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먼저 말한 단어: “회사 끊는다”

어른의 언어는 왜 회사만큼은 ‘끊지’ 못할까

by JP 정표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각자 식성이 달라

메뉴 선택은 늘 조용한 신경전인데,

오늘의 승자는 아내가 구운 장어였다.


문제는 둘째였다.
접시에 놓인 장어를 보자마자
입술이 ‘쭉—’ 하고 튀어나왔다.


“오늘 메뉴는 별로야”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그 미세한 입술 곡률 하나로

아이의 심기를 읽어낼 수 있으니, 역시 가족이다.


모처럼의 식탁 대화는
장어 불평에서 건강 이야기로 갔다가
어느새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대전제로 닿았다.
그리고 대화는 다시 튀었다. 스위스로.


안락사가 합법이라는 정보의 파급력은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강력했다.


나와 아내의 철학은 단순하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혹시 깊이 아프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말자.


그런데 우리가 그 진지한 다짐을 나누던 순간,
둘째가 불쑥 끼어들었다.


“근데 아빠… 회사 끊으면 돈도 못 벌잖아.

그럼 스위스도 못 가.”


문장 구조는 명확했고,
논리는 기이하게 완벽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단어 앞에서
우리 부부는 동시에 멈칫했다.


“회사… 끊는다?”




학원은 ‘끊는다’.
커피도 ‘끊는다’.
술도 ‘끊는다’.


그런데 회사만큼은…
‘끊는다’고 하지 않는다.


퇴사한다.
그만둔다.
나온다.


이상할 만큼 무거운 말들이다.
매일 출근하는 곳인데
왜 회사는 ‘끊어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을까.


문득 깨달았다.
아이들의 언어에는
어른이 잊고 산 질문이 숨어 있다.


학원도 회사도
본질은 일종의 ‘시스템’인데
어른이 되면 어느 순간부터
이 둘을 같은 문법으로 다루지 않는다.


책임, 생계, 관계...
어른의 삶에 덕지덕지 붙은 무게가
언어마저 무겁게 만든다.


식탁 분위기가 겨우 정리되려던 찰나,
둘째가 다시 훅 들어왔다.


“아빠, 나 용돈 좀. 17,000원.”


너무나 구체적인 액수였다.
우리가 눈을 맞춘 사이,
둘째는 당당하게 자신의 수익 모델을 발표했다.


뽀뽀 1,000원.
왼쪽 볼 1,000원, 오른쪽 볼 1,000원.
입술은 프리미엄이라 1,000원.


총 3,000원을 벌어
목표 금액 2만 원을 채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나는 기꺼이 3,000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현금이 없어 계좌이체를 해주겠다고 하자
둘째가 진지하게 말했다.


“아빠, 번호 알려줄게. 010 4498 XXXX


자기 계좌번호는 모르고
휴대폰 번호만 아는 아이.
그 투명한 순진함 덕분에
거실은 한바탕 웃음으로 흔들렸다.




오늘의 생각공정 결론


어른의 언어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과 제약이 너무 많다.
아이들은 그걸 모르니
가끔은 어른이 잊은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놓는다.


“회사 끊는다.”


이 짧은 말이
내 오래된 사고 회로에
작은 균열을 냈다.


어쩌면 내가 붙들고 있던 건
회사보다도
‘회사라는 말에 붙은 무게’였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의 평일 ‘저녁이 있는 삶’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 그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정말로
이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쓸 날이
내게도 오지 않을까.


오늘의 행복 기록은
왼쪽 1,000원, 오른쪽 1,000원,
입술 1,000원.


도합 3,000원어치의 웃음이다.


재밌는 저녁이었다.
참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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