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삼킨 말 위로, 커피가 도착했다.

한참뒤에야 마음이 도착했다.

by 감정 한 컵

드론쇼가 있는 날이었다.

친구가 같이 가보자고 했다.

크게 내키진 않았지만, 그 친구니까.

같이 가자는데, 딱히 안 갈 이유도 없었다.


만날 장소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나는 전철을 빠져나와 2번 출구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그 출구는 통제돼 있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2번 출구로 못 나가. 어디로 가야 해?"

친구는 말했다.

"사람들 다 드론쇼 보러 가는 거니까, 그냥 따라가."


망설였이다가 결국 사람들 틈에 섞여 걸었다.

도착한 곳엔 CU 편의점이 있었다.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 CU 편의점 앞이야."


친구가 되물었다.

"거기 GS 있는데 아니야?"


"아니야, CU야, 2번 출구 바로 앞이야."


"음... 내 기억엔 GS였던 것 같은데..."


잠시 뒤, 친구가 도착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 CU였네."


짧은 대화였다.

별일 아닌 듯이 흘러갔지만,

마음 어딘가가 삐끗했다.

나는 그저 내가 본걸 말했을 뿐인데,

친구는 늘 자기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믿지 않는다.

늘 그런 식이다.


사소한 기억 앞에서도,

나는 자주 틀리는 쪽이 된다.


"인천에서 먹은 그 통닭집, 페리카나였잖아."

"처갓집 아니었어?"


사진 속 간판은 분명 '페리카나'였다.

사진을 보여주자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랬나? 미안. 내가 잘못 알았네.'


그렇게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게 고마웠다.


하지만 매번,

내가 먼저 증명해야만 하는 그 흐름.

늘 '내가 틀렸을 거야'라는 전제 위에서

시작되는 대화는

조금씩 나를 지치게 했다.


드론쇼를 기다리며 내가 물었다.

"몇 시부터 시작이야?"


"카톡으로 보내줬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참고 있던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꽉 잠근 병뚜껑이 툭, 열리듯.

"그냥 말해주면 안 돼? 왜 꼭 그렇게 말해야 돼?"


친구는 말했다.

"너는 예전부터 그랬잖아."

그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졌다.


친구는 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문장 해석이 느렸다는 걸.

회사에서도 업무자료를 펴면 한참 바라보다가,

옆에 앉은 동생이 읽어주던 걸.

카톡을 잘못 읽어 엉뚱한 대답을 하던 나를,

몇 번이나 본 사람이다.


나는 경미한 무시난독증이 있다.


그래서 책을 읽었고,

신문을 소리 내어 읽었고,

다시 써보며 바꾸고 싶었다.


어린 시절엔 포기했던 것을,

어른이 된 나는, 바꾸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의 그 말,

"예전부터 그랬잖아."가

그 모든 시간들을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말은 짧았지만,

마음은 길게 아팠다.


그때, 드론쇼가 시작됐다.

밤하늘에 불빛이 떠오르고, 흐르고, 퍼지고,

하나의 형체가 되었다.


나는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하늘에 수놓은 색색의 빛 사이로,

친구와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삶이 팍팍했고,
늘 무언가를 '해야만' 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이 있듯,

나도 그랬다.


그런 나에게

첫 연극, 첫 제주도, 첫 브런치 파티,

그리고 오늘 드론쇼까지...

그 모든 '처음'을 건넨 사람이 친구였다.

(물론 그때도 싸우긴 했다.)


집을 나서기 전, 남편이 말했다.

"사람 많은 곳 별로 안 좋아하잖아."


맞다.

그래서 늘 피했던 자리들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주었고,

나는 그 말 한마디가 고마워서 나왔다.


드론쇼를 보며

서운함과 고마움, 미안함이 뒤섞였다.

어떤 감정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나는 꾹 참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론쇼가 끝난 뒤, 우리는 편의점에 들렀다.

친구는 며칠째 배탈이 나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은터였다.


"배고파."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 배탈 나서 못 먹을 텐데, 미안해"


그랬더니 친구가 말했다.

"혼자 먹기 미안할까 봐, 한 젓가락 도와줄게."


친구는 라면을 끓이고

소세지바를 사주었다.

그게 고마웠다. 정말로.


작은 벤치 위에서

우리는 라면과 소세지바를 나눠 먹었다.


오랜 다름과 익숙한 틈 사이가

조용히 메워지고 있었다.


그날밤,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서운했던 말, 쌓였던 마음.


그건 고요히, 내 안에 가라앉혔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피곤한 관계를 왜 유지하냐고

안 맞으면 멀어지는 거라고.


하지만 사람 사이란

그렇게 단순한 공식으로 끊어지지 않는다.


고마움과 서운함이 함께 있는 관계는,

의외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일까.

쉽게 떠나지 못한다.


오늘도,

이해보다 오해가 먼저였고,

서운함보다는 고마움이 늦게 도착했다.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사람 사이엔 '시간차'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속도를 기다려주는 마음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라는 걸.


다음날 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무료 아메리카노

이벤트 링크를 보내왔다.


그런 피곤한 관계를 왜 유지하냐고?

안 맞으면 멀어지는 거라고?


근데 우리 사이?

무료로 커피를 먹을 수 있다는 걸,

굳이 알려주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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