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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도 망고 Sep 01. 2022

인도는 성범죄의 왕국인가?

숫자로 보는 인도 성범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틱톡 영상 캡처

이번 주에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틱톡 영상이 있다. 살이 굉장히 많이 보이는 옷을 입은 한국인 여성 두 명이 인도 길거리에서 춤을 추는 영상이다. 이 영상을 보고 성범죄의 나라 인도에서 뭐 하는 짓이냐며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고, 인도의 성범죄율은 그리 높지 않다며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소수의 목소리도 있다. 사실 한국에서 인도의 이미지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 중에 대표적인 것이 성범죄의 나라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대사가 생각이 난다.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 몇 주 전에 경기도청에서 제작 지원을 받은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았다. 인도에서 칠 년을 살았다는 한국 여성이 “인도에서 발목을 내놓고 다니는 것은 나를 강간해 달라는 말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물론 인도에서 여성이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이런 복장을 하고 다니는 경우에 불쾌한 시선이 쏠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에 가는 사람을 잡아서 성폭행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인도에 대해서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수록 조회수가 높아지기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이해가 된다. 그래도 선은 지켜야지. 그럼 과연 사실은 무엇일까? 인도의 성범죄를 통계와 내 경험으로 풀어 보려고 한다. 참고로 나도 조회수를 위해서 일부러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그래서 인도가 강간의 왕국이냐?


인도의 국가범죄기록국(NCRB: National Crime Records Bureau)은 매년 인도범죄보고서(Crime In India Report)를 출판한다. 별다른 설명 없이 표만 보여주는 이 보고서가 유일한 공식 인도 범죄 통계 자료이다. 가장 최근 보고서인 2021년도 보고서는 1400 페이지가 넘는다. 이 중에서 성폭행 범죄 발생 건수는 2021년 32,033건,  2020년의 28,046건이다. 2021년 전년도 대비 약 14% 증가했다.  2022년에는 무려 하루 평균 86 건의 성폭행 범죄가 발생한 것이다. 숫자를 이렇게 프레이밍하면 성폭행이 아주 자주 벌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연간 성폭행 발생 수를 인구로 나누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21년 32,033 건은 인구 십만 명 당 2.28 건의 성폭행이다. 2020년 대한민국의 인구 십만 명 당 성폭행은 58.1 건이다. 인구 당 성폭행 횟수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인도의 20 배가 넘는다. 그러면 인도는 성범죄의 왕국이라는 오명을 벗어 버릴 수 있을까? 


10만 명 당 성폭행 범죄 숫자 (출처: NCRB)


국가별 통계치를 비교할 때 국가마다 해당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서에 사건이 공식적으로 신고(Complaint)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경찰에 신고된 사건은 경찰이 공식적으로 접수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접수된 사건은 First Information Report가 되는데, FIR이 인도 범죄 통계의 시작이 되는 데이터이다. 그리고 FIR 전체가 인도 범죄 통계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인도의 유명 데이터 저널리스트인 루크미니 스리니바산 (Rukmini Shrinivasan)에 따르면 NCRB는 FIR 중에서도 심각한 범죄만 통계에 포함시킨다. 루크미니의 말이 맞다면 발생 - 신고 - 정식 접수 - NCRB 선택 이 네 단계의 과정을 거친 범죄만 통계에 잡히는 것이다. 그녀의 말이 틀리더라도 발생 - 신고 - 정식 접수의 세 단계 과정을 거친 숫자만 보고되는 것이다. 


이 책 보고 인도 공부 많이 하고 있습니다. 루크미니 땡큐


범죄 발생과 범죄 접수 사이의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몇 가지 연구 결과를 참조할 수 있다. 라자스탄 주에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범죄 중에 신고되는 비율은 약 30%이다.  ‘범죄가 중요하지 않아서’, ‘경찰이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아서’,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범죄를 신고하지 않는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아비짓 바네르지 팀의 연구에 따르면 라자스탄 경찰은 신고된 범죄 중에 54%만 접수했다. 종합하자만 라자스탄에서 발생한 범죄 중 약 30%가 신고되었으며, 신고된 범죄 중에 약 54%가 접수가 된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실제 일어난 범죄 중에 약 15%가량이 접수가 되는 것이다. 설문조사와 경찰 접수 사이에 차이는 범죄 유형에 따라서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강도 사건의 경우 설문조사로 집계된 범죄는 경찰 기록의 범죄보다 12.35배가 더 많았으며, 절도 사건은 9.24배가 더 많았다. 성폭행과 성희롱을 포함한 성범죄는 이 차이가 크게 줄어서 1.43배가 나왔다. 성범죄의 경우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성범죄와 통계에 잡히는 성범죄의 차이는 1.43배 보다 더 높을 것이다.  인도처럼 다양성의 정도가 큰 나라에서 특정한 주의 숫자를 전국으로 일반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연구자로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이지만, 그래도 굳이 라자스탄 주의 결과를 활용하면, 설문조사와 경찰 접수는 평균적으로 6.67배 차이가 난다. 이를 감안해도 인구 10만 명당 성폭행 숫자는 대한민국이 더 높다. 물론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설문조사에서도 범죄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수 있고 라자스탄의 숫자를 인도 평균으로 볼 수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인도 두 나라의 인구 십만 명 당 성폭행 횟수 가치가 20 배가 넘게 나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인도보다 더 낫다 결론 내리기 어렵다. 오히려 인도가 한국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구글에 Inter-caste marriage 검색하면 많은 자료가 나온다. 

결론으로 나아가기 전에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고자 한다. 인도 범죄 통계에 따르면 성폭행으로 접수된 범죄 중에 실제 유죄 판결을 받는 비율은 25% 수준이다. 이 통계를 보고 인도 언론인들도 분노하며 기사를 쓴다. 인도 형법이 이렇게 너그럽다니.  하지만 사실 깊이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루크미니 기자는 2014년 475 건의 델리 성폭행 판결을 분석했다. 여성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한 건이다. 187건이다.  성폭행을 수치로 여기고 피해자에 일부 책임을 전가하는 문화적 배경에서 부모가 경찰에 신고한 사례가 40%에 달하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다. 사실 이는 결혼이 곧 중매결혼을 의미하는 인도의 특성에 기인한다. 특히 서로 다른 카스트 간의 결혼, 서로 다른 종교 간의 결혼은 심각한 반대에 부딪힌다. 따라서 부모가 결혼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젊은 커플이 함께 살기 위해서 고향을 도망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이때 이 커플이 여성의 가족에게 잡히면 이 남성을 성폭행으로 신고하는 사례가 흔하다. 2014년 델리 판결의 경우 189건 중에서 174건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 경우는 결혼을 전제로 커플이 연애하다가 남성이 변심하는 경우이다. 혼인빙자 간음으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나, 입증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성관계를 했다는 것이 입증이 되어야 혼인빙자 간음이 성립이 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따라서 인도에서 흔히 하는 방법은 우선 남성을 성폭행으로 고소를 하고, 결혼 약속을 받으면 고소를 취하하는 것이다. 이게 약 100 건이 넘는다. 이 두 경우를 제외하면 2014년 델리 판결의 경우, 실제 성폭행 유죄 비율은 75%가량이 된다. 


2012년 델리 성폭행 사건 이후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 장면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인도에 강간의 왕국이라는 이미지를 남긴 사건이 바로 2012년 델리 성폭행 사건이다. 궁금한 분들은 검색해보면 많은 자료가 나온다. 이 사건은 인도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고, 여성 치안 나아가서 여성 인권 향상의 목소리가 인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 사건이 인도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이유는 사건의 끔찍함에도 있지만, 이 범죄가 전형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도 성폭행의 과반 이상은 슬럼지역에서 이웃 등 아는 사람이 여아를 대상으로 벌인 범죄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높은 비율은 가족 및 친족 대상 범죄이다. 낯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행은 실질 성폭행 중 10%에 많이 못 미친다. 일반적이지 않은 유형의 성폭행이 너무나도 끔찍한 형태로 벌어졌기에 이 사건이 큰 충격인 것이다. 이 끔찍한 범죄가 인도에서도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유형의 성폭행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는 것처럼, 대도시에서 납치당해서 성폭행의 표적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필자 직장의 성범죄 예방 포스터


이상 인도의 성폭행을 다뤘다. 인구 십만 명 당 성폭행 숫자는 한국이 인도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성폭행만 성범죄가 아니다. 인도에서 성희롱은 심각한 범죄가 아니기에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필자가 현재 직장에 와서 성범죄 예방 포스터가 너무 많이 붙어 있는 사실에 놀랐다. 학교 게시판의 절반 이상을 아래 사진과 같은 성범죄 예방 포스터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포스터가 많다는 점은 성범죄가 인도에 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나는 내 직장 동료들을 신뢰한다. 4년 넘게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이웃으로 살다 보니, 좋은 사람들이 참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범죄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여성의 신체를 불쾌한 시선으로 훑어보는 일은 인도에서 흔하다. 때로는 대놓고 훑어본다. 인도 기준으로 조금이라도 야한 옷을 입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인도 유명 관광지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추파 (캣 콜링 Cat calling)는 일상이다. 올해 봄에 마하발리뿌람에 관광을 갔다. 거기서 쿠웨이트항공 승무원들과 어울려서 하루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들과 친해진 계기는 바로 인도 남성들의 추파이다. 이 일행 중 한 명이 등이 아주 많이 파인 옷을 입고 있었고, 그는 바로 표적이 되었다. 이 팀을 인솔하는 이집트 남성은 끊임없이 다가오는 인도 남성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혼자 여행하기에 심심한 나는 흔쾌히 그 무리에 합류하여 추파를 던지며 다가오는 수많은 인도인들을 함께 차단했다. 그리고 그 팀에게 비싼 저녁을 얻어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하발리뿌람이 인도에서도 추파가 유독 심한 곳이더라. 


프랑스의 캣 콜링 (출처 SBS 뉴스)


이제 결론이다. 인구 당 사건 수를 따지면 성폭행은 인도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일어나는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여행 중에 낯선 이에게 성폭행을 당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성희롱으로 성범죄의 범위를 넓히면 인도 상황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성희롱도 엄연한 범죄이고 매우 불쾌하며 때로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당부의 말로 글을 맺고자 한다. 이 글을 쓰게 된 발단이 된 사건을 생각해 보자. 인도에서 한국인이 옷을 저렇게 입어도 되나?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의 옷차림과 행동으로 돌려버릴 수 있기에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현실을 이야기해 보자. 대낮에 강남역 주변을 비키니를 입고 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비키니를 입었다는 이유로 성범죄를 당하면 안 된다. 이건 상식이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우리 기준에서 조금 야한 옷이 인도인들에게 비키니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인도는 여성 몸 훑어보기와 추파가 흔한 곳이다. 그러니 안전하게 덜 불편하게 여행하고 싶으면 옷차림에 신경을 쓰면 좋다. 성폭행이 두려워서 인도 여행을 망설이는 분들에게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성희롱이 불쾌하고 두려워서 인도 여행을 망설인다면, 오지 않기를 권하고 싶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인도 여행을 결심했다면, 복장을 한 번 더 신경을 써서 불쾌한 일을 당할 확률을 줄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끝으로 더 중요한 것은, 티톡 영상 찍은 분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인도 여행을 하기를 기원하다. 아마도 아주 높은 확률도 별 탈 없이 인도 여행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이 분들이 다녀간 그다음이 아닐까. 물론 그다음에도 별일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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