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May 05. 2021

'코리안 마피아'가 주는 든든함

한국인 크루즈승무원의 친목

일반인들에게 있어 크루즈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초호화 럭셔리 여행이자 웅장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인식되어 있다. 웬만큼의 좋은 수식어로는 성에 차지 않는 크루즈 속 세상에 걸맞게 이곳에서 근무하는 크루즈승무원이라는 직업 역시 화려하고 멋지게 비추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겉보기의 실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실제로 크루즈승무원은 보기보다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직업이다.






선상 위의 생활을 오래도록 지속하기 위해서는 몸 관리, 마음관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데 당시 나는 그런 것들을 잘 해내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이 울적하면 스스로 그 감정을 컨트롤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등 제멋대로 구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반복했었다.


어린 나이에 크루즈에 승선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부분들을 감당하고 이뤄내야 했던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나이가 어리다고 치부하기엔 내가 경솔하게 행동했던 부분들이 정당화되지는 않다는 사실을 시간이 흐르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뒤 돌아보니 이래저래 아른거리는 미련들로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더라. 왜 그렇게 어리숙하게 대처했던 걸까, 왜 그것밖에 하지 못했던 걸까 그런 생각이 한참 동안이나 머릿속을 맴돌아 잠 못 이루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의 볼렌담호에서 몇 백 명 중에 단 한 명의 한국인이었던 나는 처음엔 특별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아 뿌듯함이 밀려왔지만, 이따금 공허한 그 무언가가 나를 휘감을 때면 한 없이 추락하는 기분에 마음이 울적하곤 했다.


이번이 첫 컨트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러 방면에서 어리숙하고 인간관계에 한없이 서툰, 나에게 정글과도 다름없었던 크루즈 생활. 그런 특수한 환경 때문이었을까,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문을 반쯤 닫아버렸던 것 같다.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다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활짝 열게 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만나게 된 한국인 크루즈승무원들이다. 그들은 내 삶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럴 때 있지 않아?
우리말 하고 싶을 때


진상 승객을 만나 받은 스트레스를 풀 때, 동료와 다툰 후 화가 가시지 않아 누구든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할 때 등. 크루즈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그 마음을 온전히 영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온다.


나 역시도 이따금 그런 순간들이 오곤 했는데 그런 순간에는 코리안 마피아(=Korean mafia; 크루즈에서는 같은 국적의 친구들을 부를 때 '~마피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들을 종종 찾았다. 크루바 혹은 서로의 캐빈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맥주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텐션은 금세 회복되었다. 때로는 얼굴만 마주하고 키득거려도 피로가 싹- 가시니 이보다 더 좋은 피로회복제는 없는 것이다.


선사를 불문하고 크루즈 선내에는 유독 필리핀, 인도 국적의 친구들이 많은 걸 볼 수 있다. 이 친구들은 근무지 밖에서 대화를 할 땐 99%의 비율로 영어가 아닌 본인들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들을 바라보다 보면 부러움과 동경이 교차되어 괜스레 없던 질투도 생겨나곤 했다. 이곳에서 코리안 마피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쯤 되면 왜 크루즈를 타면서 한국인들과 어울리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다.


전 세계 다양한 문화를 수용함에 있어 거부감이 없고 다국적 친구들과 함께 근무하는 환경이 즐겁고 만족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의 마음과 속 뜻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 바로 이 이 코리안 마피아들이 가져다주는 에너지는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었다.






서로의 근무장소를 일부러 지나다니며 간단한 눈인사를 주고받거나 근무시간 중 선내를 거닐다 한 곳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배꼽 빠지게 웃어대기 일쑤였다. 각자의 부서 동료들을 소개해주며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낼 때면 그보다 재밌는 일은 없었다.


언제든 가장 편한 모습으로 부담 없이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큰 행운인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때로는 눈빛만으로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서로의 실수를 눈감아줄 수 있는 넓은 아량, 서로의 발전을 위해 힘이 돼 줄 수 있는 지혜와 배려, 서로가 각자의 위치에서 잘 되기를 바라는 곧은 신념과 같은 마음을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코리안 마피아들과 함께하며 배울 수 있었다.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동고동락하며 걸어온 만큼 앞으로도 서로를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마스와 새해에도 열외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