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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ep 26. 2020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의식

나에게 운동은 내게 덮어 쓰인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의식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무당을 만나고 왔다. 내가 물에 빠져 죽을 것이라는 점괘를 받았다고 한다.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부적을 받아오셨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24시간 부적을 몸에 지니고 살아야 하는 운명에 갇혔다. 하나는 베개에, 또 하나는 옷 주머니에 넣고 빠지지 않도록 꿰맸다. 옷을 갈아입을 때는 주머니를 뜯고, 부적을 옮겨 다시 꿰맸다. 부적이 몸에 붙어있어야 액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마도 나에게 물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세뇌했을 것이다.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방 안에서 책하고 놀던 내 모습은 영락없이 동네 아줌마들의 입방아에 판검사 하나 났다고 오르내렸던 ‘방안 천재’였다. 내 첫 번째 별명이었다.


 어쩌면 나는 천재들이 걸린다는 일찍 성장하고 멈추는 병에 걸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모든 것이 조숙했다. 어렸을 때는 덩치가 큰 편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있을 법한 모든 운동부에 불려 다녔다. 씨름부는 당장 표가 났기 때문에 이틀 만에 그만두었다. 연습을 마치고 나름대로 옷이며 신발에 묻은 모래를 털어낸다고 털어냈지만, 어머니의 촉을 속일 수는 없다. 양말을 벗는데 모래가 쏟아져 나왔다. 그나마 제일 오래 했던 운동부 생활이 탁구부였다. 두 달 동안 벽돌을 들고 탁구의 꽃이라는 스매싱 연습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얼굴도 기억할 수 없는 감독님은 기본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려고 했던 스승의 표본으로 남았다. 운동부에 들어간 것을 들키는 날은 어머니가 학교에 오시는 날이었다. 감독 선생님을 만나서 자신의 아들은 운동하면 안 된다고 어깃장을 놓으셨다. 교장 선생님도 찾아뵙고, 교무실 선생님들 책상마다 박카스도 돌리고, 아마도 치맛바람의 원조쯤을 일으키고 오셨을 것이다. 그날도 어머니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옷은 사람의 체형을 말해준다. 체형을 보면 그 사람의 생활을 알 수 있다. 때로는 그 사람이 어떤 각오를 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가를 읽을 수가 있다. 티셔츠를 살 때 스몰 사이즈를 고르기 시작했다.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는다고 해서 살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벗어버린 것과 내가 새로 갈아입은 옷에는 그날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나에게 운동은 내게 덮어 쓰인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의식이었다.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을 때, 죽을힘을 다해 운동을 하기로 했다. 더는 물에 빠져 죽을 것이라는 운명에 묶여 있을 수가 없었다. 시립수영장 입문코스부터 등록했다. 처음, 몸이 물에 떠서 물 위를 헤엄치는 희열을 느끼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수영장 물을 마셨을까. 수영장 냄새가 독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걷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매일 10km를 걸으려고 한다. 약 13,000보를 걷는다. 이틀에 한 번씩 1시간 30분 정도 근육운동을 한다. 적당한 운동기구를 갖추는 대신 맨몸 운동을 주로 한다. 스쿼트와 팔굽혀펴기가 나의 주된 운동 루틴이다. 다른 요일에는 가장 기본적인 복근 운동을 한다. 코로나 때문에 이전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없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등산을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에 나는 본격적으로 홈트족이 되었고 스스로 산악인이 되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을 등반한다. 대략 8시간 정도의 산행을 마치고 나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서 운전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식사는 항상 적당한 양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동물들은 자신의 위의 70% 정도만 채운다거나, 일일 권장 칼로리의 70% 정도를 섭취하는 단식의 효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선천적으로 문란한 식생활을 할 수가 없다. 소화를 시킬 수 있는 위장의 능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배가 고프다. 잠을 자기 전 몸무게를 잰다. 그리고 아침 샤워를 마치면, 저울에 내 몸을 올린다.


 어느 날, 꿈의 몸무게를 찍었다. 체지방을 측정해보지 않았지만, 군대에서도 생기지 않던 근육이 생기기 시작했다. 살면서 주기적으로 병치레라도 하는 것처럼 아팠던 것 같다. 한 번씩 체하면 머리가 아파서 자리를 펴고 누워야 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운명의 고비를 넘으며 살았던 것일까. 얼마나 오랫동안 운명을 거스를 수가 없어서 순응하며 살았고, 나도 모르게 운명의 문턱에서 주저앉으려 했던 순간들은 언제였을까. 한 사내아이가 방바닥에 앉은 채로 나에게 말을 건다. 내가 만약 손을 내밀어 잡으려 했다면, 그 아이는 내 손을 잡았을까. 나이 오십이 넘어서 내 몸은 더 단단해졌다. 거울에 보이는 내 몸이 단단해진 것보다, 건강하게 보인다는 말이 더 기분 좋게 들린다. 피부도 더 탄력이 생겼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내 몸의 근육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다. 요즘은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거울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는 동안 자신의 배에 복근이 생긴 것을 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인생에 처음, 복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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