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Dec 23. 2020

한 여름의 알래스카

생애 처음 알래스카의 빙하를 마주하다


알래스카 Alaska
북아메리카 북서쪽 끝에 있는 미국의 주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화 도중 알래스카를 언급할까? 분명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크루즈승무원으로 근무를 하며 알래스카 크루즈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 네 글자를 입 밖으로 읊조려 본 게 한 손에 꼽을 정도니까.



4월의 알래스카는 차가운 공기로 뒤엉켜있다





대학생 시절 전 세계 크루즈 시장의 분포도에 대해서 공부를 하던 중 처음으로 알래스카라는 미지의 땅에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그 순위로 1위는 카리브해(미국 마이애미-동시에 선박 20척 정도 수용 가능) 그리고 2,3위를 지중해와 북유럽이 뒤를 잇고 있지만, 알래스카 역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도시이며 꾸준하게 선택받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보았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덕분인지 만약 국제선사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면 카리브해를 누비는 크루즈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유럽과 호주, 그리고 남미 역시도 내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언젠간 가겠지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품고 있었다.


그에 비해 알래스카는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 낯선 땅으로 다가왔었다. 대중매체로부터의 접점이 잘 없었기도 하고, '세상은 넓으니 어딘가에 그런 도시도 존재하겠지'라는 단순했던 생각 탓인지 나와는 무관한 곳이라고 쭉 여겨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의 나는 알래스카를 추운 도시, 즉 몸의 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갈색 털 옷을 입은 이누이트족이 삼삼오오 모여 이글루 옆에서 얼음낚시를 하는 그런 곳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마주한 알래스카는 달랐다. 살얼음이 휘날리는 눈 덮인 새하얀 땅도, 얼굴이 시릴 만큼 차가운 공기와 매서운 바람도, 썰매를 끄는 거대한 허스키들이 즐비한 공간도 전부 아니었다. 내 시야에 담긴 사람들은 모두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긴 했지만 내리쬐는 햇살은 눈부실 만큼 따사로웠고, 동네는 크지는 않았으나 전형적인 미국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이제껏 내가 품어왔던 가치관이 일순 뒤흔들렸다.



5월의 알래스카는 주로 쌀쌀한 날씨가 이어진다

알래스카는 대체적으로 영국의 우기 시즌처럼 우중충 하거나 흐린 날씨를 유지하고 있었다. 평범한 날씨에 나는 주로 얇은 패딩이나 점퍼를 하나 걸쳐 입고 포트 근처의 마을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하나 들고 나서서 카페나 펍에 들어가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관찰했고, 반대로 햇살이 좋은 날에는 기차 투어를 하거나 자전거, 등산, 탐험 등의 액티비티를 동료들과 함께하였다.


이곳에 머물며 한국과는 다른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때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쉽사리 믿기지 않았는데, 처음이 아닌 순간마저도 그랬다. 늘, 매번. 크루즈 내부의 커다란 창을 통해 밥을 먹을 때 그리고 심지어 근무를 할 때도 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창밖 너머로 비친 광활한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여기가 정말 낙원인가도 싶었다.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승무원 전용 공간에서 바라본 뷰

IPM(In Port Maning; 당직)이거나 트레이닝과 사이드 듀티로 땅을 밟을 시간이 부족할 때면 알래스카가 선사하는 풍경을 한없이 감상하곤 했다. 특히나 이런 빙하 크루즈는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아서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 오픈 덱으로 향했다.


깃털 같은 구름 밑으로 놓인 빙하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우리의 동공을 가뿐히 확장시켰다. 그림 같기도 하고 사진 같기도 한 거대한 빙하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그 풍경으로부터 느껴지는 짜릿함에 나는 서서히 중독되어갔다.



7월의 알래스카는 포근한 햇살이 눈을 찡그리게 만든다
날씨가 따스해지며 승객들의 옷이 한층 더 얇아졌다

이렇게 빙하를 보는 날은 주로 포트에 정박하지 않는 sea day(먼 거리를 여행하면서 배에서 보내는 날 또는 기항 없이 항해하는 날)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선상신문이나 TV의 특정 채널에서 빙하 관람 시간을 알 수 있었는데, 깜빡하는 승객들을 위하여 가끔 선내 전체에 방송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알래스카에서 보낸 5개월은 지금껏 살면서 처음 보는 대자연을 차곡차곡 눈에 담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러니 그 장관에 감탄해 넋을 놓고 바라보거나 화들짝 놀라 호들갑을 떠는 행동은, 어쩌면 오버하는 것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녔을까.


왜냐하면 내가 나고 자랐던 지역인 경북 포항은 얼음과 빙하, 그리고 눈 등이 상당히 귀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알래스카의 빙하는 내게 있어 단순히 평범한 얼음 덩어리가 아녔다는 것을 이해해주실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항의 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