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인 어머니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60대인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마음만은 난 아직도 이팔청춘이야"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10대 시절, 내게는 단 하나의 목표만이 있었다. 그것조차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닌, 부모님의 숙원과 함께한 공동의 과제였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을 정의하는 가장 강력한 꼬리표, 바로 대학.
20대 초반, 가까스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숨고르기는 아주 잠깐일 뿐. 이제부터 인생은 시작이다라고 생각하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미래를 그렸다.
20대 중반, 이제는 불투명해보이는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며, 내가 짊어질 어깨위의 짐들을 상상했다.
20대 후반, 20대 끝자락은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벼랑 끝처럼 느껴졌다. 앞자리가 바뀐 것에 대한 두려움은실현한 것 하나 없는 실오라기인 체인 내가, 광장 한가운데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30대 초반, 학창 시절 그렇게도 어려워 보였던 담임선생님들의 나이쯤에 다다랐다. 그때 그들은 분명 '어른'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쯤이면 그들처럼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내가 그리던 30대는 차도 있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며 사는 삶이었지만, 현실은 무거운 삶의 짐에 눌려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30대 중반, 시계 방향은 멈출 새 없이 돌아갔고, 가끔 들려오는 친구들의 결혼과 출산 이야기. 거울에 비친 내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나는 무엇이 바뀌었나? 주름이 조금 늘었고, 젖살은 빠졌으며, 사라진 것들도 생겼지만, 여전히 내 곁엔 불안이 공기처럼 머물러 있었다. 이쯤이면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던 그것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였다.
NEXT가 아닌, NEXT의 NEXT까지 설계해왔던 삶. 언제나 두 걸음 뒤를 염두에 두고, 그 미래를 이루기 위해 당장 앞의 스테이지를 넘어서야 했다. 내 삶은 늘 한 발 앞선 목표에 종속된 체계처럼 작동했고, 한때는 그것이 분명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것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궤도 안에서, 나를 가두는 굴레로 변해 있었다.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는 띠 위에서, 나는 멈추지 못한 채 계속 달리고만 있었다.
20대에 처음 마주한 불안의 벽. 그 벽 너머로만 나가면 불안은 끝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불안은 그저 형태만 바꾼 채, 20대 후반에도, 30대 중반에도, 끊임없이 나를 찾아왔다. 때론 낯선 얼굴로, 때론 외면했던 감정의 그림자로. 불안은 늘 다른 옷을 입고 내 앞에 섰고, 나는 매번 처음인 것처럼 그 앞에 멈춰 섰다.
얼마 전,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20대 때도 불안했고, 3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불안해. 뒷걸음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어.”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나는 자꾸만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불안과 힘듦은 늘 함께였다. 다만 확실한 건, 20대에 겪었던 불안은 결국 이겨냈다는 점이다.
그때의 불안이 다시 온다 해도, 이제는 그에 대한 내성이 생겨, 한층 단단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힘듦은, 20대 땐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낯선 얼굴이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버겁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과정을 통해, 완성되지 못한 나의 자아는 아주 조금씩 메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서지고 깎이면서도, 틈 사이로 스며드는 이해와 견딤으로 채워지는 나.
30대 후반에도, 40대 초반에도,
아니 어쩌면 50대, 60대,
죽음을 눈앞에 둔 마지막 순간까지도.
단지 바라는 것은,
머물러주오.
내 안에 고요히 자리한 순수한 생각들과 오랜 시간에 걸쳐 정돈된 마음들이
세월에 닳지 않고, 삶의 흙먼지에 물들지 않기를.
그 자리에 그대로, 흔들림 없이 머물러주기를 바랐다.
비록 시간은 흘러가도, 마음만은 여전히 이팔청춘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