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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Nov 25. 2015

#054. 헝거게임 : 더 파이널

안정적인 마무리라는 안타까운 선택.

 이 글 <넘버링 무비>는 단순히 한 작품을 리뷰(Review)하는 글이 아니라, 각자의 다른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영화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신 직후에 이 글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것이라 생각하며, 내용과 관련하여 다른 해석이나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 주셔도 무방합니다. 단, 무단 배포 및 상업적 이용은 불가합니다.




1. 이 영화의 시리즈 <헝거 게임 : 판엠의 불꽃>(2012)이 시작된 지도 벌써 햇수로 4년. 그간 쉬지도 않고 매년 한 편씩의 작품을 선보였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 글 정리를 하다가 나도 놀란 점이 있는데 그 동안 <헝거 게임> 시리즈에 대한 글을 한 편도 남겨 놓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사실 국내에서는 외화 탑 리스트에 거론할만큼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헝거 게임> 시리즈는 '영 어덜트' 장르라는 전에 없던 말까지 만들어 내며 특히 북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덕분에 이후에 <다이버전트>, <메이즈 러너>와 같은 시리즈물들이 손쉽게 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 영화 <헝거 게임>은 시리즈의 첫 작품인 <헝거 게임 : 판엠의 불꽃>과 그 이후의 세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 다르다. 호흡이 긴 시리즈물에서 도중에 감독이 교체되는 것이 이례적인 사건이라 보기는 힘들지만, 시리즈의 처음을 시작한 "게리 로스" 감독과 그 이후를 이어받은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의 스타일이 같다고 보기도 힘들 것 같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게리 로스" 감독의 <헝거 게임 : 판엠의 불꽃>과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의 후속편들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작품의 시점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 소설이 그렇듯이 "게리 로스" 감독은 영화의 중심에 "에버딘 캣니스"(제니퍼 로렌스 역)를 두고 작품을 그려나갔다. 그랬기 때문에 시리즈 그 어떤 작품보다 <헝거 게임 : 판엠의 불꽃>에는 "캣니스"라는 소녀가 느끼는 감정들과 혼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고. 반대로 이후의 작품들, 즉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의 <헝거게임 : 캣칭파이어>(2013), <헝거 게임 : 모킹제이 Part 1>(2014), <헝거 게임 : 더 파이널>(2015)에서는 그녀의 감정적인 부분들이 절대적으로 배제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며 스토리의 매끄러운 진행과 안정적인 마무리에 더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3. 그래도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의 처음 두 작품인 <헝거 게임 : 캣칭파이어>와 <헝거 게임 : 모킹제이 Part 1>의 경우에는 원작 소설의 내용을 대체적으로 따르고 있으며, 전체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헝거 게임"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적절한 비중의 액션들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감독이 교체되기는 했으나 "플란시스 로렌스" 감독이 안정적으로 시리즈를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가 추구했왔던 이 안정성이 결국 시리즈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이번 작품 <헝거 게임 : 더 파이널>에 이르러 돌이킬 수 없는 약점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작품은 <헝거 게임> 시리즈 중에서 가장 지루했던 작품이었으며, 영화 속에 담긴 감독의 수 많은 이야기들 중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된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4. <헝거 게임>이 애초에 3부작의 이야기가 담겨 있던 원작 소설의 틀을 크게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고 새로운 매체를 통해 기존의 틀만을 간직한 채 변용(Transfiguration)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알려진 대로 제작사인 '라이온스 게이트'의 시리즈물을 통한 지속적인 수익 창출을 위한 계획적인 시나리오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아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오기는 했는데, 그 엔딩에 이르러 마무리를 해야하는 소스들이 너무 많이 남아 버렸다. 서정적으로는 "게일"(리암 햄스워스 역)과 "피타 멜라크"(조쉬 허처슨 역)와 "캣니스"의 삼각 관계도 정리해야 하고, 서사적으로는 캐피톨 구역과 반군들의 관계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와 동시에 함께 "헝거 게임"에 나갔다가 살아돌아와 반군에 가담한 인물들의 사후 처리 문제도 남아 있었으며, 각 구역의 주민들에게 "모킹제이"가 주는 상징성 역시 전편에 이어 버리지 못할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감독은 이제 <헝거 게임 : 더 파이널> 이 영화 한 편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엔딩으로 향할 수 있는 갈림길이 너무나 많아져 버린 것이다.


5. 만약 당신이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은가? "플란시스 로렌스" 감독은 너무나 허무하게도 이 영화의 엔딩을 위해 작품의 전체 스케일을 축소해버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다. 이것도 저것도 하나만 선택할 수는 없으니, 전부 조금씩 녹여내기는 하되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남지 않도록 말이다. 어쩌면 이는 예견된 수순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늘 바래왔던 것은 영화가 안정적으로 큰 무리없이 마무리 되는 것이었던 것처럼 보여져 왔으니 말이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버릴 것 같은 부분들은 폭격하는 장면으로 묻어버리고, 세 사람의 스토리 라인은 도망을 치던 와중에 "캣니스"가 "게일"에게 키스를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캐피톨과 반군은 제대로 된 전쟁 한 번 하지 못한 채 반군의 수장인 "알마 코인"(줄리안 무어 역)의 계략에 의해 모두 희생되는데, 글쎄 이 모든 시도들이 과거 <헝거 게임> 시리즈가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성과 일치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6. 앞서 언급한 이 모든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이 영화 <헝거 게임 : 더 파이널>이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선물은 과거의 전작들이 그랬듯 "캣니스"의 화려한 활 솜씨를 바탕으로 한 액션 하나다. 영화 속에서 "캣니스" 집단이 추적자들을 피해 캐피톨 내부를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지하 통로 장면들, 특히 돌연변이 괴물들을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 올해 9월 개봉했던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의 그 장면들과 유사하게 느껴졌던 것은 오로지 기분 탓인걸까? 지금까지 언급해 온 이 모든 내용들로 인해 <헝거 게임 : 더 파이널>은 더 이상 "헝거 게임" 시리즈가 아닌 것 같은 느낌마저 받게 되었다.


7.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반군들이 소망 했던대로 캐피톨을 점령하고 판엠을 돌려 받지만, "스노우 대통령"의 자리에 대해 야욕을 드러내는 "알마 코인"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했던 유토피아가 결국 과거와 다름없는 단순한 '복수극'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의 끝 없는 욕심과 목적을 상실한 비이성적인 복수의 끝에 남은 허무함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영화의 시작과 함께 잠깐 비춰졌던, 이제는 고인이 되어 버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조금 짜릿하기도 했고.


8. 이 작품에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스스로 돌아보게 되기도 하지만, 역시나 이 작품의 마지막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시리즈 전체를 지나 오며 만들어 왔던 의미있는 부분들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완성해 내지 못했다는 부분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캐피톨을 되찾고 고향으로 돌아가 "피타"의 곁에서 행복해 하는 "캣니스"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영화 속 많은 이야기들을 덮어 버린 점이 안타까움으로 남으며, 반군의 상징이자 이 영화의 상징적 장면인 "모킹제이"로서의 "캣니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심한 갈증을 느낀다.


9. 누구나 예상 가능한 무난한 마무리이기는 했으나, 과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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