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일을 하는구나.'
기대감에 부풀어 프로젝트 관리자의 메일을 열었다. 글자와 링크 주소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싸하다.
관리자는 업무에 들어가기 전 필요한 몇 가지 절차가 남았다며, 다음의 지시 사항을 순서대로 처리해 달라고 했다.
'또? 뭐 이렇게 해야 할 게 많아. 거 6개월 아르바이트생한테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이 회사의 밀당은 정말...... 매력적이다. 으즈, 긍를흐그.
No.1
맨 처음 할 일은 회사 및 업무 전용 이메일 주소를 만드는 거였다. A사와 연결된 웹사이트들의 아이디와 로그인 계정이 될 거라고 했다.
이메일은 새로 만들 것을 추천했다. 도메인은 반드시 지메일(@gmail.com) 이어야 했다.
기존에 있던 지메일 주소를 선택해도 된다. 다만, 업무 전용으로 등록된 이후부터는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내게는 방치된 지메일 주소가 하나 있었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휴대폰을 개통하느라 만들었던 거다. 주로 쓰는 메일 주소가 이미 두 개나 있었기 때문에 지메일은 딱히 쓸데가 없었다. 구글에서 보내는 알림이나 몇 번 받았을까.
예전에 만들어 두었던 지메일 계정 덕분에 작업이 하나 줄었다.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 필요한 시기와 맞지 않을 뿐이다.
관리자는 이렇게 덧붙이며 마무리했다.
"이메일 주소가 프로필에 등록된 이후부터는, 회사와 프로젝트 관리자가 보내는 모든 메일은 등록된 주소로만 보내집니다."
No.2
A사 홈페이지에 가입하고 프로필을 등록할 차례다.
아이디는 업무용 이메일 주소로, 비밀번호는 영어 대문자, 영어 소문자, 숫자, 특수문자를 모두 사용해 열두 글자 이상으로 설정하라고 했다. 역시 보안에 진심인 회사다.
가입이 승인된 후, 곧바로 프로필 작성 페이지가 나왔다.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집 주소. 이걸 대체 몇 번을 쓰는 거야?'
L사에서 작성했던 지원서부터 따져보면 예닐곱 번은 족히 될 거다. 영문 집 주소가 저절로 써질 만도 했다.
지금도 영문 주소를 검색 없이 쓴다. 쓸 일은 거의 없지만.
No.3
다음은 급여통장 개설하기. 시급은 A사의 '급여 이체 정산 시스템'을 통해 한 달에 한 번 일괄 지급된다. 매월 12일에서 14일 사이, B은행의 급여용 통장에 입금될 거라고 했다. US달러 현금으로.
달러를 받기 위해 B은행의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은행 계좌를 한국에서도 만들 수 있나? 외국인이 은행 계좌를 트는 게 꽤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절차는 의외로 간단했다. 메일에 링크된 웹페이지에서 개인 신상 정보만 입력하면 됐다. 여권 번호와 주민 등록 번호까지 요구해서 당황했던 것만 빼면 대체로 순조로웠다.
급여 수령이 주목적이라 그랬으려나. 아니면 A사의 급여 시스템과 연결되는 계좌인 만큼 A사가 내 신원을 보증한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심사랄 것도 없이 바로 계좌 번호가 발급되었다.
놀랍도록 편리한 세상이다.
No. 4
네 번째, 급여 지급 대행업체를 선택하고 회사 계정에 등록하기. 급여통장으로 받은 월급은 한국에서 바로 출금 또는 이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비대면으로 개설한 계좌라서 그렇거나, 미국에 살지 않는 외국인이 미국 내에 있는 돈을 해외로 빼가기 때문이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그러면 월급은 어떻게 받지?'
지급 대행업체를 통해 한국에 있는 본인의 은행 계좌로 이체하면 된단다.
물론 거래 수수료가 발생한다. 수수료는 내 몫이다.
'뭔가 돈을 떼이는 느낌인데.'
대신에 세금은 부과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의 세법에 적용되지 않는 급여 지급 방식이라나.
'수수료가 세금 대신이려니 해야겠네.'
A사는 네 개의 지급 대행업체와 제휴하고 있었다. 업체마다 급여 송금 방식과 요구하는 수수료가 달랐다. 그 중에 거래하고 싶은 대행사를 하나 골라야 했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외국에 사는 프리랜서에게 추천할 만한 업체로 두 곳을 꼽았다. 둘 다 인지도 높은 대형 지급 대행업체이고, 어느 나라에서나 이용이 편리하다고 했다.
입금 수수료는 무료이지만 출금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가 높은 곳(PayPal)과, 고정 입금 수수료를 떼지만 출금 수수료가 없고 환전 수수료가 낮은 곳(Payoneer, 이하 P사).
어떤 업체가 더 이득일까? 조금이라도 수수료를 덜 내야 나한테 떨어지는 게 많을 텐데.
월급이 적다면 전자가, 많다면 후자가 이득이다.
'에라, 모르겠다. 일 많이 해서 돈 왕창 벌 거야. P사!'
내기를 거는 마음으로 후자를 선택했다.
A사 홈페이지의 '내 계정'으로 들어갔다. '급여' 항목을 클릭했다. P사 옵션을 선택한 후, 확인 버튼을 눌렀다. 안내창이 떴다.
"P사를 선택하셨습니다. P사 웹사이트에서 회원 가입해 주세요.
가입 후 발급되는 회원 번호와 계좌 식별번호를 '지급 정보'에 입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급여를 받으실 B은행의 계좌 번호를 아직 계정에 등록하지 않았다면, 은행 계좌도 함께 입력해 주세요.
처리가 완료되기까지는 최대 3일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아래의 버튼을 누르면, P사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한 회사에서 일하기를 뭐가 이리 가입해야 할 게 많은 거야. 비대면 처리의 폐해야.'
속으로 구시렁대며 P사 홈페이지로 넘어갔다.
B은행보다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회원 가입을 마치고, A사 계정에 지급 정보 등록도 완료했다.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 일은 언제 하나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