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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25. 2022

크루즈 승무원이 팀워크를 발휘하면 생기는 일

크루즈 승객으로부터 받는 코멘트 카드

크루즈 승무원들은 오피서, 스탭, 크루 등 부서를 막론하고 누구나 승객들로부터 칭찬 카드인 코멘트 카드를 받을 수 있다.


승객들은 크루징을 하는 동안 본인과 자주 교류하면서 친밀하게 지낸 승무원, 혹은 어떠한 연유로 해당 승무원의 서비스에 만족을 했을 경우 이러한 코멘트 카드를 작성한다. 하지만 이는 승객의 의무가 아니다. 때문에 코멘트 카드를 작성하는 승객들을 보면 보면 크루즈 여행이 처음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능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크루즈에 처음 승선하시는 분들은 코멘트 카드를 작성하는 등 선내의 이런 사소한 것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코멘트 카드 작성을 요구하거나 강요할 수 없으며 이렇게 모인 코멘트 카드들은 일정 기간 동안 선내 오피스에서 보관되다 얼마 후 당사자가 수취하게 된다.


승객들은 주로 캐빈에서 코멘트 카드를 작성하여 하선 전 프런트 데스크에 업무를 보러 갈 때 들고 가는 편이다. 하지만 각자의 캐빈 탁자나 침대 위에 놓아두기도 하고,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한다. 본인 경험으로는 크루즈 마지막 날 한 승객이 내게 건네주기 위해 직접 카지노로 찾아오기도 했으니, 전달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캐빈 스튜어드가 승객들의 캐빈을 청소하면서 탁자나 침대 위에 놓인 코멘트 카드를 발견하게 되면 시간 날 때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전달하는데, 이때 수집된 코멘트 카드를 부서별로 분류하여 집계 후 각 부서의 매니저에게로 전달한다.






우리 선박의 순위가 가장 높았던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 볼렌담호 승선 4개월 차. 이 중 한국인 이름을 찾아보세요!
스타 프린세스 승선 한 달만에 받게 된 코멘트 카드

카지노 부서를 예로 들자면, 카지노 매니저는 코멘트 카드를 받은 크루 멤버들의 리스트를 카니발 플릿(=fleet; 선대)인 GCO에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리스트를 보고받은 GCO는 이를 결산하여 매월 각 선박별로 순위를 통계 낸다. 코멘트 카드의 수가 많다는 것은 100%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승객이 승무원의 서비스에 만족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플릿에서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선박의 크루 멤버들이 얼마나 게스트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평가하기도 한다.

*카니발 선대(Carnival Corporation&plc) 카지노 부서 소속의 크루즈 승무원은 카니발 크루즈, 프린세스 크루즈,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 등 특정 선사의 고용인으로 근무를 하는 게 아닌, 카니발 선대 내에서 카지노 부서를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GCO(=Global Casino Operation)'에 소속되어 있다. 단지, 근무하게 되는 환경이 각 선박 내부에 위치한 카지노 업장일 뿐이다.

그래서 카지노 부서 크루즈 승무원은 현재 승선해 있는 해당 선박의 사번(=employee number)과 GCO의 사번, 두 개를 갖는 셈이다. 선박을 옮겨감에 따라 사번은 바뀔 수 있지만 GCO의 사번은 고용 계약이 된 이래로 퇴사하기 전까지 변하지 않는다.

*카니발 선대(Carnival Corporation&plc)에는 카니발 크루즈 라인, 프린세스 크루즈,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 코스타 크루즈, 아이다 크루즈, P&O 크루즈, P&O 크루즈 호주, 큐나드, 시본의 선사가 속해있다. 각 선사별로 적게는 3~4척, 많게는 10척이 훨씬 넘는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매니저 Laura가 sign off(하선)를 앞두고 있어 새로 올 매니저인 Stefania와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고 말 해주고 있다.

스타 프린세스호 승선 시 팀워크를 발휘해 누구보다 열심히, 그러나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게스트 서비스를 제공했던 우리는 그달 프린세스 크루즈 전체에서 3등을 해 1인당 $55의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었다.


플릿에서는 이렇게 각 선사별로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선박에게 이따금 승무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줄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카지노 매니저는 주어진 이 금액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구성원들과 충분히 논의를 거친다. 참고로 선내 유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50을 현금으로 지급받을 수는 없다. 인원수가 많을수록 의견도 다양하기에 최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수렴하는데, 최종 하나로 의견이 좁혀지면 그때 비로소 구성원들에게 통보 후 실행에 옮긴다.



당시 우리 카지노팀 대다수는 기항지인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점심식사하는 것을 원했고 매니저는 우리의 의견을 수렴해 적합한 레스토랑을 알아보고 직접 예약까지 빠르게 마쳤다. 이렇게 모든 게 결정이 되면 카지노 매니저는 구성원들에게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디서 식사를 할 건지 게시판에 안내를 하거나 직접 알려준다.


2등이라는 숫자는 결코 한 사람만 노력해 이룬 성과가 아니기에 모든 크루 멤버들이 이에 응당한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중 일부는 IPM*에 대해 염려했다. 다행히 카지노 매니저는 다른 부서의 매니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특별히 이날만 당직을 바꿀 수 있도록 양해를 구했고, 해당일자 며칠 전 크루 멤버들의 당직을 관리하는 브릿지(=bridge; 조타실)에게로 부터도 허락을 받아냈다.


덕분에 우리 카지노팀 전체는 함께 갱웨이(=gangway; 승/하선 통로)를 나서 셔틀버스에 올라타 해당 장소로 이동했다. 한 공간에서 우리 모두의 팀워크로 만들어낸 결과물인 귀한 음식들을 맛보고 마시고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일은 좀처럼 잘 가질 수 없는 기회라 이보다 좋을 수 없다며 저마다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IPM(=In Port Manning; 당직)
크루즈는 어디까지나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비상시를 대비하여 각 부서별로 최소 인원이 선내에 머물러야만 한다. 그 말은 즉, 한 부서의 모든 구성원들이 한 번에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뜻과도 같다.

★그밖에 크루즈 선상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궁금하시다면 클릭!



모든 메뉴 하나하나가 주옥이었던 빅토리아 포트 근처의 EARLS VICTORIA






스타 프린세스호 승선 초기에는 열정과 의욕이 넘쳐 매사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근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알래스카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하와이, 멕시코 시즌이 곧바로 이어지는 일정이라 더욱 힘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승선 초, 중기에는 매달 내 이름이 적힌 코멘트 카드가 끊이질 않았는데,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부끄럽지만 당시 우리 부서 코멘트 카드 1등은 항상 내 차지가 되었다. 하선할 때 짐을 싸 보니 의외로 부피를 많이 차지해 그대로 오피스에 두고 왔던 웃픈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약간의 반전이 있다면, 갈수록 그 횟수가 줄어갔다는 것.


승선 전 굳게 다짐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았어야 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뒷심이 약해져 버렸는지 나는 처음만큼 승객들로부터 코멘트 카드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동료들이 '왜 요즘 코멘트 카드 안 받아와?'라고 강요하거나 쏘아붙이진 않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 역시도 어디서부턴가 잘못되고 있다는 찜찜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더라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내게 동시다발적으로 주어졌던 여러 가지 일들로 혼란스러웠던 게 아닐까 싶다. 다이스(=Dice; 카지노 주사위 게임) 트레이닝과 인간관계의 어려움, 자기 계발의 욕구, 새로운 꿈의 발견, 빙고 코디네이터 업무 등, 내 능력 밖으로 한 번에 많은 걸 받아들이게 되면서 점차 심신이 피폐해져 갔던 것 같다.


크루즈 승무원으로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게스트 서비스를 수행하지 못하고 주객전도되어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딜레마에 빠졌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뭘까...'



길고 긴 방황의 끝에서 어렵사리 마음을 다잡은 나는 다음 컨트랙 때는 게스트 서비스는 기본으로 인지하고 있되, 내가 가장 잘하지 못하는 것들 중 하나를 꼽아 온전히 그것에만 집중해보리라 다짐했다.


로운 도전 앞에서는 늘 두렵고 걱정이 앞서지만, 처음부터 잘했던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며 그 쉽지 않은 도전의 과정들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해 나가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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