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고에서의 성찰
4년 반 동안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일본으로 잠시 떠났다.
다음 직장의 부름이 급했던 탓에, 두 직장 사이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5일.
짧은 틈이지만 어디든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떠나기 불과 이틀 전, 급히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알아보았다.
‘요나고’.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우선 왕복 항공권이 10만 원이었고, 두 번째는 너무도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 주변 사람들 중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음껏 적적함에 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 즉흥적인 선택은 나에게 너무나 잘 맞는 결정이었다.
가깝기도 하고, 생각을 식히고 싶을 때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남았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이번 여행은 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나를 돌아보는 순간들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건 주로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이토록 깊이 생각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목표는 아주 단순했다.
요나고의 고요함과는 달리, 여행 초반엔 수많은 감정들과 마주해야 했다. 때로는 감정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고,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요함에 조금씩 스며든 건지, 아니면 그 사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건지, 어느 순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망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미워하는 것과 싫어하는 건 분명 다르다. 미움이란, 자꾸 떠오른다는 뜻이니까.”
사랑의 끝에 남는 것이 꼭 이별이나 상처만은 아니다.
결국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모습으로 사랑했으며, 앞으로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지를. 그 사랑을 통해 나는 나에 대해 조금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내 방식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최선’이 과연 상대가 원했던 것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게는 부족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이번 일을 통해 배웠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중요한 사실들을 깨달았다.
내 안의 성급함은, 일에서는 '진취적'이라는 이름으로 성과를 내지만, 관계에서는 '속단'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남긴다는 것. 감정에도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한 채 다가갔으니, 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상대는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왜 나는 그 사람의 침묵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하고, 조금 더 차분히 기다려주지 못했을까. 속도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는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반대로 나는 아무리 어떠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가능한 사람들을 원하게 되었다.
같은 부모 아래,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자매조차 생각이 다른데, 전혀 다른 배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과 나의 모든 것이 일치하길 바라는 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계를 끝내려 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들여야 할 노력을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타이밍의 또다른 말은 운명이라 생각했지만, 둘은 극단의 기쁨과 아픔을 동시에 품고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조금은 다른 부분도 있다. 타이밍은 찰나인 것이고 우리가 우린 ‘운명’이야라고 비로소 말하는 순간들은 서로의 신뢰가 쌓인 상태다. 고로 마냥 운명적인 것은 없고 타이밍에 노력이 포함되어야 ‘운명적’으로 귀결된다는 것. 나는 단순히 시간적 이유를 들어 맞추는게 아닌 그것을 거스르고 운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사랑이 위대한 건 품지못할 것들까지 기꺼이 품겠다는 결심이 설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몇개월 간 나를 드리운 이 고통을 억지로 지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억을 억지로 지우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처럼, 시간이 흘러 그 순간들이 미화되어 그런것은 아니다.
생각과 감정을 분리하는 법을 기르려고 해서 그러하다. 감정의 사고화가 일어날 경우 합리화를 위한 잘못된 방향성으로 가게 되고, 감정을 분출하거나 받아들이는법을 잊게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인정해야할 때도 있다. 마음이 어떠한 일로 아프면 아프고, 힘들면 힘들고, 감정을 이해하고 건강하게 아파하는 법이 더 중요했다. 감히 말하건대, 이 생에서 가장 나를 크게 무너뜨리는 기간이었고, 여전히 너무나도 아프지만,
그만큼 너는, 너와의 모든 찰나는 너무 소중했기에.
좋아한 날보다 아파한 날이 더 길어짐에도, 시간이 오래 걸릴지언정 그 기억들을 두기로 했다.
다만 어느 날 네게 힘들다고 연락이 온다면, 그땐 그러지 못했던 내가 묵묵히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
나는 너가 미운만큼 여전히 너가 많이 보고 싶다.
아프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