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딩이 성공하면 후원자의 주소록이 제공된다. 이전에 펀딩은 왠지 지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부족한 제작비를 위한, 제작자를 향한 지인들의 파티 같았지만, 주소록을 받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도 많았고, 저 멀리 지방에서도 후원을 해 신기하기도 했다. 랜선 세상이 온 지 언제인데, "우와, 부산에서 어떻게 알고 사지?" 했다. 그리고 우리에겐 택배 배송이 남았다.
디자이너와 나는 블로그나 카페 등을 뒤지며 각종 택배사와 택배 기사님 개인 번호에 전화, 문자를 해가며 가장 싼 값을 찾았다. 요즘은 우리처럼 단발성, 이벤트성 택배를 보내는 경우도 있어서 '단발성 택배'에 특화된 기사님 위주로 찾으면 되었다. 나는 주로 전화를 돌렸는데 택배를 보낼 지역 위주로 검색하고, 사무실마다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 경우엔 대부분 대략적 금액을 알려줄 뿐, 구체적 날짜와 시간, 가격은 택배 기사님과 통화 후 알게 될 거라 했다. 대체로 공식적(?) 가격은 우체국 택배보다 싸나, 사업자 등록이 안 되어 있으면 사업자들보다 500원 정도 높게 불렀다. 카카오톡이나 온라인 상으로 상담이 가능한 경우엔 주로 단호박스런 답이 돌아왔다. 물건 수와 무게와 상관없이 무조건 4000원 이런 식이었다. 그러다 어떤 노인 분과도 통화 연결이 되었는데, 그분은 마치 모든 송장을 손으로 받아 적을 것처럼 말했다. 다행히 중간에 다른 팀원과 통화하며 아까 그분은 일선에 계시진 않는 오랜 사장님이란 걸 알게 되었다.
대체로 택배사, 택배 기사님과의 통화는 급박한 분위기 속에서 힘차게 오고 갔다. 그중 전화기 너머 음악이 들리고 여유 있는 말투의 기사님과도 연락이 닿았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일을 쉬는 중이었다. 어쩐지 체험 삶의 현장스런 목소리가 아니었다. 열심히 찾아보다 결국 친구가 단발성에 특화된 어느 기사님을 만나 다행히 싼 값에 계약할 수 있었다.
택배의 세계는 그냥 이미 완벽한 시스템이었고, 로봇이 아닌 사람들이 마치 기계처럼 물건을 익숙하게 처리하는 세계였다. 전국 팔도라는 큰 공장 하나가 불 한 번 끄지 않고 가동되는 느낌이랄까. 사람이 이렇게까지 일할 수 있다는 게 아픈 이후 보통 나이브한 내 일상에 자극이 되면서도, '돈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원래 많이, 빨리, 더 높이 가야 하는 거였지.
디자이너 친구네에서 택배를 싸다가 점심을 시켜먹고, 별다방 커피도 주문해 먹고, 다시 택배를 쌌다. 나는 바닥에 앉지도 못해 친구가 마련해준 귀여운 방석에 앉질 못했다. 나란히 앉아 하면 더 재밌었을 텐데. 게다가 고개와 허리를 자유롭게 숙이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어느 정도 몸의 리듬을 파악한 상태라 중간중간 스트레칭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무엇보다 편집자나 디자이너에게 이런 단순 작업, 일명 '조아이(우리말로 정합, 순서대로 가지런히 맞추는 작업)'는 보통 즐겁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 중간에 라디오 겸 출판 강의를 들으며, 젊은 강사의 패기와 짬밥 있는 강사의 회의감 사이에서 흥미롭게 일했다. 일에 있어 누구나 비슷한 수순을 밟는 것 같았다. 패기를 부리다 실망, 좌절을 겪고 회의적이나 능숙해지는 것. 낮에 먹다 남긴 찜닭을 저녁에 먹으면서는 둘 다 감기는 눈을 비볐다. 정신은 맑아도 몸은 너무 피곤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긴 했는데, 그래도 많이 먹고, 분위기가 개운했다.
다음날 택배 발송 후, 사람들의 리뷰들이 개인 메시지와 인스타에 올라왔다. 사람마다 성향대로 다이어리를 이해하고 만지고 해석하는 게 재밌었다. 누군가는 초록색인 우리 다이어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배경이 빨간 곳에 가지런히 놓고 사진을 찍기도 했고(이 누군가는 글 끝에 밝혀짐), 누군가는 수록된 스티커를 자녀에게 뺏겨 다이어리를 꾸밈 당하고 자녀 품에 안긴 다이어리를 올리기도 했다. 서로 인스타 댓글로만 연락하고 실질적(?) 연락은 자주 하지 않던 초등학교 동창, 중학교 때 교회 오빠 이런 추억의 인물들도 후원 후기를 보내왔다. 덕분에 명절에 고향에서 만나자는 덕담도 나누었다.
집 근처는 직접 배송을 하기도 했다. 동네 꽃 구경도 해가며 슬슬 할 참이었는데. 그런데 웬걸. 주문한 분들이 죄다 언덕 위 빌라 3층에 살았다. 정말 숨이 찼고, 중간중간 3층 창가에서 쉬었다. 그런데 몹시 즐거웠다. 혼잣말을 할 정도로.
아무래도 사업은, 아무래도 돈 계산은 나와 맞지 않긴 한데. 무언가를 제작하는 일은 사람들의 소비를 너머 그들의 '반응'과 '관계'로 연결된다는 것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다. 아직까지는 악플이 달리지 않아서일지 모르지만.
노고가 갸륵한 택배 기사님들, 견적만 뽑는 중이라 선뜻 결정은 미루던 내게 그럼에도 친절했던 전화기 너머 거래처 사장님들, 펀딩 후기를 각양각색으로 올리는 지인들, 뒤늦게 게시물을 보고 재고를 문의하는 꽤 많은 사람들, 내돈내산 선물용 다이어리를 나눠줄 때 사람들의 감동스런 제스처 등. 지금까지 보아온 풍경은 모두가 일과 사람에 열심이다.
오늘 내게 다이어리를 받은 한 학생은, 자리에 앉아 고개를 파묻고 10분을 그렇게 살피더라. 다이어리 한 장 한 장 그림과 사진, 문구를 모두 손으로 만지며 읽어 내려가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다이어리 하나를 저렇게 연구하듯 보다니! 장차 크게 될 상이다. 그 모습이 너무 고맙고 '왜 엽서와 펜을 챙겨주지 않았니' 하며 나를 탓하는 중이다.
내가 사람들과 관계가 없다면 일은 전혀 할 수 없는 것 같다. 혼자 사는 세상에서 혼자 일하며 혼자 돈 벌고 밥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점에서 펀딩은 제작자와 후원자, 거래처 사장님 더불어 단발성 택배 기사님과의 콜라보레이션이며, 애초에 제작 비용에 맞춰 찍기에 개수에서 약간 아쉬움이 남는, 받는 이들이 이다음도 기대하는, 달고 오묘한 일인 것 같다. 자꾸 내년에도 사겠다고 하시네.
* 인상 깊던 친척 오빠의 후기 ㅎㅎ
펀딩 그 끝에서, 올 한 해 내게 먼저 손 내밀어준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