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여름, 아버지의 실종

나의 첫 번째 식각

by JP 정표

1993년 여름, 장마는 유독 길었다.

습기를 머금은 장판이 발바닥에 쩍 달라붙던 그해.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삶의 보호막(Passivation Layer)’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버지는 지방의 건설 현장에 계셨다.
가끔 전화를 걸어와 굵은 기침 사이로 “밥은 먹었냐” 묻던 분.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뉴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TV 속에서는 폭우로 댐 수문을 개방한다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며칠 뒤, 아버지는 그 댐 하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셨다.
실종, 그리고 사망.
단어는 현실감 없이 둥둥 떠다녔다.
가족들은 오열했지만, 나는 울음조차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도, 따뜻한 손 한번 잡아보는 작별도 없이
아버지는 뉴스 속의 한 줄 사건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죽음의 슬픔은 길었지만, 현실의 시간은 가혹하리만치 빨랐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는 빈자리가 아니라, 빚이 남았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순식간에 남의 손으로 넘어갔고,
빚잔치를 끝내고 나니 남은 건 초라한 월세 보증금뿐이었다.
우리는 도망치듯 반지하 방으로 이사했다.


지상에서 지하로 —
계단 몇 개를 내려갔을 뿐인데, 세상의 온도가 달랐다.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했고,
비가 오는 날이면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생존 공정’이 시작되었다.

평생 살림만 하시던 어머니는
외삼촌들의 도움을 받아 작은 치킨 가게를 여셨다.
기름 냄새에 절은 어머니의 손은
하루가 다르게 거칠어졌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누나는
곧바로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어머니는 닭을 튀기고, 누나는 월급봉투를 가져오는데
집안의 유일한 남자인 나와 어린 여동생은 학교에 갔다.
“공부해서 성공해야 한다.”
그 말은 다짐이 아니라 족쇄였다.


그러나 가난은 숨길 수 없었다.
식각 공정 뒤에 남는 찌꺼기(Scum)처럼,
가난의 흔적은 내 몸 곳곳에 묻어났다.


어느 날, 농구를 하다 안경테가 부러졌다.
예전 같으면 바로 안경점으로 달려갔겠지만,
그달의 가계부엔 ‘안경 수리비’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나는 서랍을 뒤져 투명 테이프를 꺼냈다.
부러진 테 부분을 잇고, 투명 테이프를 천천히—그러나 촘촘하게 감아 돌렸다.

마치 내 부러진 자존심도 그렇게 감춰지길 바라면서.



테이프 감은 안경을 쓰고 학교에 간 첫날,
나는 친구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푹 숙였다.
칠판의 글씨는 흐릿했고, 내 자존심은 그보다 더 구겨져 있었다.
사춘기 소년에게 가난보다 무서운 건 쪽팔림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를 감싸주던 아버지라는,
그리고 경제적 여유라는 두꺼운 보호막(Hard Mask)이
완전히 벗겨졌다는 걸.

이제 나는 세상이라는 독한 식각액(Etchant)을
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걸.


그 여름, 쏟아지던 장맛비는
내 유년 시절을 통째로 씻어내려갔다.
소년의 시간은 끝났다.
나는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채로 어른의 세계에 던져졌다.


아버지가 사라진 그 여름,
나의 가장 아프고 깊은, 생(生)의 첫 번째 식각(Etch) 공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주의 공정이 끝나는 일요일 저녁 8시,

이 이야기의 다음 장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 JP 정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