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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Dec 16. 2020

포항의 딸

내가 만났던 첫 한국인 승객

아시아 리딩 크루즈 선사인 스타 크루즈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나는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승객들과 그들의 언어(중국어)를 전혀 구사할 줄 모르는 나 자신 사이에서 골머리를 앓기 일쑤였다. 다행히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반복적인 학습효과가 빛을 발해 기초 어휘는 습득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프리토킹에 있어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이는 카니발 선사로 이직 후에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의 공용어는 영어라는 것 정도랄까. 영어가 완벽한 대부분의 사람들과 그 영어라는 언어를 올바르게 구사할 줄 모르는 나는 어쩐지 과거의 내 모습들이 오버랩되는 거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안이했던 마음가짐이 극도로 민망해질 만큼 그곳은 완벽한 그사세를 연상시키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발버둥 쳐야 했다.


하지만 수십 번의 노력을 거듭한 끝에 나는 마침내 그 속에서 한 가지 생존 방식을 터득하게 되었다. 바로 그들이 웃으면 따라 웃었고 그들이 울상을 지으면 함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쉽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운 고전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그 나라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이 통하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터득하게 된 셈이었다.



이렇게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내 것으로 익숙하게 녹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기나긴 기간 동안 나는 때때로 외로움에 사무쳤다. 언어를 배우고 알아가는 일은 분명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을 선사했고 현재 내게 주어진 환경은 너무도 만족스러웠지만 어딘가 모를 공허함이 이따금 온몸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카지노 부서는 선내 모든 승객들을 아우르는 프런트 데스크나 VIP를 담당하는 컨시어즈와 같은 부서와는 거리가 멀다. 쉽게 말하자면 크루즈에 탑승한 모든 승객들이 카지노를 방문하지는 않기에 우리는 모든 승객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천명의 승객들 중 내가 만나게 되고 이름을 나누게 되는 분들은 고작 손가락에 꼽히는 정도. 더욱이 그분들이 나를 지속적으로 기억해 주는 일 또한 예삿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몇 번의 컨트랙을 거치며 연차가 쌓인 만큼 여러 승객들과의 만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경험은 당연히 늘어만 갔다. 되짚어 보니 이제는 해당 사건을 읊기만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승객도 여럿이다.



그렇게 외국인 승객들과의 다채로운 에피소드가 나날이 늘어갈 무렵 어느 날 나는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소리와 익숙한 생김새가 단숨에 내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나는 온 신경이 집중된 그곳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얕은 불안함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 소리의 출처는 영락없는 한국인 단체 승객들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놀란 나는 반가운 마음에 쪼르르 달려가 '안녕하세요!'하고 힘차게 인사를 드렸다. 일동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그분들은 어리둥절해하셨는데, 그 3초가 어찌나 길던지 진땀이 삐질삐질 날 정도였다. 그중 한 분께서 고요한 정적을 깨뜨렸다.

"어머, 정말 한국사람이에요?"


그제야 나는 멋쩍은 웃음을 뒤로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분들께서는 방긋방긋 웃는 내 모습을 보더니 만나서 정말 반갑다며 악수를 건네셨고,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오랜만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 순간이 너무나 즐겁고 신기하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님들께서도 한국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마치 연예인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으로 내 기분을 한층 더 들뜨게 했다.


그분들께서는 업무시간 외의 선상 생활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셨다. 이따금 질문을 하고선 머리를 긁적 거리시는 행동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보가 터지기도 일쑤였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정겨움인가, 정말이지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그분들이 내비친 궁금증은 웃프게도 이러한 질문들이 주를 이루었다.


"여기에서 얼마나 생활하는 거니?"
"밥은 어떻게 먹니? 여기 음식은 먹을만해?"
"컵라면이나 고추장 같은 거 필요해?"
"배에서 내리긴 하니? 밖에 구경도 할 수 있어?"
"이런 데서 일하면 돈 많이 벌 거 같은데 얼마 정도 버니?"
"일은 몇 시간 하니? 주 5일 일 하는 거니?"
"영어 엄청 잘하겠네, 미국 대기업 같은 데서 일해보는 건 어때?"
"남편이랑 가족들 못 봐서 힘들지? 고생이 많아"
"잠은 어떻게 자니? 배가 멈출 때마다 호텔에 가서 투숙하는 거니?"


처음에는 듣고 있으면서도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만큼의 질문들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두세 번은 곱씹어야 이해할 수 있는 질문들도 수두룩했다.


아직은 크루즈라는 공간이 낯선 그분들의 궁금증은 어린아이가 어떠한 것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을  주변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묻는 것처럼 두서도 깊이도 었다. 이런 것들이 왜 궁금하신 걸까, 왜 이런 것까지 여쭤보시지 싶으면서도 이 직업을 알지 못했던 오래전 내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땐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베어 나왔다.



카지노 내에서는 공식적으로 영어만 사용하기로 되어있기에 안타깝게도 그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다행히 내가 첫 컨트랙이었다는 점과 한국인이 생소했다는 이유만으로 매니지먼트에서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짧은 인사말 정도였다. 그래서 한국어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는 인적이 드문 복도나 구석에서 대화를 시도하였다.


하루는 서울 어디에서 왔냐고 하는 한 아버님의 물음에 조심스레 경북 포항 출신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아버님께서는 배를 뒤로 살짝 젖히시고 호탕하게 웃으시더니 이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야, 정말? 포항의 딸이네 그려!
자랑스러운 포항의 딸이야!


부끄러웠지만 기분 좋았던 말. 어쩌면 그저 별다른 뜻 없이 손녀딸 뻘의 기를 살려 주려고 하신 말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크루즈승무원의 분포가 압도적으로 적었던 그 당시 지방 소도시 출신의 크루즈승무원은 더더욱이나 드물었다. 만나 뵀던 한국인 승객분들께서는 한국인 크루즈승무원은 물론 포항 출신의 한국인이 있을 줄 몰랐다며 입을 모아 말했을 정도니 포항의 딸이란 말도 괜한 소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크루즈 내내 아껴주시고 예뻐해 주시는 모습에 그분들이 떠나는 마지막 날에는 반가웠던 첫 마음과 며칠 동안 여러모로 감사했던 마음이 교차되어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우리 모두는 본인이 맡은 분야에 전문적인 모습을 갖추어갈수록 마땅히 그에 응당한 지식을 습득하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예전의 나는 알지 못했었다. 그럴수록 초심으로 돌아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을 고려하고 항상 겸손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상대가 누구든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다는, 그 진리를 뒤늦게서야 깨우치게 된 것이다.


경솔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감출까도 생각해봤지만 앞으로 다가 올 날들이 더 중요하기에 굳게 먹은 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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