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어서 와, 영문 이력서는 처음이지

by 민조이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할 수 있어'라고 각오를 다진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의욕이 떨어진다.

'하나씩 차근차근 접근해 보자. 몰라서 긴장하는 것뿐이야.'

맞다. 여태껏 영문 이력서를 본 적이 없으니 그게 어떤 건지 몰라 막막한 거였다. 영문 이력서부터 찾아봐야 한다. 어떻게 생겼는지를 봐야 참고하든 배껴서라도 써보든 할 테니.

검색에 앞서 노트북을 켰다. 새로운 세계를 탐험 하기에 휴대폰 화면은 너무 작았다.


부팅되는 동안 계획을 세웠다. '영문 이력서 양식'을 검색한다, 검색 결과를 비교한다, 마음에 드는 양식을 고른다, 그 양식에 따라 이력서를 작성 한다.

'흠, 이대로라면 어렵지 않겠는데?'


윈도 화면이 나오자마자 구글(Google) 앱을 열었다. 검색창에 '영문 이력'까지만 입력했는데, '영문 이력서 양식'이 추천 검색어로 떴다. 바로 클릭했다. 엄청난 양의 샘플 이미지가 쏟아져 나왔다.

오, 구글이시여!


지금이야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에게 "내 한글 이력서를 첨부했어. 그걸 활용해서 영문 이력서를 새로 하나 작성해 줘."라고 주문하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영문 이력서가 뚝딱 만들어질 테지만, 7년 전만 해도 구글과 네이버 검색, 유튜브가 최고의 온라인 사전이자 조수였다.


구글이 보여준 영문 이력서는 '양식이랄게 있나' 싶을 정도로 디자인이 제각각이었다. 작성자는 빈 종이에서 이력서를 시작하느라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 거다.

'구성은 어떻게 할까?' '글씨체는 뭐로 하지?' '이 부분은 글씨 크기를 좀 다르게 해볼까?' '여기에는 밑줄을 긋는 게 낫나, 안 긋는 게 낫나?' '가운데 정렬을 할까, 아니면 양쪽 정렬을 할까?'

이렇게 완성된 이력서에는 지원자의 취향이나 개성이 오롯이 담길 것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표 안에 정보를 채워 넣는 우리의 이력서 양식과는 달리.


놀란 게 또 있다. 이력서 마다 증명사진이 없었다. 간혹 사진이 첨부된 이력서가 눈에 띄긴 했지만, 모델이나 큐레이터같이 문화예술 계통에 몸담은 사람들의 것이 대부분이었다(요즘은 사진이나 포트폴리오를 넣는 이력서도 종종 보인다).


입사 지원자의 이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력서 왼쪽 위에 붙이는 증명사진이 아니었던가.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머리는 깔끔하게 손질하고, 좋은 첫인상을 주기 위해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최근 6개월 이내에 찍은 따끈따끈한 걸로 말이다.

'왜 외국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안 넣지?'

증명사진이 없는 이력서에서 '일하는 데 있어 외모와 인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라는 숨은 메시지가 읽혔다.


이력서에서부터 문화의 차이가 드러났다.




어떻게 이력서를 작성해야 할지 윤곽이 잡혔다.

내가 지원하는 업무는 인터넷상의 자료를 분석하고 분류하는 일이니, 보고서처럼 간결한 구성이 좋겠다. 눈에 피로하지 않을 단정한 글씨체 두세 개를 혼용하면서, 단조로워 보이지 않도록 굵은 글자와 구분 선, 밑줄을 적절히 사용해야지. 이름과 개인정보는 가운데 정렬로, 이력, 경력, 특기, 자격증은 양쪽 정렬로 구성해야겠다.


드디어 완성. 과정은 길었지만 결국 해냈다. 다시 휴대폰으로 넘어가서 제출만 하면 끝이다.

'resume_ 영문 이름'으로 파일을 저장했다.

이제 이메일의 '내게 쓰기'로 노트북에 저장한 이력서를 첨부해 보내고, 다시 휴대폰으로 돌아가 노트북에서 보낸 메일을 열어서, 첨부된 이력서를 내려받아, L사 홈페이지에서 이력서를 불러오기만 하면 되는데....…

이럴 수가. 시간이 경과되어 세션이 만료되었다는 경고창이 뜬다.


'어휴, 그럴 만도 하지.'

이력서 하나에 너무 긴 시간을 썼다. 오전에 검색을 시작했는데, 다 마치고 보니 저녁이 다 되어있었다. 어쩌겠는가. 처음부터 다시 하는 수밖에.

아쉬운 건 나였다. 회사가 아니라.


설문조사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래도 두 번째라고 응답은 빠르게 채워졌다.

마지막 페이지가 나왔다. 이력서를 불러낼 차례다.

'내 첫 영문 이력서야, 잘 부탁해.'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제출' 버튼을 눌렀다. 답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나왔다.

'끝났다!'

안도하는 순간, 강한 허기가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