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삼성전자에 들어가던 해

불안정한 초기 공정에서, 가장이 되다

by JP 정표

2011년 2월 1일, 화성 캠퍼스로 첫 출근을 하던 날의 공기를 기억한다.


입사 전 건강검진에서 폐결절 재검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던 불안,

유기 반도체 전공자가 실리콘(Si)의 본진인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 들어왔다는 얼떨떨함.


그 복잡한 감정들이 파란 사원증을 목에 거는 순간,

마치 첫 훈장을 받은 것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처음에는 정말 모든 게 좋았다.

회사에서 삼시 세끼 따뜻한 밥을 줬고, 출퇴근 버스는 쾌적했다.


양산의 압박이 없는 선행 연구 조직,

실패가 용인되는 ‘R&D의 허니문’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 허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이 지나자 나는 더 이상 보호받는 ‘프레시 박사’가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업무는 차세대 반도체의 길을 닦는 공통 공정, Common Etch(공통 식각)였다.

정답이 없는 곳에서 길을 내야 하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잘하고 싶은 조급함은 안면 홍조로 올라왔고,

사내 한의원은 내 단골이 되었다.


내가 회사 생활에 적응한 건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도망칠 곳이 없었을 뿐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온 내게 유일한 재능은

세련된 해결책이 아니라 미련하게 버티는 일이었다.


“이 정도 식각액에는 녹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며

나는 매일 아침 출근 카드를 찍었다.


가정에서도 ‘초기 공정 이슈’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홍제동 다세대 빌라 투룸에서 시작한 신혼.

어머니 댁 근처라 선택한 곳이었지만, 그것이 갈등의 씨앗이 될 줄은 몰랐다.


효도하고 싶었던 아들과 낯선 환경에 놓인 며느리,

그리고 시어머니 사이의 신경전은 예민한 스파크처럼 튀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눈치 없이 굴다가 양쪽의 원망을 한꺼번에 사기도 했다.

나는 내가 중성(Neutral)이라 믿었지만,

사실 그 사이에서 가장 큰 노이즈를 만드는 존재는 바로 나였다.


결국 우리는 홍제동을 떠났다.
향한 곳은 서울대입구 근처, 장인장모님이 막 완공한 건물이었다.


그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업자와 싸우고, 부도 위기를 넘기며,
장인·장모님이 4년 동안 피땀으로 쌓아 올린 ‘눈물의 건물’.


우리는 그 건물 한편에서 살림을 차리고 2년 동안 처가와 한 건물에서 지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의 신혼을 버티기에는, 서로의 온기가 더 절실한 시기였다.


그 시절,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아내의 청약 통장으로 수도권 아파트 당첨 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집에 대해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 산 집이 아니었고, 내가 땀 흘려 쌓아 올린 결과도 아니었다.


아내가 꾸준히 넣어온 청약 통장, 장인·장모님의 도움,

그리고 운이 한꺼번에 겹쳐서 우리에게 떨어진 ‘당첨’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가난하게 자라다 보니 ‘자산’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집을 왜 무리해서 사? 빚내서 사는 건 위험해.”


이런 좁은 생각으로, 입사 초기에 애써 만들어둔

내 명의의 청약 통장을 홀라당 해지해 버리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만큼

아찔하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그 구멍 난 독을 막아준 건 아내였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남편 대신, 그녀는 자신의 청약 통장을 끝까지 쥐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당첨된 것은 오로지 아내의 선구안 덕분이었다.


아내는 나의 턱없이 부족한 ‘경제관념(Recipe)’을 조용히,

그리고 완벽하게 보정해 준 반려자였다.


가장의 무게가 처음으로 뼈에 와닿던 날도 기억난다.

물려받아 타던 15년 된 소나타가 주행 중 도로 한복판에서 털썩 멈춰 섰다.

엔진룸에서 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곧 태어날 아이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아끼는 것도 좋지만,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

이제는 내가 가족의 안전망이 되어야 하는데...’


그해 겨울, 큰맘 먹고 생애 첫 새 차를 계약했다.

옵션 하나 없는 SM5. 이른바 ‘깡통차’.

남들 눈엔 평범한 중형차였겠지만, 내 눈엔 우리 가족을 지켜줄 ‘움직이는 요새’처럼 보였다.


내게는 벤츠보다 더 빛나 보였다.
차가 출고되고 나는 자동차 보호 커버를 씌웠다.

겨울만 아니었다면
정말 이불 들고 차에서 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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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정에서 ‘초기 안정화(Stabilization)’는 가장 어려운 단계다.

가스 유량, 압력, 온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플라스마는 튀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나의 30대는 바로 그 초기 안정화 구간이었다.

회사 일은 벅찼고, 고부 갈등은 뜨거웠으며, 통장 잔고는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꾸역꾸역 버티다 보니, 어느새 공정은 안정 궤도에 올라 있었다.


연구직 부장(수석) 타이틀을 달았고, 두 딸은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며,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도 마련되었다.


불안정했던 플라스마가 안정된 빛을 내기 시작할 무렵,

사내 게시판에 ‘방문 연구원 모집 공고’가 들어왔다.


그 문장은
마치 새로운 공정의 시작을 알리는 트리거(Trigger)처럼 보였다.


나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말했다.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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