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학력 세탁? 나는 ‘깊이’를 선택했다

타대생이라는 꼬리표를 ‘집요함’으로 뚫어낸 기록

by JP 정표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그 거대한 정문을 통과할 때마다 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곳은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상아탑이었지만,
나에게는 ‘침투해야 할 요새’였다.


버스 뒷자리 도인의 말에 홀려 덜컥 합격은 했다.
하지만 합격 통지서가 나의 ‘출신 성분’까지 바꿔주지는 않았다.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층(Layer)’을 감지했다.


서울대 학부 출신의 ‘성골’과, 타대 출신의 ‘육두품’.
그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섞일 수 없는 단단한 계면(Interface)이 존재했다.


어느 날이었다.
실험을 마치고 다른 연구실의 자대생들과 차를 타고 이동할 일이 있었다.
나는 뒷좌석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선배와 조수석의 동료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요즘 대학원에 타대생들이 너무 많아졌어.”
“그러게. 솔직히 ‘학력 세탁’하러 오는 거잖아.

학부 때는 놀다가 대학원 간판만 따려는 거지.”


그들은 내 존재를 잊은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듣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좁은 차 안에서 투명 인간, 아니 병풍(Folding Screen)이 된 기분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학력 세탁’—그 네 글자가 비수처럼 꽂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역시 ‘간판’을 원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연구하고 싶었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 말은 화가 나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어디쯤 서 있는지를

아주 정확히 알려주는 좌표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연구실 책상에 엎드려 다짐했다.
“두고 봐라. 내가 너희보다 더 깊게, 더 날카롭게 파고들 테니까.”


지도교수님은 서울대 학부, 하버드 박사 출신의 엘리트 중 엘리트셨다.
학문의 기준점(Baseline)이 하늘 꼭대기에 있는 분이었다.
그분의 랩 미팅(Lab Meeting)은 매주 살얼음판이었다.
어설픈 논리로 발표했다간 뼈도 못 추렸다.
자대생 들은 ‘우리 애’라는 시선이 있었지만,
나 같은 타대생에게는 언제나 냉철한 검증의 칼날이 들어왔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나는 그들처럼 한 번에 이해하고 암기하는 ‘스피드’는 없었다.
언어적 능력도, 배경 지식도 부족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들이 가지지 못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집요함(Persistence)’이었다.


반도체 공정에는 ‘HAR(High Aspect Ratio) 식각’이라는 것이 있다.

좁은 면적을 아주 깊게 뚫어야 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입구가 좁아 식각 가스가 들어가기 어렵고, 부산물(Scum)도 잘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온을 때려 박으면, 결국 바닥(Bottom)까지 닿는다.


시간은 느리지만,

방향이 맞으면 결국 깊이는 나온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시간’과 ‘집요함’으로 메웠다.
BK21 장학금과 과외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실험실에 틀어박혔다.
서울대입구역 막차가 끊기는 자정까지 실험을 했고,
그마저 놓치면 책을 베개 삼아 쪽잠을 잤다.



남들이 “이 정도면 됐다”라고 말할 때,
나는 “한 번만 더”를 속삭였다.
그건 공부 머리가 아니라 ‘생존 머리’였다.


그렇게 4년, 5년이 흘렀다.
내 집요함은 결국 ‘유기 전계 효과 트랜지스터(Organic Field Effect Transistor)’ 연구에서 빛을 발했다.
수십 번의 실패 끝에 얻은 데이터는
세계적인 화학 학술지 중 하나인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에 실렸다.




논문이 게재되던 날, 교수님이 지나가며 한마디 하셨다.
“JP, 이번 데이터 좋더군. 수고했어.”


그 짧은 말이 내게는 천금 같았다.
‘타대생’이라는 꼬리표가, ‘연구원 JP’라는 이름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학력 세탁이라 비웃던 시선이
조용히 방향을 바꾸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무시가 미묘한 인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불평할 시간에,

나는 운동장을 더 깊게 파버렸다.
그게 내가 서울대의 벽을 넘는 방식이었다.


벽은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갈아서 그 벽에 ‘나만의 구멍(Contact Hole)’을 뚫는 것.


그 치열했던 공정이,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만은

'진짜 연구자'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