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다운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락인’ 되었다
마트 입구에서였다.
지나가던 노인이 우리가 들으라는 듯 “코비드...”를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순간 굳었고,
나는 그 짧은 공기에 ‘무언가’가 섞여 있다는 걸 느꼈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혐오라는 이름의 먼지였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미국에서 마주한 건 ‘광활함’이 아니라, 고립이었다.
2019년, 회사 게시판에 붙은 ‘방문 연구원 모집 공고’는 내게 새로운 트리거(Trigger, 방아쇠)였다.
지원 자격 연차의 마지막 시기.
삼성이라는 거대한 챔버(Chamber, 작업 공간)를 잠시 벗어나
다른 레시피를 배울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왜 전문 연수를 내가 가야 하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증명하고 돌아올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연구 계획서를 쓰는 동안,
내 인생의 공정 조건을 다시 세팅하는 기분이었다.
2020년 1월.
락다운 직전에 미국 캘리포니아 플레전턴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설렜다.
넓은 마트, 쏟아지는 햇살, 정직하게 건조한 공기.
우리는 ‘미합중국’에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공정 불량, 코로나19였다.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전염병의 확산은,
미국 전역을 순식간에 시스템적으로 셧다운 시켰다.
연구실은 닫혔고, 학교는 멈췄고, 아이들은 모니터 속에 갇혔다.
외출은 일주일에 한 번.
마스크를 쓰고 전투하듯 식료품을 사 오는 것이 전부였다.
일상은 갑자기 ‘풍경’이 아니라 ‘생존’이 되었다.
그때 우리 집은 집이 아니라, 숨구멍 하나 남은 진공 챔버 같았다.
반도체 공정에서 가장 피해야 할 단어 중 하나는
오염(Contamination)이다.
미세한 파티클(Particle, 먼지)로 인해
웨이퍼를 통째로 사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우리가 꿈꾸던 미국 생활을
순식간에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오염은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코비드(Covid)”
“중국 바이러스(China virus)”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혐오의 파티클이 날아들었다.
식료품 가게 앞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고,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을 보며 손가락질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라기보다,
엔지니어가 통제할 수 없는 불량을 마주했을 때의
무력감에 가까웠다.
화낼 틈도 없이 생각은 하나로 모였다.
‘이 오염원으로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락다운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지쳐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완벽한 고립은 우리를 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자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많은 대화를 했고,
삼시 세끼를 함께 지어먹으며
서로의 표정을 읽었다.
그 시절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락다운’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락인’ 되어 있었다.
진공은 흔히 ‘텅 빈 공간’으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반도체 공정에서 진공은
표면 위에 얇은 박막(Thin film)을 올리기 위한
가장 순수하고 안정적인 조건이다.
우리 가족에게 그 1년은 어쩌면 그런 시간이었다.
세상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단단한 보호막을 입히고 있었다.
진공은 고립이 아니라,
우리를 살린 조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