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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조이 Dec 19. 2020

"입사하면 비건인 거 얘기하지마"

직장에서 비건으로 산다는 것

"입사 축하해! 가서 잘 하고, 비건인 건 웬만하면 얘기하지 말고."


새로운 직장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선배는

나에게 위와 같은 조언을 건넸다.


동물권단체가 아닌 이상 채식을 권장하는 직장은 거의 없는 현실이,

내가 비건*임을 밝히면 회사에 적응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일이

(비건: 고기, 생선, 유제품 등 동물이나 동물에게서 나온 식품을 모두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

빤히 보여서 한 말이었겠지만, 

이와 같은 조언은 비건으로 2년간 살아오면서 많은 질문과 채식에 대한 조언으로 

단련된 나에게도 자못 신선(?)한 타격을 선사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서 '밥'은 굉장히 중요하다.

"밥 먹었어?"라며 상대방에게 안부를 묻고,

직장인의 3대 고민 중에 하나가 "점심 뭐 먹지?"이며,

밥을 먹으며 친분을 다지는 한국의 직장에서 

비건임을 고백한다는 건 '고백'이라는 단어가 과하지 않을만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전 직장에서 비건임을 고백해서 받았던 숱한 질문들과 걱정을 가장한 공격들, 

일상적이었던 크고 작은 불편함들을 떠올랐기 때문에 선배가 전한 조언은 쉽사리 내쳐지지 않았다.


'나 때문에 밥 먹는 일이 불편해지는 건 아닐까?'

'혼자 밥 먹을 먹게 되면 어떡하지?'

계속 고민하다보니 어느덧 입사일이 되었다.


출근해서 사람들과 첫인사를 나누고, 웰컴키트를 받고, 

컴퓨터에 이런 저런 프로그램들을 설치하다보니 오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찾아온 대망의 점심시간.

첫 출근 기념으로 점심 메뉴 선택권을 받았다.

잠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말해야 호감을 사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직장을 다니는 동안은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비건임을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어버버버....쿨하지도, 힙하지도 못하게 비건임을 고백해버렸고,

논비건도 비건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북엇국 집에서 

맛있게 북엇국과 북어조림을 먹는 사람들과 앞으로 지겹도록 먹게될 비빔밥을 먹었다.

이렇게 새 직장에서의 비건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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