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녹 다이어리 제작기_펀딩 편
퇴사를 하고 독립 출판을 몇 번 즐겁게 해 왔다. 예쁘고 맘에 드는 걸 쏙쏙 골라 작업물에 반영할 수 있었다. 대개 작업 상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서로 원하는 바를 실컷 구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마음을 두드리는 '녹녹' 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사 창업을 준비하며 우선 내년 다이어리 제작에 들어갔다. 그동안 별다방 다이어리를 위해 매해 무려 17잔의 커피를 마셨던 나를 돌아보며. 내게 꼭 필요하고, 맘에 드는 걸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디자이너와 나는 둘 다 크리스천인데, 그동안 크리스천 문구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찾지 못했던 게 생각났다. 다이어리 안에 원하는 문구와 구성, 디자인을 더해 펀딩을 막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펀딩이 처음인지라 펀딩에 임해야 하는 자세에 약간의 '뻔뻔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펀딩을 위한 게시물을 올리고, 잠시 뒤 많은 댓글과 관심을 받았고 카카오 단체톡에서도 친구들의 열띤 응원과 공유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펀딩을 오픈하자마자 당일 이미 목표 금액 100%를 넘겼다. 그런데 딱 두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불현듯 생겼다.
1. 펀딩 당일 후원하는 사람들은 가족, 친척, 지인들이다. 신세지는 느낌. 신세를 지는 걸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하는 내가 아주 공개적으로 신세를 지게 되었다.
2. 크리스천 다이어리라는 컨셉. 후원자에 조건이 붙어버린 것.
사실 내지와 표지, 굿즈에 종교색이 짙게 드러나진 않는다. 나나 친구나 '우리가 크리스천이요' 드러내는 게 아니라 그냥 무던히 크리스천답게 사는 게 삶의 목표다. 하지만 다이어리 안에 담긴 요쇼와 메시지가 크리스천을 위한 거니까. 텀블벅 자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나의 가족, 친척 중에 크리스천은 많지 않다. 만약 산다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응원할 겸 사주는 거겠지. 엄마와 이모는 이럴 때 항상 팔 걷고 나서준다. 35살 딸, 조카를 위하여 큰 금액을 투척한다. 그밖에 이전 교회 친구, 남편 친구, 이전 회사 동료들이 사주더라. 괜히 펀딩 자체가 좀 민망하고 그런 거다.
그러다 1차 샘플을 들고 우리 디자이너를 만났다. 샘플 확인도 하고 밥도 먹을 겸. 생각보다 두께가 톡톡하니 마음에 들었다. 다이어리에서 건강함이 느껴졌다랄까. (요즘 내가 꽂힌 키워드는 건강이다!) 그런데 나나 디자이너나 둘 다 약간 생각이 많은 듯했다. 크리스천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하필 왜 우리는 크리스천 다이어리를 하기로 했나? 고민이 제일 컸다. 우리가 지양하는 모습으로 사는 크리스천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크리스천'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때로 부끄럽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문득 성경에 사람들이 예수를 싫어할 거라고 쓰여 있는 말씀 구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구절은 진리를 수호하며 살아갈 때 그 반대를 원하는 세상이 예수를 거절할 거란 의미일 텐데. 오늘날은 깽판을 치는 쪽이 교회니 할 말이 없다. 이렇게, 엄청 멀리 멀리, 코로나 기간이라 갈 수 없는 지구 반대편까지 생각이 가 버린 듯했다. 와중에 시킨 음식은 아주 맛이가 좋아서. 썰을 풀면서도 속으로 맛에 감탄하기도 했다. 파스타 위 고명으로 놓인 한우가 아주 실했다. 그렇게 먹으면서, 생각하면서, 언제나 표현은 좀 다르지만 마음 한 부분 비슷한 디자이너와 나는, 중간에 '다이어리는 1년을 쓴다' 지점에서, 쿵, 했다. 예를 들면 인스타에서 사람들이 태그를 걸어 후원 의사를 표시하는데, "내년은 녹녹과 함께" 이런 문장을 쓰는 거다. 다들 내년 1년 동안 사용할 다이어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가운데, 녹녹을 선택하는 것. 늘 별다방만 쓰던 사람들이 한번쯤 고민해주는 것 자체도 얼마나 고마운지. 반면 또 얼마나 긴장되는지.
갑자기 열일 욕구가 불타 올라 빨리 교정을 하고 싶고, 다른 다이어리와 달력을 샅샅이 뒤지며 우리가 빼 먹거나 불필요하게 더한 건 없는지 확인했다. 재미난 발견은, 달력 부분에서 회사마다 넣고 싶은 '날'이 달랐고, 제품만 봐도 회사의 사회적 내지는 정치적 성향까지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는 어디까지 말하게 될까? 1년을 품에 안고, 손에 넣고, 만지작거릴 다이어리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구나.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지금, 제발 튼튼하고 안전한 다이어리로 완성되면 좋겠다. 오탈자도 없어야겠고... 사실 이것이 제일 무섭다.
펀딩 3일 차. 아직 22일이라는 시간이 남았고, 펀딩은 목표 금액의 150% 달성이다. 인친 중에 2주 후에 후원을 원한다는 후원 예고 댓글도 달려 마음에 여유가 한 줄 생겼다. 인스타로만 연락해온 오랜 초등학교 친구들이 후원한다고 댓글을 남겨 마음이 훈훈하기도 하다. 펀딩 자체에 대한 생각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나 싶으면서도, 솔직히 금액에 비해 인원이 적다는 것이 조금은 신경 쓰인다. 디자이너와 나의 친지들의 넉넉한 후원과 친한 친구들은 너무나 의무감과 책임감에 홍보부터 공유까지 쉬질 않아 미안한 상태고. 사실 불특정 다수에게 평가를 받고, 어필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자신감 확인 정도의 일은 아니니까. 애초에 우리가 타깃한 크리스천에게 잘 사용되는 것만이 우리의 목표고 만족이면 되었지 싶다. 일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평가받고 싶은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의 평가가 이런 독립적인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론 회사라는 안전한 틀에서 각자 정해진 일을 하는 게 아니고, 독립해서 친구와 둘이 작업을 해나가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기도 하다. 서로의 기대와 방향을 잡는 것부터 모든 게 새롭다. 가끔 삐그덕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지점이 일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여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이번 일이 아쉬움으로 남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맙소사! 기승전걱정, 또 걱정이다.
근데 걱정을 해서 뭐하나. 누가 걱정 사주는 것도 아니고. 다이어리가 안전히 완성되어 사람들 두 손에 전달되고, 후원자의 마음을 '녹녹knock knock' 두드리면 좋겠다. 그리고 갑자기 내가 올해는 별다방에 17잔 어치 금액을 후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뿌듯한 중이다!
녹녹 다이어리 텀블벅 링크
https://tumblbug.com/knockknock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