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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Dec 09. 2020

그럴 거면 비행기 타고 집에 가!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


얼마나 해야 영어를 '잘'한다고 할까?
그것을 '잘'한다는 기준은 대체 뭘까?



전, 현직 크루즈 승무원 분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의문의 감탄사가 슬쩍슬쩍 새어 나온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크루즈승무원이 되기 전 이미 워홀이나 유학의 과정을 밟으면서 일과 공부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거나 혹은 타국에서 실제로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어쩌면 조금은 특별한 커리어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영어는 기본이거니와 제2 외국어로 스페인어, 중국어, 태국어, 독일어, 불어 까지도 구사가 가능했다. 이렇게 언어에 능통하신 분들은 생각보다 너무도 많았고, 그러한 분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이따금 꿀 먹은 병아리처럼 움츠려 들곤 했다. 그 부분을 뛰어넘을만한 관련 경력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승산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스물한 살 첫 승선 전까지, 영어라는 과목에 흥미를 느끼고 영어로 하는 수업시간이 즐겁고 신나긴 했지만 영어를 자유롭고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내가 영어를 못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건 분명하다. 적어도 그 시절의 나는 말이다.






그랬던 내게 문화적 충격, 일명 컬처쇼크로 뒷 목을 잡았던 순간은 바로 카니발에 입사한 근무 첫날이었다.


근무 시간에 맞춰 그저 일터에 나갔을 뿐인데 미드 속에서나 봤을 법한 그 공간에서 나는 좀처럼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카지노 오픈 전)
조심스레 유모차를 이끄는 아기 엄마, 반짝이는 드레스가 몸에 꼭 맞는 금발미녀, 재잘거리는 파란 눈을 가진 어린아이들, 깔끔한 턱시도를 깔 맞춰 입은 부자지간, 두 손을 꼭 맞잡은 백발의 노부부 등


중화권 승객들만 그득했던 스타 크루즈와는 천차만별로 참으로 다채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환상 속에서 헤엄치던 것도 잠시,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마다의 무리에서 두서없이 들려오는 말소리가 고막을 통과하지 않고 공중에서 파편처럼 흩날렸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도무지 못 알아듣겠어..'


특히나 말이 빠르고 억양이 특이한 분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해는 했으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여 승객이 컴플레인을 하는 등 어느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의사소통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했다.



열의에 찬 처음 그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처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의기소침해져 가는 내 모습을 은연중에 매니저가 파악했는지, 그녀는 어느 날 나를 오피스로 불렀다.

"Hey, Yujeong!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고작 이 정도도 못 알아듣는 널 누가 합격시켰지? 그 면접관 이름이 뭐지? 나 지금 한마디 할 거야."
"며칠 전에 컴플레인 들어왔어. 제대로 정보를 줄 줄도 모르는 애를 왜 테이블에 세워놓는 거냐고 하는데, 할 말 있니?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네가 그들의 요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돼?"


안이하게 생각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원망스러운 만큼 눈 앞에 닥친 현실은 시리도록 냉정했다.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마침내 벌겋게 부은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분명 내 실력이 부족해서 자초한 일인데 당사자인 내가 왜 울고 있는 건지, 나도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나를 세워둔 채 멈추지 않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녀의 호통이 커지면 커질수록 위축되어가는 어깨는 점점 바닥을 향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괜찮은 척을 하고 싶었던 나는 우선 눈물을 그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술 깨물기를 반복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기회를 줄게, 단 2주야. 그때까지 실력을 향상하지 않는다면 넌 내일이라도 당장 짐 싸서 집에 가야 할 거야. 알아들었니?"


2주 만에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싶으면서도 지금은 그런 반론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여 몇 번이고 감사를 표했다. 매치가 안 되는 행동이었지만 나는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언제 그렇게 눈물을 펑펑 쏟았나 싶을 정도로 나는 이전처럼 쾌활함을 되찾았다. 기가 죽어 소극적이었던 태도에서 벗어나 깨어있는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최대한 많이 입을 뻥긋하도록 노력했다. 문법에 어긋나는 걸 두려워 않았고, 아무 말이고 우선은 지르고 봤었다. 이렇게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잘못된 단어를 교정해주기도 했고, 틀린 부분은 무안하지 않게 그러나 콕 집어 자세하게 반복하여 설명해주었다.


예전에는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면 부끄러운 맘에 그저 미소만 머금은 채 끄덕였는데, 어느덧 태도에서 자신감이 붙은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에 놓이면 아랑곳 않고 몇 번이고 다시 물어 반드시 짚고 넘어갔다.



그러한 노력들이 매니저의 레이더에 감지됐는지 그날 이후로 그녀는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잘하고 있어'라는 무언의 미소만 지긋이 내비쳤다.






이상하게도 유년시절부터 영어로 소통하는 것에 유달리 재미를 느낀 나는 이러한 인식이 자리하기 전부터 다양한 문화 속에서 무언갈 배우고 성장하고자 꿈꿔왔던 것 같다. 그래서 크루즈승무원이라는 직업이 꼭 맞게 느껴지는 걸까?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어색하게 느껴지면서도 싫지는 않다. 이런 스펙터클한 하루가 내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여전히 신기할 따름이다.


모쪼록 집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는 만큼, 또 그토록 그려왔던 공간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만큼 그것에 감사하며 내일의 태양을 맞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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