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4학년 문창과 수업엔 출판 편집 강의도 있었다. 아무래도 작가의 길을 당장 가기보다 일단 출판사를 택하는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 수업에서 교수님은 "편집자란 자기 흔적을 지우고 저자를 드러내는 사람이다"라는 명언을 날렸는데, 그 순간 나는 '내가 바로 그 편집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나를 지우고 신의 모습을 삶에서 드러내는 게 옳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신앙과 업무가 동일시될 거란 희망을 품고, 연결고리 속에서 희열을 느끼며 출판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웬걸. 내가 맡은 원고는 대부분 집필이 처음이거나 편집자가 무얼 하는지 모르는 목사나 전도사님 들의 원고였기에. 초고는 늘 알 수 없는 기호 같을 때가 많았고, 단어 하나하나 사전을 찾아 고치지 않으면 이해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말글에 익숙하고 책이 나오는 과정을 대부분 모르셨기 때문에 내가 왜 자신들의 글을 고쳐야 하는지부터 설명해야 할 때도 많았다.
한 문장을 읽고 그곳에 놓인 단어를 확신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원고와의 싸움에서 저자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고, 그래서 난 확신을 늘 미뤘다. 저자 글보다 내가 고친 내용이 더 많아져서 때론 저자에게 미안했는데, 저자가 다 고쳐줘서 고맙다고 할 때면, 이 사람은 이게 고마울 일인가 싶고. 어느날 잘 쓴 글을 보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모든 일에 쉽게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의심에 의심을 더하며, 직접 확인할 수 있고, 경험하지 않으면 많은 일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한다. 원고에서 나는 지우고 저자만 드러내는 건 꿈도 못 꿨다. 그냥 원고를 확신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초년생일 땐 업무를 빠르게 진행하지 않는 선배들을 보며 "왜 저렇게 오래 걸리지?" 했는데, 그 마음을 이제 좀 알 것 같다.
한 번은 편집장님과 인터뷰를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대체 어떤 확신으로 '기다, 아니다' 할 수 있으며 '맞다, 틀리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느냐 물었다. 그랬더니 "자꾸 보다 보면 그런 확신이 생기고, 그럼 그 확신을 밀고 나가면 된다" 고 하더라. 편집장님 말대로 일의 년수가 늘며 어느 정도 표지나 내지 또는 내용에 정보가 담기거나, 수학 공식처럼 여겨지는 부분은 확인하고 확신하고 주장할 수 있어졌다. 책이라는 특징이 가진 몇몇 공식에 따라서 맞고 틀린 걸 잡을 수는 있다. 나도 모르는 새 생긴 내 안의 법칙 같은 게 있긴 하다. 그런데 여전히 개인 취향에 따라 갈리는 영역에선 확신이 어렵다.
그런데 빨리 확신하지 않으면 일이 더디다. 그리고 자꾸 무수한 가능성을 열어두니, 결정이 오래 걸린다. 편집자는 빨리 결정하고 진행을 이끌어야 할 때가 많은데, 나는 확신이 느렸다. '이러지 않을까, 저러지 않을까' 하느라. 끝에 가선 결국 마음에 더 들거나 익숙한 걸 선택하는 게 맞다고 할 수 있을까, 선택하는 동시에 확신하지 못한다. 협업자가 의견을 보태면 거기로 그냥 막 총총총 하고 따라갈 때가 많다.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확신한다고 실제 그것이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맞다" 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확신하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고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더 많다. 확신의 말들 틈에서 자주 찌그러진다. 대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확신해? 대체 이 사람은 이게 왜 맞고, 틀려? 어쩔 땐 '맞다'는 단어가 들리면 턱까지 숨이 찬다. 요즘 세상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서 모르겠는 거 투성인데. 방금 한 말이 문제가 되거나, 누군가를 배려 못한 말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매번 확신하지? 싶은 거다. 나는 그래서 보통 확인하지 않으면 틀린 정보일 수 있으니 확신을 느리게 하며 안정감을 선택한다. 결국 나는 실수하기 싫어서, 틀리기 싫어서 확신하는 게 어려운가 보다. 자주 확신하는 사람이 틀리는 걸 볼 때 내가 다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걸 보면, 삶에서는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어도 좋겠다, 나는.
나는 여전히 느리게 확신하며 편집한다. 최선을 찾기 위해 용쓰기는 하는데, 느리다. 보통 편집자들이 보이는, 확신에 찬 자신감 있는 말투와는 좀 거리가 있다. 무엇 하나 이건 '맞지 아니지' 할 수 없는 '그런 건가, 그럴까'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이런 나여도 살아야 하니, 나름 장점을 찾자면... 무수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 보면 사고를 좀 줄일 수 있다. 그리고 확신에 찬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실수 내지는 일방적 견해를 지양할 수 있다. 대충 알지만 일단 배우려 하면, 알던 것 그 이상을 배우는 기회도 생긴다. 편집자 중에도 이런 사람 하나쯤은 필요하겠지. 이 사람, 저 사람 생각을 종합해보고 고민해보고 중간을 찾아가는 사람. 그러지 않을까? 아닌가? 역시 모르겠군.
가끔은 일하면서 지극히 내 취향의 책, 나 스스로에게만 '맞아, 이게 맞지, 내 취향이지' 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 시적 허용 속에서 문학적이면서 심한 비문은 없으면 좋겠고, 문학 서적이 아닌데 하나의 문학 작품처럼 감동이 밀려오면 좋겠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문장은 톡톡 튀는 그런 책이면 좋겠다. 글자 하나하나가 아주 스타카토로 내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책이면 좋겠고, 줄 칠 문장이 많은 책이면 좋겠다. 무광 표지에 음각하고 박을 넣고, 내가 그 시점에 좋아하는 내지 별색을 넣어 가지고 반짝반짝하면서도 속은 깊은 책, 천천히 읽고 싶고 영원히 소장하고 싶은 책이면 좋겠다.
느리게 확신하지만
서로 원하는 건 분명히 알고,
내세워도 될 때에
꼭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