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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에 Jul 13. 2021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을 때

용서


zoe


우리는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오해’였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상처를 받았고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처의 기억은 마음의 ‘감옥’이 되어서 우리를 가두고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상처받았던 어두운 기억들은 무의식 속에 꼭꼭 숨어서 우리를 옥죄고 있다가 어느 한순간 아무것도 아닌 일임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는 반응 다시 말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튀어나와 내 삶을 좌지우지하고 고통 속에 방황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용서하길 원하셔!’



이 말은 언뜻 들으면 옳은 말처럼 들리지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더 비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용서해 한다.’는 당위성과 ‘도저히 그럴 수 없다’라는 마음 사이에서 더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부로 누군가에게 ‘용서하라’고 말하기 전에 상처 입은 사람이 ‘그 상처’를 의식하고 직면하고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조차 주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너그러워져야지’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상처를 손톱으로 긁어서 피가 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강요할 문제도 아니고 상대방의 잘못을 마치 없던 것 걸로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용서를 받아서 변화가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정의와 공의’의 심판에 따라 공정하게 처벌받게 하는 것이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돌이킴으로 새 삶을 살도록 돕는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용서’여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 용서하지 못하면 영원히 ‘피해자’로, 상대방이 '비수를 꽂은 말들’에 묶여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의 가슴이 돌처럼 딱딱하게 변하고 이렇게 굳어진 마음으로는 내 곁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기적이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내 가슴속에 있는 돌들이 도려내지고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눈을 높이 들어 더 큰 세계 속에서 서로를 바라봄으로 ‘용서의 용기’가 생기고 고통스러운 이 과정을 잘 극복할 때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삶을 살아 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잘잘법 강의(김기석 목사님)를 참고하여 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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