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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ep 24. 2020

어느 날 내가 나를 만났습니다

여동생과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일주일의 기록입니다.

 어느 날, 여동생이 개 구충제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혹시 캐나다에서는 구할 수 있는지, 그냥 물어보는 것이라는 짧은 카톡에도 나는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항암치료의 부작용도 잘 견디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염증 수치는 점점 내려가고,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는 말에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치료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희망적인 말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기 직전이었던 2020년 3월 26일에 한국으로 출발해서, 다시 하늘길이 열린 5월 2일 캐나다로 돌아왔습니다. 여동생과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일주일의 기록입니다.


 3월 30일, 병실을 1인실로 옮겼습니다. 암 진단을 받고 약 1년 동안 암과 사투를 같이한 주치의의 마지막 배려였을 것입니다. 이제 병원에서는 치료를 위한 처방이나 검사를 하지 않습니다. 원래 발생한 부위를 찾을 수 없는 원인불명의 암. 췌장 부근의 임파선에서 발견된 암세포는 이미 전이된 상태라는 말이, 이미 말기 암 진단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도 하지 못하고, 2주마다 한 번씩, 혈관을 타고 온몸을 헤집어 놓을 것처럼 차갑게 보이는 푸른빛의 주사액을 온종일 맞아야 하는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역겹고, 온몸을 칼로 베는 것 같은 아픔을 버텼습니다. 약 먹는 시간 한 번 어기지 않았습니다. 말기 암 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도한다는 어떤 민간요법도 의사의 권고대로 거부했던 착한 동생입니다. 내가 어렵게 구해서 건넨 약용 버섯이 지금도 어머니 집 찬장 위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3월 31일, 이른 아침 회진을 온 주치의가 1주일이 고비가 될 것 같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환자를 면회해야 할 분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에, 어쩌면 이토록 모두가 무덤덤할 수 있을까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견뎌야 할 슬픔의 무게를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요. 내가 먼저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맞는 모르핀 때문에 의식조차 혼탁한 상태입니다. 곱던 얼굴은 앙상해졌고 배는 복수가 차고 다리는 퉁퉁 부었습니다. 주삿바늘 때문에 멍든 팔도, 차가운 손발 끝도, 약 한 알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전부 힘겨워하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무엇을 먹어야 기운을 차릴 수 있을까를 묻던 아이입니다.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말고 조금만 슬퍼하라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작별을 고합니다. 이제는 몇 방울의 물로 입을 적시는 것도 멈추었습니다. 자꾸만 입술이 말라서 트는데도 종알종알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흰자위에 가려진 까만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걸려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거친 숨을 토하면서도 무엇을 바라보는지 모를 눈동자에 눈물 한 방울이 고였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한 방울씩 토해 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혈압과 맥박은 점점 희미해지고 겨우겨우 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나는 못난 오빠입니다. 가족들 모여서 밥 한 끼 먹는 것이 부러워서 명절이 제일 싫다고 투정하던 여동생을 너무 일찍 하늘나라에 보냈습니다. 당연히 계속 보고 살 수 있는 사람들처럼 살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빠서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살았을까요. 같이 예쁘게 차려입고 사진 한 장을 찍지 못한 것을 이렇게 후회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이제 나에게 두 장의 사진이 남았습니다. 사진 한 장 속에는 여동생이 병상 위에서 핏기 없는 앙상한 얼굴로 커다란 눈만 멀뚱 거리고 있습니다. 벚꽃 흐드러지던 날이었습니다. 창문 너머에는 꽃비 내리는 길을 걷는 사람들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또 한 장의 사진은 고운 얼굴로 수줍게 웃고 있는 여동생 사진 한 장이 꽃 속에 묻혀 있는 사진입니다. 2020년 4월 6일 오후 3시 18분. 세상이 온통 새하얀 꽃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장례식 날 아침에 조카가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엄마의 영정을 들어야 할 아이가 방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재촉하는 것을 다독여놓고, 나는 말없이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내가 나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장롱 속에 숨어있는 나와 마주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캄캄한 장롱 속에는 이불이 쌓여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불이 나를 안아주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품속에서 맡았던 냄새가 났습니다. 장롱 밖 세상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문을 열고 나갈 것입니다. 이제 막 사내가 되어버린 아이 하나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더니, 자기 어머니의 사진을 챙겨 들고 있습니다. 인천가족공원에서 한 줌의 재로 남은 여동생의 유골함을 안고 찾아온 하늘공원에는 채 피어오르지 못한 봄이 새하얀 꽃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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