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럼 제 월급은 어떻게 되는 거죠

by 민조이

2019년 2월 1일.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으로 A사에 월 정산금을 청구한 날이었다.




매월 1일에서 3일은 전월의 시급을 정산하고 청구하는 기간이다.

굳이 2일, 3일까지 기다릴 이유가 뭐 있나. LA 기준으로 '2월 1일 오전 12시', 한국 시각으로 '2월 1일 오후 5시'가 되자마자 프로젝트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출근 도장을 찍으러 갈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다르다. 두근두근, 설렌다.


청구 절차는 간단하다.

프로젝트 홈페이지의 '내 계정'에서 '급여'로 들어간다. 옵션에서 '업무 기록'을 선택 한다. 한 달간 채운 업무 기록표가 나온다. 표 아래쪽에 연녹색의 '저장', '제출', 옅은 회색의 '기록 초기화' 버튼이 보인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회색 글자는 무시하고, 바로 '제출'을 누른다.

"정말 제출 하시겠습니까? 제출이 완료되면 더 이상 업무 시간을 기록, 수정 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뜬다. '확인'을 누른다.

다음 화면에서 전월 1일부터 말일까지 누적된 총 작업 시간, 기준 시급, 예상되는 수당 총액이 나온다.

'흠. 역시나 어린애 코 묻은 돈 수준이네.'

정산된 내용을 확인하고 '확정'을 누른다.

청구가 완료 되었다.


청구한 내용은 프로젝트 관리자의 검토와 승인을 거쳐, A사의 '급여 이체 정산 시스템'으로 넘어 간다고 했다.

이상이 없으면, 이번 달 14일에 월 정산금이 미국 은행 계좌로 들어올 거다. 시급제이지만 월 단위로 정산받으니 꼭 월급 같다.

'드디어 받는구나. 작고 소중한 내 첫 월급!'




문제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같은 날 밤, 프로젝트 관리자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제목에 '긴급'과 '중요함'이 대문자로 쓰여 있었다.

'뭔데 또 긴급이야.'

'프로젝트 관련 공지려니' 하고 메일을 열었다. 아니었다. 정말 일이 터졌다.


"귀하의 작업 기록이 조회되지 않습니다. 1월 업무 시간을 '36시간 17분'이라고 보고하셨지만, 저희쪽에서는 '0시 00분'으로 확인됩니다. 본인의 기록이 정확합니까?"


이게 무슨 소리야. 업무 기록이 없다니. 분명 프로젝트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작업을 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당황과 혼란이 뒤엉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휘청이는 정신줄을 붙잡고 메일을 계속 읽어 나갔다.


"급여를 처음 청구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업을 시작하시기 전에 "Y 프로젝트용 크롬 확장 프로그램(Chrome Extension, 크롬 익스텐션)"을 활성화하셨나요? 크롬 익스텐션에 로그인하지 않으면 업무 시간이 기록되지 않습니다."


'크롬 확장 프로그램? 그게 뭔데?'

어리둥절 했다. 처음 보는 단어였다. 혹시 내가 놓친 내용이 있는 걸까. 이전에 받았던 이메일들을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어? 이건 뭐지?'

프로젝트 계약서 사본이 담긴 메일을 열었을 때, 낯선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계약 내용이 담긴 본문 아래로 또 하나의 메일이 있었다. 매일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는 모양새였다.


나중에야 알았다. 지메일의 '대화형 보기(conversation view)' 기능 때문이었다는 걸. '보낸 메일과 답장'처럼 같은 제목으로 주고받은 메일은 하나의 '대화'로 묶여서 표시되는 게 기본 설정이란다.

지메일을 막 사용하기 시작한 나로서는 메일이 여러 개 붙어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프로젝트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하세요."라는 제목으로 온 메일이라, 첨부된 계약서를 확인하고는 메일 앱을 닫았던 기억이 난다.

그 아래에 메일 하나가 업혀 있었을 줄이야. 심지어 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메일이.


두 개의 메일은 제목, 보낸 시간, 보낸 이가 같았다. 추측건대 계약서에 서명하자마자 자동으로 회신 되도록 설정된 메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목을 다르게 짓지 않은 관리자의 탓일까, 이메일을 세심하게 확인하지 않은 내 탓일까, 아니면 요청하지 않은 지메일의 '대화형 보기' 기능 탓일까.

일이 꼬이려니 모든 게 다 어긋나 있다.




숨어 있던 메일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업무용 웹사이트는 크롬(Chrome) 브라우저에서만 접속해야 한다.

'Y 프로젝트 전용 크롬 확장 프로그램(이하 Y 익스텐션)'을 업무를 진행할 PC나 노트북에 설치해야 한다. 이것은 업무가 시작되고 종료되었음을 업무 시스템에 기록 하는 장치이다. 프리랜서가 보고한 업무 시간 기록과 Y 익스텐션에 기록된 시간이 일치해야 급여 정산이 이루어진다.

프로그램 파일은 링크 된 웹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Y 익스텐션을 설치 한 후, 업무 사이트에 접속해 보라. 화면의 오른쪽 위, 아이디 왼쪽으로 '로그인/로그아웃' 버튼이 생긴 걸 보게 될거다.

작업을 시작 하기 전에는 반드시 이 버튼을 눌러 Y 익스텐션에 로그인해야 한다.

업무 기록이 조회 되지 않을 경우, 급여는 지급되지 않는다.'


'뭐? 그러면 지난달 월급은 못 받는다는 거야? 말도 안돼!'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메일을 꼼꼼하게 읽지 않은 내 부주의가 가장 크지만, 그렇다고 한 달 치 급여를 통으로 날리다니.

이건 너무해.


일단 첨부된 링크를 따라갔다.

'Y 프로젝트를 위한 크롬 익스텐션 설치' 항목이 보였다. 설치를 완료하고, 업무용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빨간색의 '로그인' 버튼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 1분도 채 안걸리는, 클릭 두어 번이면 끝나는 걸 못 해서 월급을 날리다니. 자괴감이 든다.

'월급이 너무 적다고 투덜거려서 벌받나. "적은 돈도 소중하다는 걸 모르고, 쯧쯧"하며 내게 깨달음을 주려고 이러는 건가.'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을.

마음을 단단히 하고 프로젝트 관리자에게 메일을 썼다.


'당신의 예상이 맞다. 긴급 알림 메일을 받고서야 Y 익스텐션의 존재를 알았다. 프로젝트 계약서 사본과 함께 온 메일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했다.

사본을 담은 메일과 공지를 전달하는 메일의 제목이 같아서인지, 지메일에서는 하나의 메일처럼 겹쳐져서 보였다. 각 메일이 다루는 내용이 다른 만큼, 공지사항을 전하는 메일의 제목을 수정해 주면 좋을 것 같다. 나도 앞으로 메일을 더욱 꼼꼼하게 읽겠다.

Y 익스텐션을 방금 설치했다. 업무 사이트에서 확인도 마쳤다. 지금부터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Y 익스텐션에 로그인하겠다.

중요한 일을 빨리 알려줘서 고맙다.'라는 내용이었다.


시간은 이미 새벽에 접어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너무나 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