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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Dec 23. 2015

#055.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전하는 또 다른 따스함.

 이 글 <넘버링 무비>는 단순히 한 작품을 리뷰(Review)하는 글이 아니라, 각자의 다른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영화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신 직후에 이 글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것이라 생각하며, 내용과 관련하여 다른 해석이나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 주셔도 무방합니다. 단, 무단 배포 및 상업적 이용은 불가합니다.




1.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감성들이 담겨 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를 원하고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기를 강요받는 현실과는 달리 그의 이야기 속에는 일관성 있는 안정감과 포근함이 있다. 문화와 관념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One Source Multi Use'를 실현해내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까? 그의 에세이집인 <걷는 듯 천천히>를 보고 나면 그의 작품 세계가 단순히 영화 속에만 묻어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2000년대에 소개 되었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와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2007)의 원작자인 "이치가와 다쿠지"의 소설 세계가 마치 그러했듯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속에도 어떤 일련된 감정들이 담겨져 있다. 현재 존재하는 감독들 중 화해와 이해를 가장 현실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감독이 아닐까 싶다.


2. 그의 작품 세계 속에는 현실과 맞물려 있는 실로 다양한 주제들이 혼재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가족에 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제와 소재는 조금씩 달랐을 지 모르지만 <아무도 모른다>(2004)를 시작으로 <걸어도 걸어도>(2008),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등 다수의 전작들을 통해 그는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풀어내 왔다. 이번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전작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아이를 통해 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었다면,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인물들은 그 이전 세대가 남겨 놓은 이야기들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어른 아이)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3. 확실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은 혼재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모두가 잘 표현되어 있어 각자의 개별적인 스토리를 하나 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개인의 스토리가 영화의 어떤 한 부분에 묻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골고루 잘 분배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 때문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특정한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느낌보다는 함께 어우러져 간다는 기분이 더욱 크게 든다. 그리고 그 모습마저도 우리의 실제 인생과 닮아 있는 것 같다.


4.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가장 뼈대가 되는 스토리는 같은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이복 자매들이라는 설정이다. 아버지의 첫 번째 아내의 딸로 함께 자라 온 "사치"(아야세 하루카 역),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역), "치카"(카호 역)와 두 번째 아내의 딸로 앞의 세 자매를 그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나게 된 소녀 "스즈"(히로세 스즈 역)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가장 크게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인물들 각자의 사정에 따라 그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표현된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함께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장녀 "사치"와 그 아래 "요시노", "치카"의 부모에 대한 원망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본적으로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갖고 있지만, 아버지의 부재와 함께 떠나버린 엄마에 대해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요시노"와 "치카"와 달리 "사치"의 원망은 오히려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향해 있다.


5. 장녀인 "사치"의 원망이 어머니를 향해 있는 것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아버지의 부재와 함께 떠나버린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두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난 긴 시간 동안 그녀가 지켜온 것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어머니라는 존재를 미워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녀의 이러한 성격은 '옷'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언제나 지키기 위한 삶을 살아온 그녀였기 때문일까? 자신의 옷 한 벌마저도 쉬이 내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이 장면을 여자 자매들이라면 흔히 겪게되는 일종의 에피소드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후에 둘째인 "요시노"에게 옷을 주는 장면이라던가 막내 "스즈"에게 기모노를 내어주는 장면은 그녀가 어머니와의 화해 이후 그런 부분들에 대한 트라우마를 내려놓은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6. 그런 그녀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유부남 "카즈야"(츠츠미 신이치 역)와 밀애를 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이러한 점 역시 그녀가 다른 여자를 만나 자신들을 떠난 아버지보다 아버지가 떠난 뒤 마지막 기댈 곳이었던, 그렇지만 그 기대를 져 버리고 말았던 어머니의 부재를 증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점은 처음 만났지만 이복 동생이었던 "스즈"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을 것도 같다. 물론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티끌 한 점 없이 어른스럽기만 했던 그녀가 안타까웠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 역시 유부남과 사랑을 공유하고 있는 지점에서 어떤 일종의 속죄에 대한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부분까지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7. 처음 만나는 이복 언니들의 동거 제안을 어린 소녀 "스즈"가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사회적으로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을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에게서 태어난 자식이자, 이후 세 번째 아내와의 삶 속에서 홀로 감내해야만 했던 부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장례식 이전까지는 생판 알지도 못했던 그녀들을 따라 나섰다는 점 자체가 이전에 있었던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고,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사치")가 자신의 진짜 마음을 이해해주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그녀들과 함께 사는 삶 역시 "스즈"에게 녹록치만은 않다. 모든 것이 새로움과 적응의 연속이다. 또한, 같은 아버지를 두고 그를 토대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함께 살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진 느낌이다.


8. 아버지의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잔멸치 덥밮'에 대한 이야기를 애써 숨기려는 "스즈"의 모습에서 그녀가 얼마나 조심스러워했는지를 엿 볼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쉬이 꺼낼 수 없는 사이라 느끼지 않았을까. 이후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치카'를 통해 아버지와 '잔멸치 덮밥'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하는데 아마 이 때부터 조금씩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누군가의 마음을 실제로 얻는다는 것은 그가 이야기 하지 않으면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충분한 존재임을. 그 믿음을 나누어 주어야 할 것이다.


9. 이처럼 이 영화에는 직접적인 대사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정말 중요한 부분이 배우들의 행동을 통해 묘사되고 있다. 함께 오랜 시간을 나누다 보면 서로 말 없이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말을 하지 않고서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 앞에서 이야기 한 "스즈"의 모습도 그렇지만 진짜는 '사치'와 '요시노'의 행동에 있다. 두 사람은 서로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고 난 다음 어떤 행동 양식을 갖고 있는 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사치'는 과일을 사서 들어오고, '요시노'는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서로의 행동을 넘겨 짚는다. 그런데 사실 누구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10. 모든 이야기가 닫히고, 과거 세 자매의 키가 측정되어 있던 자리에 "스즈"의 키를 함께 새겨넣는 행위는 영화 속 모든 인물이 비로소 완전한 가족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세월이 흘러가면서 세 자매와 "스즈", 이제 네 자매가 다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첫째인 '사치'와의 다툼 이후 술에 취한 채로 슬그머니 방문을 두드리던 '요시노'의 모습처럼 네 자매는 서로의 시간을 함께 메워가며 세월을 물들여 갈 것이다. 그녀들이 매년 담구어 놓은 매실주가 세월에 익어가듯 말이다.


11. 평생의 기억을 담은 가게를 처분하고(바다 고양이 식당 주인),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대부분의 인물들), 평생을 갈망하던 산을 포기하고("치카"의 남자친구). 이 모든 행위가 현실의 벽 앞에서 자신이 꿈꾸던 이상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적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좌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높은 이상향을 포기하고 현실에 머무를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안정된 행복감과 평온함. 그것들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12. 영화 속에 이런 대사가 하나 나온다. "살아있는 건 다 손길이 필요한단다." 술에 취한 "스즈"가 깨어난 뒤 네 자매가 함께 마당에 심어져 있는 매실 나무를 보며 하는 말이다. 이 대사 하나에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모든 게 설명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에게 있어 '손길'이란 누군가를 향한 관심이며, 그 관심의 지속성이 낳은 '시간의 가치'인 것이다. 정말이지. 그의 작품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번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역시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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