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랙] 깨지는 시간들
그때는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일은 돌아갔고, 일정도 채워졌고, 저는 늘 하던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는 이미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가 오래 남고,
잠깐의 피로에도 바닥이 쩍 갈라지는 느낌이 들던 날들.
그땐 그걸 ‘예민함’이라고 불렀지만,
지금 생각하면 크랙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그 균열을, 숨기지 않고 한 번 바라보려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풍으로 그려진 4x5 유화.
깊은 고뇌에 찬 인물의 얼굴 위로 미세한 균열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으며,
그 틈 사이로 은은한 황금빛이 배어 나옵니다.
배경의 푸른 소용돌이는 인물이 견뎌온 내면의 응력을 시각화합니다.
깨진다는 것은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틈이 아니면
안쪽의 마음이 밖으로 나올 길을 찾지 못할 때도 있더군요.
반도체의 크랙은 실패로 기록되지만,
사람의 크랙은, 때로는 더 단단해지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현장에서 크랙은 참 이상한 결함입니다.
한 번 생기면 티가 크게 나는데,
정작 시작은 너무 조용해서 알아차리기 어렵거든요.
열이 오르내리며 생기는 응력,
미세한 뒤틀림,
반복되는 아주 작은 충격들.
그것들이 켜켜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이제는 더 못 버틴다’는 듯 표면이 갈라져 버립니다.
크랙은 갑자기 생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어딘가에
작은 균열을 숨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사람 마음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안쪽에만 응력이 쌓이는 시간들.
그래서 더 무서운 건
깨지기 전까지는 계속 ‘괜찮아 보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 금을 숨기려고만 했습니다.
더 매끈하게 버티면 괜찮아질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표면을 닦는다고 균열이 사라지지는 않듯,
무리해서 버틸수록 금은 더 번지기도 했습니다.
요즘의 저는
완벽해지려 하기보다,
작은 신호를 조금 일찍 알아차리고 싶습니다.
말이 유독 길어질 때,
표정이 굳어질 때,
웃고 있는데도 속이 비어 있을 때.
그럴 때 조용히 한 번만 확인해 봅니다.
“아, 나 지금 조금 갈라지고 있구나.”
이 한마디가
금이 더 크게 번지는 걸
가끔은 늦춰주더군요.
혹시 여러분도 요즘,
겉으로는 괜찮은데
안쪽에서 ‘쩍’ 하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으신가요?
그 소리를 너무 늦기 전에
알아차린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그 신호를
단순한 예민함으로 넘기지 말고,
가만히 한 번만 들어봐 주면 어떨까요.
— JP 정표 | Etch the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