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과 기름이니라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딜레마

by 영영

대체로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성향이 상극이다. 그리고 우리의 차이는 보통 건설적이다.

(사람 나름이긴 하겠지만 그동안 경험으로 보아) 우선 편집자는 내향적일 때가 많다. 때론 외향과 내향 그 중간 어디 즈음에 있다. 저자, 그림 작가, 디자이너, 팀장님과 대표님의 마음 등 여러 상황을 조율해야 하는 입장일 때가 많아 작업자에 따라 분위기를 맞추는 편이다. 상대를 위해서일 때도 있지만 결국 나를 위해서일 때도 많다. 일이 꼬이면 피곤해지니까. 그리고 상황에 알맞은 단어를 골라 던지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입만 청산유수일 때도 많다. 이런 업의 성격 때문에, 나는 일상에서도 단어가 알맞게 골라지지 않을 때 '일시정지'가 되며 약간 뇌세포가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결국 반응이 늦다.


반면 (그동안 내가 만난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대체로 외향적이며 감각적이다. 그 순간 드는 느낌과 생각을 가감 없이 던진다. 그리고 잘 잊는 것 같다. 말보다 그림에, 입보다 눈에 무게를 두어 그런가 보다. 20대 때부터 그때그때의 느낌을 던지는 출판사 디자이너들과 일하며 예상을 하면서도 늘 낯설다. 물과 기름 같이 도저히 섞이지 않는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이렇게 싸우다 죽마고우가 되는 경우가 잦다. 아예 헤어지는 쪽도 있겠지만. 다행히 지금 내 곁에는 노필터 천연 암반수 같은 디자이너 친구들이 "많다."


또 부딪히는 지점은, 영원한 딜레마인데, 편집자는 내용이 읽히길 원한다는 것이고 디자이너는 시각적으로 방해되지 않길 원한다는 점이다. 창조주가 같은 두 눈을 주셨는데 이렇게 보는 관점이 다르다. 내가 한 줄 텍스트라도 위치와 의미, 가독성을 고민하여 내용을 전달하면 디자이너에게 그건 요소일 뿐이다. 디자이너에게 텍스트는 여느 이미지처럼 지면의 장치요, 장식이다.


덧붙이면 (이것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대체로 편집자는 한글을 사랑하고, 디자이너는 서체마다 선호하는 언어가 다르다. 보통 그러지 않나. 편집자에게는 보통 한글을 지켜내야 한다는 수호적 마음이 깔려 있고, 가독성 문제도 있고, 그래서 한글이 아니면 일단 긴장을 하고 본다. 디자이너는 작업 분위기에 따라 언어를 바꿀 수 있는 융통성이 넘친다.




2022년 다이어리를 만드는 중이다. 아마 책 작업이었다면 요소의 중요도를 함께 따지고 우선순위대로 위치를 선정했겠지만, 다이어리 작업은 좀 달랐다. 일단 기획과 구성 단계를 함께하고 많은 영역이 디자이너에게 달렸더라. 그리고 나는!!! 디자인된 페이지에서 계속 가독성을 따지고 있는 거다. 디자이너는 당연 중요한 것 빼고는 읽히지 않게 디자인을 하고 있고. 그러다 내게 각 내지의 무게가 비슷한 책을 편집하던 이력만 있지, 문구류를 만들던 이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다이어리'라는 특성을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 구매자를 고민한다지만, 사실 다이어리는 남에게 가는 순간 '그 사람의 것'이 된다. 뇌 속에서 댕댕댕 소리가 나는 기분. '그래, 자리를 주자. 텍스트는 장식이요, 절대 읽지 마세요. 다이어리는 받은 여러분이 빛내세요.'


이번 작업은 디자이너 손을 들어줘야겠다. 그래도 작업에서 내가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하다 텀블벅 프로젝트에 필요한 텍스트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작은 글자 하나라도 잘 읽혀서 남에게 편한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은 나나, 본인이 쓰고 싶은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은 디자이너나 "잘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기능적으로 '다이어리를 사용하는 사람'이 편한 걸 만들고 싶다. 물론 우리 디자이너는 내가 자꾸 '의미, 고민' 단어를 쓰면 이별 노선을 타고 싶어지겠지만. 우린 어쨌든 다시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프로젝트 소개에 [기획, 구성 단계에서는 필요한 것만 남기고, 디자인 단계에서는 님이 쓰도록 덜어냈다]는 걸 강조하려 한다. 나는 마음에 드는데, 디자이너는 어떨지 모르겠다.


사실 현재 다이어리 제작은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하자니 부족하고, 부족한 대로 하자니 아쉽고 그렇다. 그런데 못 만들어도 잘 만들고 싶다. 우리 디자이너는 잘하려는 마음을 비우겠다던데. 우리는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린 물과 기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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