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법을 배운 고등학교
반지하 방의 습기는 끈질겼다.
보일러를 틀면 곰팡이 냄새가 올라왔고,
끄면 냉기가 바닥을 기어 다녔다.
고등학생이 된 나의 가장 큰 적은
미적분이나 영어 단어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닭을 튀겨 번 돈으로 내야 할
‘이번 달 공과금’과 ‘문제집 값’ 사이의 딜레마였다.
친구들이 “어느 학원 강사가 좋다”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서점에서 문제집을 고르며
‘어느 책이 해설지가 가장 두꺼운가’를 따졌다.
학원을 다닐 형편이 아니었기에,
나에게 선생님은 해설지뿐이었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
공부해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기대.
어머니와 누나의 희생을 먹고 자란다는 죄책감.
이 두 가지는 나를 책상 앞에 앉히는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압력(Stress)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독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평일엔 죄책감에 떠밀려 학교와 독서실을 오갔지만,
주말엔 긴장이 풀려 시체처럼 집안에 널브러졌다.
공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당장의 불안을 잊기 위한 방어기제였다.
그 불안이 임계점(Threshold)을 넘은 날이 있었다.
바로 수능 전날이었다.
남들은 컨디션 조절을 한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거나
오답 노트를 훑어보던 그 시간,
나는 가방을 메고 오락실로 향했다.
내일이면 내 인생의 등급이 매겨진다는 공포,
망치면 우리 가족은 영영 이 지하를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중압감.
그 무거운 공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오락기 앞에 앉아 동전을 쌓아두고
미친 듯이 버튼을 두드렸다.
화면 속 캐릭터가 주먹을 휘두르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몇 시간 동안,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일탈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압력 밥솥이 터지기 직전에 증기를 빼내듯,
나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다.
반도체 공정 중엔 ‘베이크(Bake)’라는 과정이 있다.
액체 상태의 물질을 단단하게 굳히기 위해
고열을 가하는 공정이다.
너무 뜨거우면 타버리고, 덜 뜨거우면 굳지 않는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온통 고열의 베이크 구간이었다.
꿈을 꾸기엔 너무 뜨거웠고,
도망치기엔 식지 않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버티듯 치러낸 수능,
그리고 받아 든 성적표.
서울대도, 연고대도 아니었다.
나는 한남동 언덕 위의 단국대학교 화학과에 합격했다.
누군가는 아쉬워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안도했다.
‘인서울(In Seoul)’이라는 타이틀보다 더 중요했던 건,
내가 이 지독한 압박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다(Survived)는 사실이었다.
테이프 감은 안경을 쓰고,
문제집 해설지와 씨름하며,
수능 전날 오락실로 도망치면서도,
나는 끝내 튕겨 나가지 않았다.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자격을 얻어냈다.
그 시절 내가 배운 건 미분과 적분이 아니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그냥 ‘그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있는 법’이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일단 버티면, 다음 공정은 반드시 온다.
그게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