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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 May 10. 2021

출판의 감동은 천천히 온다.

가장 나답게, 내 글을 쓰며 말이다.


내 책의 사인을 해서,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짜릿하다.



2021년, 드디어 나도 꿈으로만 간직하던 책을 출판했다.

출판의 기회는 우연을 가장해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다.

브런치 작가 도전에 계속 낙방하고 있었던 때였다.

브런치 합격을 위해 들어갔던 모임에서 책 출판을 위해 작가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글을 좋아하고, 글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드는 하나의 책!


아직 브런치 작가가 되진 못했지만,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었던 출판의 기회가 먼저 다가온 것이다.

잠깐의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지만, 일단 해보자라는 맘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 내 첫 출판의 시작점이었다.


설렘을 안고 뛰어들었던, 이제 하나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는 내 설레발과 다르게 출판 준비는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내 마음속 일부가 응축된 내 글을 보는 것이었다.

글이 너무 나다워 고민이었다.

내 마음의 속살이 그대로 보이는 것만 같아 몇 번이고 고쳤다. 

하지만 그렇게 하니 글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또 다른 감정을 섞어 글의 감정을 옅게 만들었더니 글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사실 난 알고 있었다.

내가 포장하고, 덮으려고 했던 그 속살이 내 진솔한 감정과 생각의 집합체라는 것을.

즉, '진짜 나'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겁이 났을 뿐이다.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진짜 내가 보일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일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내 글을 쓰는데, 날 제외하고 쓴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래서 그저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대신 담백하게 날 글로 풀어놓았다. 

그렇게 내 속살이 훤히 보이는 마지막 원고를 제출했다.

그리고 약 열흘 뒤에 나의 진솔함은 책의 일부가 되어 조그마한 자취방에 도착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책을 실물로 본 순간 얼마나 기쁘던지, 기쁘다는 생각 외엔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원고를 수정하며 했던 괜한 걱정은 이미 옛날 일이 되어 잊혀졌다.

작업하며 몇 번이고 질리도록 읽으며 수정했던 내용인데 읽고 또 읽었다.

책을 3권 받았는데, 각각의 책에 새로 산 네임펜으로 신중하게 사인을 하고, 더 신중하게 고심하여 짧은 멘트를 적었다.

한 권은 서울에 있는 부모님에게, 한 권은 부모님을 통해 독일에 있는 누나에게.

그리고 마지막 한 권은 나에게 선물하여, 보관했다.



책이 나오니,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이 내 책을 읽어줬으면 했다.

출판하며 홀로 고민했던 부끄러움 따윈 잊어버리고 넓지 않은 인맥이지만 열심히 홍보했다.

- 처음으로 출판을 했습니다.
- 애들아! 내 책이 나왔어!
- 취미인 글쓰기를 하다 보니, 꿈꿔왔던 제 저서가 나왔어요!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을 통해 생애 첫 출판 소식을 전했고, 생각보다 정말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았다.

당연히 기뻤고, 또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축하한다는 말 대신에

"책 정말 잘 봤어요."라는 말이 듣고 싶은 어쩔 수 없는 초보 작가였다.

아쉽게도 무조건적인 내 편인 가족을 제외하고선 책 잘 봤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혹시 몰라 5권을 추가 구매해놨는데, 책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시간과 공을 들여 쓴 내 글인데, 그리고 생애 첫 책인데 생각보다 밋밋한 반응에 허탈하기도 했다.


어릴 적, 교회에서 연극을 올린 적이 있었다.

당시 한 달이 좀 넘는 방학을 오로지 연극에 투자했고, 각본부터 연기까지 참여하며 쏟아부었다.

그렇게 한 달을 준비해서 단 하루,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연극을 올렸다.

성공적으로 잘 끝난 연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 마음에 공허함이 가득 찼었다.

난 더 이상 어린 마음을 가지지 못하는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내 첫 출판도 며칠의 기억으로 남고 사라지는 것만 같아 그때처럼 약간의 공허함을 느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니었고, 여느 어른과 다름없이 너무나 당연스럽게 일상으로 잘 복귀했다.

그렇게 출판의 기억과 감동이 무뎌질 때쯤,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책을 구입해서 읽고 싶은데, 일본이라 구입을 해도 읽을 수가 없다고. 일단 구매라도 해놨으니 나중에 꼭 읽어보겠다고.


유난히 바쁘고, 지친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내게 그 친구의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던지 내가 보내줄 테니 책 주문을 취소시켰다.

책을 선물하겠다 했지만 한사코 그 친구는 다른 책은 몰라도 네 첫 책을 읽는 건데 꼭 구입하겠다 하여 결국 반강제적으로 책값을 받았다.

물론 일본으로 보내는 배송료가 책값에 두 배정도였다. 

허나, 그 날 난 책값의 몇 배가 되는 감동을 선물 받았기에 기쁜 맘으로 책에 사인을 하고, 쑥스럽고 머쓱한 마음을 짧은 글귀에 담아 일본으로 보냈다.




내게 출판의 감동은 일상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한 번씩 날 찾아온다.

바쁜 일상과 시간의 당연함에 출판의 기억을 잊을 때쯤에 한 번씩 그토록 받고 싶은 연락이 한 번씩 온다.


아이고 작가님~ 책 잘 봤습니다.라는 친구의 장난 섞인 연락부터 전혀 생각도 못했던 지인이 책 잘 봤다며 연락을 주기도 한다.

또 난 몰랐지만, 아빤 아들의 출판의 기쁨을 아들보다 더 오래 간직하고 계셨다.

책을 사 주변 지인분들에게 선물하셨는지, 갑자기 목사님께 책 잘 읽었다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누구에게 연락이 왔든 하루 종일 벅찬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자기 전에 내 책을 펴 한 번 다시 읽어본다.

그렇게 내 글을 읽을 때면, 조금의 아쉬움은 밀려온다.

아 좀 더 예쁜 표현을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이라면 이렇게 썼을 텐데.

하지만 후회가 아니라 아쉬움이라 다행이다.

출판을 준비하며 너무 날 내어 놓고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될까 봐 고민이었지만, 오히려 진짜 날 감추고 출판을 했다면 그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 될 뻔했다.


내 책은 여전히 인터넷 서점에 버젓이 진열되어 있다.

비록 리뷰 하나 달리지 않은 사람들 관심 밖에 책이지만, 내겐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첫 책이다.

그 소중한 책은 여전히 내게 일상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예상치 못한 감동을 선물해준다.


또한, 그 감동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이어서 나로 하여금 계속 글을 쓰게 만든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출판의 꿈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가장 나답게, 내 글을 쓰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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