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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Dec 25. 2015

#056. 대호

산만함을 낳은 과욕의 아쉬움.

 이 글 <넘버링 무비>는 단순히 한 작품을 리뷰(Review)하는 글이 아니라, 각자의 다른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영화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신 직후에 이 글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것이라 생각하며, 내용과 관련하여 다른 해석이나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 주셔도 무방합니다. 단, 무단 배포 및 상업적 이용은 불가합니다.




1. 이미 오래 전부터 <히말라야>와 함께 올 연말에 가장 기대할만한 한국 영화로 알려져 있던 작품이었다.(그리고 두 작품은 같은 날 경쟁작으로 만나게 되었다.) 게다가 <신세계>(2013)의 "박훈정" 감독과 전작 <명량>(2014)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배우 "최민식"의 만남이었기에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은 클 수 밖에 없었다.


2.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대호"라는 지리산에 살고 있는 괴수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마케팅 과정에서 "대호"라는 개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최민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괴물>(2006), <차우>(2009), <하울링>(2012) 등의 작품들의 장르와 그 궤를 같이한다. 다만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다른 점은 그들이 오롯이 그 개체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박훈정" 감독은 외적인 형태는 빌려온 대신 전체적인 이야기는 드라마적으로 풀어 나가기를 바랬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3. 실제로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호"는 이전에 보여줬던 CG의 결과물들과 달리 상당한 퀄리티를 보여준다. 실제로 <괴물>에서 괴물이 불타던 장면이나 <차우>에서 멧돼지가 달려가던 장면들로 인해 한국형 CG 괴수들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관객들이라면 진일보한 기술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그리 흠잡을 곳이 없다. 특히 "최민식"의 연기는 너무도 섬세하여 <취화선>(2002)의 "장승업" 역을 맡았을 때의 느낌마저 든다.


4. 문제는 바로 내러티브 상의 과욕에 있다. 사실 <악마를 보았다>(2010), <부당거래>(2010)의 각본을 쓰고, 지난 <신세계>의 각본과 연출을 맡아 온 "박훈정" 감독의 작품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인 <대호>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풀어내고자 한다. 영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한정된 시간 안에 다양한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형태의 매체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전혀 없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방법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5.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 영화는 한 때 명포수였던 "천만덕"(최민식 역)이 지리산의 대호를 사냥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천만덕"이라는 인물이 영화 속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에 따라 너무도 다양한 이야기로 해석되고 있다. 작품 속 한 인물이 해석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실제 작품은 그 다양함 중 제한적인 소재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작품 <대호>는 그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부 조금씩 건드린다.


6. 먼저 "천만덕"이라는 인물은 오랜 세월을 산에서 보낸 조선 최고의 명포수로써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세월이 변해 많은 포수들이 조금 더 손쉬운 방법으로 사냥하기 위해 덫을 놓고 그물을 설치하지만 결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인 "석이"의 말처럼 어차피 누군가에게 잡힐 사냥감들인데도 말이다. 그것이 "천만덕"이라는 포수가 산을 대하는 태도였고, 젋은 세대(포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것이다.


7. "천만덕"은 그런 포수이기 전에 자식인 "석이"가 자신의 뒤를 잇지 않기 바라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평생 아내를 고생만 시키다 보내고 말았고, 기한도 없이 산을 헤메야 하는 포수의 어려운 생계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또한 "석이"의 혼사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직접 찾아가는 장면으로 볼 때 비록 지금은 산 속에서 약초나 캐고 있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 "석이"만큼은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를 바랬을 것도 같다.


8. 한편, 도포수 "구경"(정만식 역)에게 "천만덕"이라는 인물은 한 때 의지할 수 있었던 동료 포수이자 언젠가는 뛰어 넘어야 할 존재다. 그렇지 않아도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마뜩 찮은데 주변 모든 사람들이 "만덕"이라는 이름 앞에 자신의 행동을 다그치기만 한다. 그래서 지리산의 산군인 "대호"를 직접 잡아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한다. 또한 "석이"를 통해서는 그의 가치관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구경"에게 있어 "만덕"은 그런 존재다.


9. 지리산의 산군 "대호" 앞의 인간 "천만덕"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동일시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엔딩 장면을 굳이 추가해놓은 것을 보면 감독은 이 부분에 유난히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천만덕"이라는 인물이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부성애의 표상이라면 "대호"의 모습은 그보다 조금 더 넓은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둘 모두 자식을 잃은 부성애를 표현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서로를 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지켜야만 하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10. 더 나아가 영화는 "대호"와 "천만득"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부분은 조선 시대의 샤머니즘적 의식과도 일맥상통할 수 있는데, "대호"의 존재는 단순히 몸집만 거대한 호랑이가 아니라 지리산, 혹은 한반도가 갖고 있는 고유의 정신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 아래에서 "천만덕"은 "대호"의 마지막 모습이 추해보이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함께 하직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리라.


11. 이렇듯 다양한 갈래로 표현되고 있는 "천만덕"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모두 스크린에 담아내고자 한 것은 분명히 큰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내용이 한 번에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분절되어 설명되다 보니 이야기가 쌓여갈수록 각각의 의미는 희석되어 버리고 만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남은 "천만덕"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설명하기가 굉장히 애매해져 버렸다.


12. 이 뿐만이 아니다. 역사적 시기와 결합하여 조선을 대표할 수 있는 "대호"와 "천만득"을 정복하고자 하는 일본군의 욕망도 영화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번번이 기회를 놓치는 일본군과 그들의 손에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대호"와 "천만득"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영토는 내 주었을지언정 꺾이지 않았던 독립투사들의 기개를 떠올리게 한다.


13. "석이"의 내면 또한 이 작품에서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내러티브 중 하나다.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아버지 "만덕"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큰 인물이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갖는 반감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어 표현되는데, 첫 번째가 신식 방식(그물, 덫)을 이용하지 않는 아버지의 고지식함이고, 두 번째가 마을로 내려가 살지 않는 생활방식이며, 마지막 세 번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왜 자신에게 총포 놓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 지에 대한 것이다.


14.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듯 보이는 아버지의 태도에 대한 반감인데 그가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를 찾고, 그 추억들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실제로는 그가 성인인 체 하고 싶었던 아이에 불과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아버지를 넘어서는 성인이 되고자 했던 것 같다. 오줌을 싸는 장면에서 내뱉는 농스러운 말은 장난인 듯 보이지만 자신이 아버지만큼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장면이며, 결혼을 약속한 "선이"(현승민 역)와의 만남 이후 처음으로 "만득"에게 대드는 것 역시 성인이라는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음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5. 자. 앞서 언급한 부분들이 아니더라도 이번 작품에는 '대호'라는 타이틀의 논점이 흩어져 버릴 정도로 너무 많은 욕심이 담겨져 버렸다. 한 마디로 산만하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 140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이야기를 수려하게 풀어내기에는 분명 모자란 시간이었으며, 현재 편집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기에도 어려운 애매함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박훈정" 감독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지 못한 작품이라 생각하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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