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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ep 30. 2020

추석을 대하는 마음

사람 사는 곳이라고 다 똑같은 추석을 맞는 것은 아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는 것을 보고 추석이 가까웠음을 직감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이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리다. 밴쿠버에서 맞는 스무 해 즈음의 추석에도 어김없이 한가위 달이 뜨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다. 바람이 차갑고, 나뭇잎이 떨어지면 추석이 가깝다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 가을을 타고 있다는 것도 그렇다. 한인 마트의 광고에 그려진 추석 풍경이 제일 그럴듯하다. 집마다 왁자지껄한 추석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운 요즘 세태를 고려한다 해도, 밴쿠버에서 맞는 추석은 상상 이상으로 처량하다.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추석 풍경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다 똑같은 추석을 맞는 것은 아니다. 


 추석이 가까워져 오는 주말이면 온 가족이 버스를 타고 시장을 간다. 나는 오랜만에 타는 버스에서 차멀미를 하고는 했다.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속도에 내 몸을 맡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마시고, 스치는 풍경을 보아도, 결국 속을 다 내어 보인 다음에야 나의 울렁증은 가라앉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덧 사라졌지만, 무엇인가에 순응하고 산다는 것은 지금도 어렵기만 하다. 추석 음식들을 사서 장바구니에 담고 시장통을 걷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추석이 만드는 분위기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연탄불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녹두전 냄새에 젖고, 물건을 사고파느라 시끌벅적한 소리에 들떴다. 추석빔을 하나씩 맞춰 고르고 나면 세상 전부를 가진 것처럼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밀어내고 나서, 새 옷과 신발을 차려입고 처음 흙을 밟는 기분은 마치 우주인이 달에 첫발을 내딛는 것처럼 신비롭다. 무겁게 낑낑거리며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도 힘든 줄을 몰랐다. 어쩌면 내 손에 들렸던 것은 추석을 대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마음은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다. 가족을 찾아가는 설렘이고, 먼발치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솔잎을 주워서 흐르는 물에 씻고, 물기가 마르는 동안, 쌀가루로 반죽을 한다. 반죽을 치댈수록 쫄깃한 맛이 더하기 때문에 반죽을 치고 주무르기를 반복한다. 통깨를 빻을 때 나는 고소한 냄새와 설탕의 단내가 섞이면 송편 소가 완성된다. 송편을 하나하나 정성껏 빚는다. 찜통에 솔잎을 깔고,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솔잎을 덮으면 솔잎의 향기가 밴다. 서로가 얼굴을 맞대고 무릎이 닿고 때로는 피곤한 몸을 기대고 앉는다는 것. 그리고 시시콜콜 얘기를 털어내고 들어준다는 것. 누군가의 곤란에 처한 얘기를 들으면 우리는 같이 인생 최대의 불의에 맞서는 것처럼 불같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희망에 찬 목소리로 미래를 얘기할 때는 같이 환호하고 응원했다. 서로의 편이 되어준다는 것. 우리는 서로 내가 아닌 누군가로부터 빚어지는 것은 아닐까. 서로를 향한 마음을 치대는 만큼 우리는 서로 간절해지고, 누군가의 냄새가 익숙해질 때부터 떼어내기 힘든 정나미가 붙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식혜는 무엇인가를 지키려는 끈끈한 마음이다. 우리 집에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명절 음식이다. 보리를 싹 틔어 말렸다는 엿질금을 사는 순간부터 어머니는 비장하다. 면 보자기에 싸서 전분을 짜내고 뽀얗게 우려내는 과정이 식혜의 깊은 맛을 내는 비결이었을 것이다. 갓 지은 고두밥과 잘 섞어서 약한 불에 하염없이 삭히는 과정을 거치면 흰 밥알이 떠오른다. 우리 가족들은 식혜가 익는 냄새를 맡으면서 점점 달달하게 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살얼음이 얼어있는 식혜 한 잔은 더부룩한 속을 달래는 소화제였고,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음료처럼 답답한 속을 느슨하게 만드는 단술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먼 길을 떠났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생각나는 음식이었고, 아프면 생각나는 음식이 되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보고 싶은 날이면, 그가 식혜 한 잔 입에 머금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아련할 때이다. 중요한 날마다, 깊은 맛에 길든 기억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것은 그를 지키고 싶다는 의미이다. 오랜 시간을 묵묵히 우려내고 저으면서 담는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추석이 되어도 가족을 찾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서로 대면하지 못한 채 서로의 안녕을 묻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송편을 빚는 마음처럼 달콤하고 절절하게 살고 싶었다. 식혜를 담는 마음처럼 깊은 맛을 우려내어 누군가에게 시원함을 주고 살기를 기도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감정들을 느끼게 될 것 같다. 생소한 외로움.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아프고 힘든 순간들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여전히 애틋하고 끈끈한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지키고 살아야 할까. 그 누구라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망설이고, 후회하고, 무릅쓰는 모든 순간들을 응원했으면 좋겠다.


제목 부분 사진 출처 : https://www.vancouverisawesome.com/vancouver-news/full-super-worm-moon-vancouver-tonight-2148843, Photo: Vancouver Night Full Moon from Stanley Park /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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