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말 대사전

by 영영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평소 단어를 고민하고 고르고 선택하는 편집자스런 행동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건지. 다년간 편집자로 살아서 그런 건지, 그냥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인 건지. 후천적인 건지, 기질적인 건지 궁금해졌다. 주변을 보면, 편집자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선 무던하고, 말을 쉽게 던지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기질인가 싶다가도, 편집자 친구들 대부분이 나처럼 단어에 민감하다는 것을 보면 후천적인 성격인가 싶기도 하다.


특히 유독 마음에 걸리는 단어들이 많은데, 단어가 가진 결이 일방적일 때, 나는 잘 걸려 넘어진다. 가령,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 "왜????"(물음표가 많은 말투), "맞다/ 틀리다", "원래 그런 거다" 하며 상대가 평가자 또는 판단자 입장을 고수하는 대화가 어렵다. 보통 편집자는 잘 모르겠는 글이 와도 일단 이해하려 애쓰며 고쳐 보려 한다. 그런 노력에도 모르겠으면, 그때서야 '왜죠?'라고 원고 여백에 써둔다. 사람들이 쉽게 쓰지만 빼는 게 나을 때가 많은 '원래'라는 말은 지양하며(생각보다 원래 그런 일은 많지 않다), '틀리다'와 '다르다'의 차이를 늘 염두에 두고 글을 고친다. 여기까지는 단어를 면밀히 살펴야 하는 편집자 업무 성향 때문에 예민해진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걸려 넘어지는 말은, 직장에서 자주 들었던 말인데, "누가 그랬어"(끝을 내려 읽음) 다. 책임을 당장 전가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저 표현은, 내 인내심이 바닥을 치게 했다. 누가 그랬냐고 왜 내게 묻지? 내가 대답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지? 골치가 아팠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정적인 표현이 어려운데, 나는 남에게 부정적인 단어는 웬만해선 쓰지 않기 때문이다. 내 고됨이 전가되는 게 싫고, 말하다 보면 눈물이 나왔… 이건 살짝 그냥 내가 생겨먹길 그런 거 같다.


단어에 민감한 만큼 모든 대화에 나는 최선을 다한다. 한 번도 대충 대답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남들도 그런 줄 안다. 사람들의 반응을 일일이 보며 자주 고민한다. 이런 내게 남편은, "사람들은 대부분 너처럼 모든 대화에 충실하지 않아, 그냥 말하고 쉽게 잊는 경우도 많아"라고 했다. 완전 충격적이었다.


사람마다 살아온 역사가 다르고, 듣고, 쓰고, 배운 단어가 다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단어의 뜻을 명확히 알거나 뉘앙스를 완전히 이해하고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의 언어생활이 가장 힘들다. 서로 말의 역사가 너무나 달라서. 좀 가벼운 예를 들면, '즐'이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 나와 남편은 '즐'을 서로 다른 경우에 사용했다. 남편은 '즐겁게 무엇인가를 해라' 의미로 생각했고, 나는 욕 대신 쓰는 말로 생각했다. 그런데 카톡 대화 중에 남편이 갑자기 내게 '즐' 하고 (욕을 하고) 마치는 거다. 왜 욕을 하느냐 했더니, 남편은 이건 좋은 말이라고 했다.


오늘 글을 쓰면 쓸수록 점점 나는 기질적으로 단어에 민감한 것 같다는 생각이 짙어지는 중에, 비언어적 표현에도 민감한 경우까지 생각난다. 상대의 표정, 말투, 행동이 말하고 있는 바가 대화 분위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나는 언어적, 비언어적 상황 모두에 예민한 사람이다. 그렇군. 그래서 편집 일이 잘 맞고, 세세해야 하는 업무 환경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나 보다. 편집자여서 예민해진 게 아니라, 말에 민감한 편집자 체질이군.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편집자 친구에게 말해줘야겠다. "우리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거 같아"라고. 그리고 "이 바닥을 떠나지 않는 이상 우린 더욱 계발되고 있어!" 라고.


집 앞이 남편 근무지라 가끔 점심을 함께 먹고 산책한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이 일찍 들어가야 해서 중간에 헤어져야 했다. 나는 왠지 '즐'이라고 하고 싶어졌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즐~"

남편은 이 말로 토론회를 열었던 날을 기억이나 할까.


7년을 서로 다른 언어를 각자 고수하며 살다 보니 이젠 단어 본래의 뜻보다, 남편이 생각하는 단어의 뜻을 따로 떠올리게 된다. "단어의 본 뜻을 알고 있다면 이 상황에 저 말을 하진 않았을 거야." 말 싸움 전에 의도를 파악한다. 마치 '남편 말 대사전'이 따로 있는 것처럼. 물론 남편 입장에선 내가 그러겠다. 우리 각자 "자기 말 대사전"이 있겠구나.


말에 민감한 게 기질인지 후천적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남편 얘기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나는 남편과 단어 싸움을 그동안 너무 많이 했다. 이제 우린 지쳤고, 서로 이해도 된다. 혹시 또, 똥 같은 말이 날아오면 서로에게 자기 말 사전을 던져주기로 하자.


많은 것을 공유하는 남편과도 이 정도면 남들과 죽이 잘 맞기 힘든 건 너무 당연하겠다. '자기 말 대사전'에서 단어가 나와 서로 발화하는 그 순간에 모든 게 잘 맞는 건 기적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러니 내가 말에 민감한 것까진 말릴 수 없지만, 상대의 말에 의해 좌지우지 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말 때문에 상대를 판단해서도 안 될 것 같고. 말에 민감한 것이 나를 그만 넘어뜨리게, 내 말에 민감하고 남의 말에 자유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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