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음이 뭐더라

끝 마음 유지 중입니다

by 영영



20대 내 청춘은 출판사에서 곪았다.

곪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을 못 찾는 중이다. 대학 졸업 전에 취직하는 바람에 졸업식엔 회사 사무장님과 홍보 팀장님이 오셨다. 가족 모임 저 너머에서 신문을 보며 짜장면을 드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마운 분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편집장님은 안 오고? 나는 편집팀인데. 그만큼 사적이고 내향적이며 예민한 집단이 출판사 편집부다. 꼭 그런 면만 있지 않다고 하기엔,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중간중간 디자이너나 다른 팀과 협업 과정에서 입을 떼고 몸을 쓰러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면 몇 시간이고 말없이 얌전히 앉아 있을 사람들. 본디 내향인데 외향을 오가야 하는 사람들이며, 문장 사이와 사람 사이, 행간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첫 직장은 기독교 잡지사였다. 청소년을 위한 기독교 잡지를 만드는 게 내 업무였고, 격월로 나오는 책 한 권을 담당해야 했다. 우선 일정을 짜고, 학생들을 만나 미션도 하고, 기독교인이면서 각 분야의 셀럽들을 섭외 후 찾아가 인터뷰하고, 구독자 엽서를 훑고 이야기를 골랐다. 표지 작가와 회의하고, 다른 출판사의 책을 소개하고, 책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고, 연재 저자들과 소통하는 일 또한 내 몫. 두 달에 한 번 잡지를 만드는 건 내 일상과 업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주변이 온통 잡지 관련된 것들로만 둘러 싸이는 일이었다. 다행히 당시 좋은 동료들을 만나 새벽까지 동고동락해도 행복했고, 지금까지 우리는 막역하다. 그때가 내 인생의 절정이 아니었을까. 모든 걸 쏟아부을 대상이 있고 그것을 지켜내던 시절이었다. 잡지가 폐간되기 전까지 근무했으니까, 내게 '첫 마음'은 모든 걸 거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 일, 네 일 없이 일하는 이상한 업무 방식을 잘못 배웠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일에 모든 걸 걸고 지내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찾아뵈던 할아버지를 못 보고 거른 달이 있었다. 당시 회사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캠프를 떠나야 해서 책 작업 말고도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와중에 캠프 출발은 오후였고, 그전에 할아버지 댁에 잠깐 들를까 했는데, 회사 동료가 회사 앞에 미리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냈다(당시 회사는 우리집 앞이었다). 나는 먼저 온 동료와 회사 앞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캠프를 가느냐, 다녀와서 뵙느냐' 기로에서 난 후자를 택한 거다. 이번만 캠프 다녀와서 뵙지 뭐. 출발할 때 '캠프 잘 다녀올게요' 전화할까 하다가 그마저도 너무 바빠 걸렀다. 도착해서 전화할까 하다가 이건 아예 잊었다. 도착하고부터 캠프 현장은 전쟁 같았으니까. 캠프를 잘 마치고 돌아오니 할아버지는 병원 응급실에 계셨다. 면회 목걸이를 받아 들어가는데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다. 한다는 말이 고작 "할아버지 내 결혼식에 와야 하니까 아프지 마" 였던 것 같다.


한여름, 모든 것이 청명하던 8월, 할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그리고 점점 죽음을 향해 갔다. 나는 고작 그 해 5월 어버이날 할아버지와 전복죽을 함께 먹은 게 전부다. 갑자기 다급해진 마음에 휴가를 내고 의식이 없는 할아버지 곁에서, 어색한 큰 아빠랑, 친분 없는 요양 보호사와 셋이 할아버지 병실을 지켰다. 퉁퉁 부은 손을 만지고 닦고 해도, 며칠 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떼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세상 유명한 잡지도 아니고, 회사가 평생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고, 다시 떼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등등. 첫 마음을 지키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들이 무궁무진하게 반복해서 떠올랐다. 곁에 있는 사람들도 지키지 못하면서 일 잘해 뭐하나 생각이 들고, 그걸 몰라 악착같이 헛짓거리를 한 듯한 스스로가 너무 절망스러웠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를 할아버지가 지켜줬으니, 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이라도 지켜드렸어야 했는데, 지척에 살면서, 잠깐 들르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더욱 절망스러운 건, 나와 할아버지만의 산책길, 골목길, 한강길, 함께 찍은 사진, 대화는 나와 할아버지만 안다는 거였다. 나와 할아버지만의 세계가 사라진 슬픔을 목에 꾹꾹 눌러가며,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회사 놀이는 그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성향을 거스르는 각오 같은 건 쉬이 잊히는 것 같다. 아님 내가 원래 멍청하거나. 첫 회사에서의 경험은 그다음 회사에서 더욱 '업글'되었다. 첫 마음 플러스 '일도 사람도 지키기'까지 더해진 거다. 내 일, 네 일 따지지 않고 닥치는 대로 다하면서 사람도 챙기기. 예를 들면, 당시 회사는 프로젝트마다 사람을 계속 뽑는 분위기였고, 나는 잡지가 폐간되어 헤어진 첫 회사 동료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일 외에 회사에서 하는 많은 행사에 진심을 다했다. 소풍, 워크샵, 연말 파티 등등 업무 외 일도 사람도 다 챙겨가며, 첫 마음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중간 마음으로 일했다. 첫 마음이 아무것도 모르고 덤빈 거라면, 중간 마음은 경험을 토대로 주변 사람들도 다 지켜가며, 경력과 능력 모두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미친 노력을 다했다. 입사하자마자 들었던 말은 '네 업무가 중하니 임신을 바로 하진 않을 거지?'였다. 이런 말이 오가도 되던 때였다. 나는 정말 미친 건지 그 말에 동의했다. 난임 산재 처리를 할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그렇게 5년 동안 임신할 여력도 없이 일했고 계약직으로 퇴사를 했다. 퇴사 전날 대표님은 내게 고맙다고 밥을 사줬다. 그런데 나는 가끔 내게 말한다. '그래서 좋았니.'


두 번째 회사를 나오며 든 생각은 '일만 할걸'이었다. 일도 잘하고, 사람도 챙기며 두 가지를 다 놓치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는 그냥 나에 대한 답답함뿐이었다. 주변을 탓하기엔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그래서 이후 시작한 외주자 교정 일에서 나는 '내 일만 하기'를 처음으로 시도해봤는데 결과는 아주 바람직했다! 일을 해온 깜냥이 있어 상대방 마음에 드는 말과 행동을 적당히 하면 되었고, 그러다 갑자기 훅 들어와 친해질 것 같으면 적당히 거리를 두는 방법을 택했는데, 상대는 그걸 더 좋아했고, 무엇보다 외주자는 그래도 되더라. 일만 잘하면 되더라! 남들은 그걸 8년이나 일하고 알아? 하겠지만, 나는 이런 나라서, 신세계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 '중쇄를 찍자!' 5권을 꺼내보았다.

음악 어플에서 라디오 진행 중인 동생이 만화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했다. 누나로서 해줄 건 홍보와 댓글뿐이라 사연을 보내려고 '중쇄를 찍자!'를 꺼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분명 '중쇄를 찍자!'는 내게 너무 감동적이고 울컥하고, 편집자의 '첫 마음'이 구구절절하게 담겼던 거로 아는데, 다시 보니 어느 한 문장 마음에 꽂히는 게 없었다. 좋았던 책이면 후루룩 넘기면서 보통 좋았던 구절이 눈에 확 들어오곤 하는데 하나도 꽂히는 게 없더라. 분명 5권이 편집자 마인드를 가장 적합하게 표현해준 것 같았는데! 찾지를 못했다! 어머나! 드디어! 내가 첫 마음을 집어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난 걸까! 사회 초년생 편집자의 고군분투기에서 감동 구절 찾지 못한 게 오히려 뿌듯했다. 그래도 사연은 적었다. 모든 게 뜨끈하게 다가오던 시절에 듣던 노래가 있다고, 일하는 나를 저 세상 초록초록한 들판으로 보내주던 두 번째 달의 '서쪽하늘에'를 신청했다. (안타깝게도 당일 청취자 폭주로 라디오 어플 서버가 다운되어 인스타 라이브 방송으로 대체되었다.)


프리랜서 편집자로 계속 일하는 중이다. 지인 찬스로 책을 만들게 되는 경우가 더 많긴 한데, 퇴사 후 작업 중에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겁나거나, 힘들지만 꾹 참아야 하는 순간이 잦진 않다. 몸이 안 좋아진 이후로는 그나마 들어오는 일들을 거절할 경우도 많았는데, 요즘 다시 시작 중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상황 통제가 가능하고, 적당히 열을 쏟아도 되는 할 수 있는 근무 조건을 유지 중이다. '사람 죠아 넘흐 죠아' 성격이라 업무 중에 마음이 통해 버리면 '워워' 가라앉히며, 첫 마음도 아니고 중간 마음도 아닌 끝 마음 유지 중이다. 뭐든 잘하려고, 완벽하게 하려고 생각하다 아픈 것 같다. 첫 마음 지키려다 자꾸 인생의 끝만 기다리는 거 같다. 뭐든 편하게 시작하고 시도해보며, 언제든 아프면 그만해도 된다는 '끝 마음'으로 일해야지.


나와 주변을 해치지 않을 마음으로 살고 일하는 게 목표다. 이 마음으로 근근이 오래 일하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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