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휴대폰 화면 위로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 알림창 첫 줄에 L사의 회사명이 보였다. '왔다!'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고 이틀 만에 온 회신이었다. 예정보다 빠른 응답은 긍정의 신호일까, 부정의 신호일까. '합격이다, 합격이다.' 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메일을 열었다.
Hello,
Thank you for your interest in joining our company, and your application is......
'어라? 영어네?' 당혹스러웠다. 친구가 보내준 입사 지원 링크는 잡코리아의 웹페이지였다. 미국 회사의 채용 공고였지만 채용 정보는 한국어로 되어있었고, 입사 지원서도 한글로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러면 답신도 한국말로 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넋 놓고 있다가 한 방 훅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영어로 소통할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되었는데.......'
얼떨떨한 정신을 추스르고 천천히 메일을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본사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입사 지원서는 정상적으로 접수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로의 진행을 위해 아래에 링크된 주소에 접속하세요. 그곳에서 설문조사를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영문 이력서를 워드 또는 PDF 파일로 첨부해 주세요. 제출하신 내용을 검토한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설문 조사라니. 영문 이력서는 또 뭐란 말인가. 두 번째 훅. 막막했다. '설문 조사에서 무엇을 물어보려나. 경력? 영어 수준? 영문 이력서는 어떻게 써야 하지?' 눈은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두 단어, 'survey (설문지)'와 'resume (이력서)' 사이를 오가느라 바빴지만,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링크부터 열어보자. 어떤 내용인 줄 알아야 대응하든가 하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링크된 주소를 클릭했다.
L사의 웹페이지가 나왔다. 역시나 온통 영어였다. 화면의 왼쪽 위에는 사자 그림의 로고와 회사명이 위아래로 나란히 있었고, 그 옆으로 '채용'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위엄을 뽐냈다. 솔직하게 응답해달라는 주의사항 아래로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설문 조사는 채용 사이트의 입사 지원서에서 작성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름, 이메일, 연락처, 주소, 학력, 경력, 영어 수준 등을 영어로 입력하면 됐다. '괜히 긴장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음' 버튼을 눌렀다.
두 번째 페이지에도 몇 가지 질문이 있었다. 개수는 첫 페이지보다 적었지만, 내용이 독특했다. '출생지', '한국에 체류한 기간', '보기에 있는 네 개의 회사와 일해 본 경험 여부'를 묻는 게 특히 그랬다. '왜 이런 걸 묻는거지? 이 회사, 사람 여러 번 당황하게 하네.'
따지고 보면 회사는 잘못이 없었다. 자꾸만 당황하는 내가 문제였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진행되는 상황 때문이었다. 영어로 이메일이 오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설문조사에 답해야 하고, 써보기는커녕 구경도 못 해본 영문 이력서까지 만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나, 이게 뭐라고 쫄았을까.' 싶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다. 새로운 성격의 회사에,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운영되는 회사에 문을 두드리면서, 그동안 지원했던 국내의 기업들과 취업 과정이 비슷할 거라고 짐작하는 건 맞지 않았다. 오류가 잡혔다.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했다. 낯섦에 친숙해져야 했다.
'앞으로의 모든 것이 새로울 거야. 쉽지 않겠지만, 할 수 있어.'
마음을 고쳐먹어서일까. 다시 질문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편해졌다. 빠르게 응답을 채워나갔다.
'태어난 곳은 '대한민국'', '해외여행 말고는 한국 땅을 떠나 살아 본 적 없으니 체류 기간은 '10년 이상'', '보기에 있는 회사들은 모두 초면이므로 '어떤 회사와도 일해본 경험 없음''을 입력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영문 이력서를 파일로 첨부해 달라는 문구가 나왔다.
아....... 문제의 영문 이력서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