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오판과 편견

by 민조이

프로젝트 관리자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흘이 지났다.

답장이 왔다. 어떤 내용이 돌아 왔을까.

마음이 급해진다. 인사말과 안부는 휘리릭 읽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업무 사이트 시스템 관리자에게 귀하의 작업 기록 조회를 요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신의 이름과 아이디(지메일 주소), 고유 식별정보가 사용되었음을 알립니다.

문의 결과, 귀하의 업무 시간이 '35시간 38분'으로 확인된다고 합니다. 당신이 제출한 '36시간 17분'과 차이를 보이네요.

업무 기록은 순수 작업 시간만 포함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또한 각 작업은 기준 시간 이내에 제출되어야 합니다. 기준 시간은 업무 화면 상단, 작업명 오른쪽에 표시됩니다.

새로운 유형의 업무라 지시 사항을 숙지해야 하거나, 작업 내용이 까다로워 여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시간 초과를 허용합니다. 작업물의 정확성이 우선임을 명심하세요. 단, 이럴 때도 초과한 작업 시간은 업무 기록에서 제외되어야 합니다.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 업무 시간, '35시간 38분'으로 급여 정산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와! 그럼, 월급을 주겠다는 거지? 네, 그럼요, 물론이죠! 무조건 동의해요. 몇 분 줄어든 게 대수인가요. 0시간 00분이 될 뻔했는데.'




월급이 돌아왔다.

'그래, 한 달 동안의 노동이 물거품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돼.'

떼인 돈을 돌려받은 것처럼 기뻤다. 원래부터 내 주머니에 있던 돈이지만.


의기소침하게 쭈그러져 있던 자신감이 펴지기 시작했다.

'얼른 답장 써야지. 히히.'

영어로 메일을 쓰면서 이렇게 설렌 적이 또 있었던가.

문법 확인도, 단어 찾기도 전혀 귀찮지 않았다.


"친애하는 관리자님께.

안녕하세요. 관리자님의 답신 잘 받았습니다.

먼저, 제 업무 기록을 찾느라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관리자님께서 확인하신 기록, 35시간 38분에 동의합니다. 작업 기준 시간을 초과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제가 보고한 시간과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겁니다.

이제부터는 Y 익스텐션 로그인과 로그아웃, 작업 시간 엄수에 신경 쓰겠습니다. 메일도 꼼꼼하게 확인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지금 읽어 보면 '내가 좀 굽실거렸나.' 싶기도 하다. 그만큼 안도했고, 관리자의 대처에 고마웠던 거겠지.


지난달 월급은 당연히 못 받을 줄 알았다. 왜? 내가 업무 기록 장치를 설치하지 않아서 비롯된 문제였으니까. 내 잘못이니까.

회사나 관리자가 수많은 계약 프리랜서 중의 하나인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A사에 선입견을 품고 있었다는 걸.


미국의 기업 문화를 잘 아는 몇몇이 입을 모아 말했다. 미국 회사에서는 직원을 철저히 업무 성과로 평가하고, 직원의 실수나 잘못은 오롯이 그들의 책임이며, 중대한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다음 날 바로 책상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회사가 손해배상 청구나 소송을 안 걸면 다행인 거라고.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가끔 보았던 장면이라,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미국에 있는 회사 모두가.


고백하자면, 답장이 오기 전까지 '설마 잘리는 건 아니겠지?'하고 속으로 몇 번을 불안해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관리자의 응답에 놀랄 수밖에.

한 푼도 못 받고 날릴뻔한 월급을 찾아 주었다. 내 실수라고 인정한 것을 징계 없이 넘어가 줬다.

'그동안 생각했던 미국 회사의 이미지가 아니야.'


그래서 더 고마웠는지도 모른다. "간혹 당신과 같은 상황을 겪는 분들이 있다."라며 자책감을 덜어주는 말이, 급여를 챙겨주기 위해 다른 부서 담당자에게 지원 요청을 하는 관리자의 태도가.

'그게 원래 관리자가 하는 일'이거나, '일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행위가 찜찜해서' 해준 거일지라도.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그건 관리자의 몫이다.

내 몫은 그저 도움을 받아 고마운 마음을 '감사하다'라고 표현하는 것 뿐이다.

아, 반복되는 실수 없이 회사가 바라는 업무 성과를 내는 것도.


표현은 충분히 한 것 같고, 이제 일만 잘하면 된다.




첫 월급을 사수했다.

멘털은 너덜너덜해졌지만.


월급이 들어오면 케이크를 하나 사야겠다. 축하 파티를 해야 해.


잠깐, 그런데 무엇을 축하해야 하지.

첫 월급을 탄 것?

첫 월급을 잃을 뻔했다가 되찾은 것?

아니면 계약해지 당할까 봐 마음 졸였는데 무사히 넘어간 것?


음...... 셋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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