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가난한 대학원생은 어떻게 버텼을까

자격지심 덩어리를 감싸준 완벽한 보호막(Passivation)

by JP 정표

연구실은 늘 추웠다.

온도계로는 잴 수 없는 추위였다.

성과가 없으면 “여기엔 네 자리가 없다”라고 말하는

그런 종류의 냉기.


나는 낮에는 타대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과 싸웠고,

밤에는 잘 풀리지 않는 데이터와 씨름했다.
BK21 장학금과 과외 아르바이트로 겨우 버티던 나의 20대 후반은
조금씩 메말라갔다.


그럼에도 나는 버텼다.
치킨 튀김기 앞에서 땀 흘리는 어머니,
월급을 쪼개 집안 생활비를 보태는 누나.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흔들릴 수 없었다.
그들은 나의 가장 든든한 기판(Substrate)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나는 그들에게 “힘들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 말이 혹여 그들의 마음에 스크래치가 될까 두려웠다.


그때,
그 팍팍한 시절에 내게 유일한 안전지대가 찾아왔다.


그 시절의 나는, 혼자 버티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은, 이미 누군가의 보호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도.


지금의 아내였다.


아내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학교였지만,
그녀의 대학 선배가 나를 소개했고,
나의 친구는 그녀를 연결해 줬다.


웃기게도 그 연결고리였던 두 사람은 커플이었고,
우리는 그 덕에 처음 만났다.

시간이 지나, 그들은 헤어졌지만 우리는 남았다.

세상은 늘 예측과 반대 방향으로 식각 된다.


그녀는 서울대입구 근처에 살았다.
연구가 늦게 끝나면,
나는 실험복을 벗고 버스를 타고 그 근처로 향했다.


우리는 짧은 시간을 쪼개
조용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학교 근처의 식당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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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도 아이는 태어나듯,

진공 속에서도 사랑은 반응했다.


고립된 환경에서도

그녀와의 짧은 시간은

내 인생의 주요 산소 공급선이었다.


현실적인 조건만 본다면
나는 ‘불량률 높은 웨이퍼’나 다름없었다.
미래는 불투명했고,
주머니는 가벼웠으며,
자격지심이 내 안에 두껍게 퇴적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택했다.
“오빠는 열심히 살잖아. 실험하는 것도 재밌어하고. 잘 될 거야.”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의 전류를 다시 흐르게 했다.


그녀는 나의 결과가 아니라, 에너지 밴드의 방향을 봤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가능성의 궤적을 믿어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한 분,
내 삶의 또 다른 보호막이 되어준 분 — 장모님.


가난한 대학원생 예비 사위를
한 번도 불편한 눈으로 보신 적이 없었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엄마가 고기 사줄게.”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주시며,
헤어질 때면 내 손에 용돈을 꼭 쥐어주셨다.


처음엔 그 호의가 부담스러웠다.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빨리 성공해서 갚아야 하는데...’
그런 부채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건 동정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순도 높은 사랑의 전류였다.

내가 어릴 적 잃어버린 ‘보호막 없는 상태’를
그분이 조용히 감싸주고 계셨던 것이다.


반도체 칩은 외부 충격에 약하다.
그래서 공정의 마지막 단계에는
보호막(Passivation Layer)을 씌운다.


이 보호막이 없으면
습기나 먼지, 작은 충격에도 금세 부식되고 만다.


그 시절에야 알았다.

아내와 장모님이,

내 삶의 패시베이션이었다는 걸.


세상의 독한 식각액으로부터
내 마음이 부식되지 않게 막아주던,
따뜻한 두 겹의 보호막.


어머니와 누나는 나를 지탱한 기반이었고,
아내와 장모님은 나를 부식으로부터 지켜준 보호막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부서지지 않고
다음 공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


화학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단순한 명제는,
서울대입구의 작은 식당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증명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