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먼지의 무도 (Gilded Dust Dance)
낯선 초대장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익숙한 이름도 아니고,
예상했던 일정도 아니었습니다.
읽어야 할지, 모른 척 지나가야 할지
잠깐 망설였습니다.
우리 삶에는 그런 순간이 있지요.
내 삶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아주 작은 틈을 타고 불쑥 들어오는 순간 말입니다.
그때의 저는 초대장이 좋아서 열어본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왠지 모르게
‘한 번쯤은 열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호기심이었을 뿐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으로 그려진 4x5 유화.
어두운 다락방 창가로 쏟아지는 강렬한 햇살 속에
수많은 미세 먼지들이 별빛처럼 춤을 추며 내려앉습니다.
낡은 책상 위에는 정체 모를 노란 봉투 하나가
그 먼지들을 선물처럼 맞이하고 있습니다.
[도슨트 JP 정표 한마디]
통제할 수 없는 침입자가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듭니다.
반도체에서 수율을 위협하는 파티클조차 빛을 만나면 별이 되듯,
우리 일상을 흔드는 낯선 변수들을
'우연의 선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반도체 현장에서 파티클(Particle)은 딱 그런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무섭습니다.
작은 먼지 하나가 붙어야 할 것을 못 붙게 만들고,
새겨져야 할 선을 흐리게 만들며,
공들인 제품의 수율을 통째로 망치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는 클린룸에서
먼지를 걸러내고 파티클을 줄이려 애씁니다.
엔지니어의 일은 어찌 보면
‘우연을 줄이는 일’에 가깝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은 클린룸처럼 살 수가 없더군요.
외부에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말 한마디,
갑자기 바뀌는 약속, 예상치 못한 제안들.
그것들은 대개 ‘미세한 먼지’처럼
일상에 내려앉습니다.
저는 종종 삶에서도 파티클을 제거하듯 반응했습니다.
읽지 않고 지나치고,
무심한 척 밀어내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돌아보니,
제가 열어본 소중한 기회들은
처음엔 다 ‘파티클’처럼 거슬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가셨는데 오래 남았고,
우연이었는데 삶의 방향을 바꿔주기도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대화가 마음에 머물고,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제가 몰랐던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저는 낯선 초대장을 마주하면
예전처럼 바로 ‘제거’부터 하지 않으려 합니다.
대신 마음속으로 한 번만 물어봅니다.
“이건 정말 내가 걷어내야 할 먼지일까,
아니면 잠깐 들고 있어도 되는 신호일까.”
대답이 바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조금 들고만 있어 봅니다.
파티클은 너무 작아서,
성급하게 털다 보면
오히려 번질 때가 있으니까요.
혹시 여러분도 요즘
‘낯선 초대장’ 하나를 마주하고 계신가요?
어쩌면 그 먼지 같은 우연이
당신의 삶을 전혀 다른 빛으로
반짝이게 할지도 모릅니다.
— JP 정표 | Etch the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