 인물이 자연스럽게 "안상구"와 협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두 사람의 칼날이 "장필우"(이경영 역)를 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6. 감독이 의도한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인물들의 특정 대사가 영화의 특정 지점과 교묘하게 엇갈려 대사의 시점에서 바라볼 때 영화 속 특정 장면에 대한 화두가 되는 식의 구조 역시 이 작품 <내부자들>의 매력적인 부분이다. 그 중 하나다. "이강희"(백윤식 역)는 취조실에서 자신 앞에 앉아 있던 "우장훈"에게 같은 단어도 누구에게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이야기 한다. 영화 속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의" 역시 그렇게 보여진다. 단어는 하나이지만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것.


7. 살다보면 설마 싶었던 마음 속 작은 의구심을 타인을 통해 확인받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진짜가 아니기를 바랬지만 결국 그 생각은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스스로의 방어 기제일 뿐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들. "우장훈"이 "안상구"에게 "이강희"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개인적으로 "안상구"가 "이강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복사본을 만들어 놓은 것부터가 그렇고, "장필우" 주변에 공사를 치기 전에 굳이 "이강희"를 찾아가 미리 말해주는 장면도 그렇고. 하지만 그 험한 세상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이강희"라는 인물이었기에 차라리 아니라고 굳게 믿는 것이 더 마음 편했을지도 모른다.


8. 앞서 5번에서 "우장훈"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영화 속에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이야기 했지만, 그의 과거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영화가 지금 스크린에 보여지는대로 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장필우"와 그의 무리들이 "우장훈"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곳을 향하고 싶어하지만 '백도 없고 줄도 없는' 그가 코너에 몰렸을 때 자신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 물론 "우장훈"이 "장필우"를 잡으려고 했던 이유가 자신에게 없는 요소들을 대신하기 위함이었던 것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책상 앞에 놓여 있던 메모 "지옥길을 걷고 있다면 계속 가라"를 보아도 그의 내면을 유추해 볼 수 있고, 경찰 생활을 청산하고 검찰이 되고자 했던 이유 역시 그렇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 "우장훈"이 마지막에 이르러 실제로 "장필우"의 편에 서게 되었다면 그의 원하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9. 세상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니던 "장필우"를 쫓던 "우장훈"은 "이강희"로부터 생각하지도 못했던 역공을 하나 당하고 만다. 아무것도 몰랐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강희" 측이 돈을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떡값을 건넸던 것. 물론 그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받았을 것이고 이 사소한 실수 하나가 잠시 동안 "우장훈"의 발목을 잡고 만다. 사실 "장필우"와 "이강희"가 하고 다니는 짓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흠이 된다.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끔 타인의 100이라는 잘못 앞에서 10이라는 자신의 잘못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건 100과 10이라는 대소의 차이일 뿐이지 엄격하게는 둘 모두 '잘못'의 영역에 존재한다. 그리고 영화 속 "우장훈"처럼 언제든 그 작은 균열 하나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


10. 이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처음에 이 작품의 동명 원작의 연재가 중단 되었다고 말했다. 이 상황이 영화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부분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적어도 후반부로 넘어가는 도중에 발생하는 내러티브들의 병목현상은 하나의 약점으로 남고 말았다. 분명히 이 작품은 몇몇 약점들을 자체적인 매력들로 덮어내고 있지만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며, 또 판이 몇 번이고 뒤짚어지는 스토리 라인이 그리 깔끔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 원인은 바로 타이틀인 <내부자들>이 영화 전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욕심을 결국 버리지 못한 것에 있는 것 같은데, 작위적으로 '내부자'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방향이 유일한 악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11. 엔딩에 이르러 출소한 "안상구"는 "우장훈" 변호사를 찾아가 다시 한 번 강을 건너가야 하지 않겠냐고 슬쩍 떠 보지만 나는 "우장훈"이 두 번 다시 강을 건너갔을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를 한 잔 했을 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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